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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장 원한 2

오늘의 쉼터 2014. 10. 18. 14:13

제24장 원한 2

 

 

 

개소문은 만일 이것이 사실일 경우를 가정하자 속으로 더욱 한심하고 분한 마음이 일었다.

 

“신 막리지 개소문, 전하께 한 가지 방책을 아뢰겠나이다.”

 

“어서 말해보라!”

 

“요동에 징발한 역부들은 창칼만 있으면 언제든 군사로 부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9성의 성주들은 하나같이 충신에 맹장들이므로 수나라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처럼

 

목숨을 걸고 싸우려 할 것입니다.

 

다만 필요한 것은 무기와 식량이옵고, 대왕께서 친히 보내는 격려의 말과 약간의 도성 군사들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요동의 전사들은 용기 백배하여 적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 신라를 칠 때 동원한 1만 군사만 신에게 내주십시오,

 

그러면 신이 직접 그들을 이끌고 다시 요동으로 가겠나이다.”

 

개소문의 말에 임금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정말 그대가 친히 가겠소?”

 

“그렇습니다. 신이 막리지란 중책을 맡았으니 직책에 맞는 일을 하겠나이다.”

 

“호, 갸륵한지고.”

 

임금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무기는 얼마나 있어야 하고 식량 사정은 또 어떠한지 모르겠소.”

 

그러자 내평 금태가 대답했다.

 

“무기는 달포 안에 우선 3만 군사가 쓸 만큼은 조달할 수 있을 것이지만

 

식량은 조와 콩을 모두 합해도 1천 섬이 될까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당시 고구려의 형편이었다.

 

개소문은 다시 한 번 국정을 개탄했다.

 

이것이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다면 대관절 어떻게 할 뻔했단 말인가!

 

“그럼 무기를 만들고 식량을 모아 내달 하순에 떠나시오.”

 

임금의 말에 개소문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하순이면 늦습니다.

늦어도 내달 중순에는 길을 떠나야 추위가 오기 전에 요동에 도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면 내평은 무기 만드는 일과 곡식 모으는 일을 서둘러 막리지가 내달 중순에 떠날 수 있도록

군기를 맞추도록 하라.”

 

임금이 금태에게 명령했다.

 

“어차피 날짜를 기다려야 한다면 군사 1만을 지금 당장 저에게 주십시오.

 

신라 장수 알천 하나도 상대하지 못한 오합지졸들입니다.

 

신은 오늘부터라도 당장 이들을 데리고 도성 남쪽에서

 

훈련을 시켜 천하의 강군으로 만들어보겠나이다.”

 

개소문의 청을 임금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이제 보니 국상은 빈틈이 없는 사람일세. 그렇게 하라.”

 

임금은 쾌한 표정으로 즉석에서 1만 군사를 움직일 수 있는 사령장을 써주었다.

 

“신은 이만 물러가서 군사들을 살피겠나이다.”

 

“먼길을 와서 피곤할 테니 하루나 이틀쯤 쉬도록 하오.

 

그러다 병이라도 날까 두렵소.”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던 임금은 이제 개소문의 건강까지 염려하는 지경이 되었다.

 

“화급을 다투는 일이옵니다.

 

신은 아직 젊은 데다 건강함을 타고났으니 대왕께서는 과히 염려하지 마십시오.”

 

개소문은 두 번 절하고 어전을 물러났다.

 

그가 가자마자 책사 사본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개소문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임금이 약간 불쾌한 기색으로 반문했다.

 

“요동에서 돌아오자마자 군사를 얻어 다시 가겠다니

 

만일 그가 흉흉한 민심을 등에 업고 요동의 장정들을 동원해 불충한 짓이라도 저지른다면

 

그땐 어찌하시렵니까?”

 

사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명개도 목청을 높였다.

 

“책사 맹부가 죽은 일을 전하께서는 벌써 잊으셨는지요?

 

그는 자신의 집 사랑채에서 칼에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비록 아무도 본 사람은 없지만 이는 개소문의 소행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잔인무도한 자에게 1만 군사를 내주는 것은 범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부디 통촉합시오.”

 

사실 책사 맹부가 죽고 나서 조정 대신들은 이구동성으로 그것이 연개소문의 짓임을 단정하고 나왔다.

 

소형 고정의와 의후사 고운 정도가 개소문이 전날 이미 요동으로 출발한 것을 들어 중신들의 단정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대세를 돌이키지는 못했고, 임금도 중신들의 말에 격분하여 개소문이 돌아오기만

 

하면 친히 문초를 하겠다며 이를 갈았다.

 

“맹부가 죽은 일을 과인이 잊을 턱이 있는가.”

 

하지만 사정은 이미 달라져 있었다.

 

임금은 당이 쳐들어온다는 말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을 뿐이었다.

 

“하나 경들도 개소문이 고하는 바를 함께 들었지 않은가?

 

그리고 맹부의 일은 사실 누구의 소행인지 반드시 단정짓기가 어렵다.

 

개소문이 전날 말을 타고 떠난 것을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자고로 사람을 의심하기로 들면 끝이 없는 법이다.

 

하니 경들도 이제 의심을 거두고 개소문이 하는 일을 지켜보도록 하라.”

 

임금이 그쯤에서 사건을 무마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사본은 이 모두가 개소문이 말한 당나라의 위협 때문임을 알아차렸다.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개소문이 말한 대로 당이 과연 우리를 칠 것인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당주가 즉위한 뒤로 한 해도 조공을 거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신을 후히 대접하고 태자까지 입조시켜 과거 어느 때보다도 양국의 우의가 돈독합니다.

 

따라서 무조건 개소문의 말만 믿기도 어려우니 사람을 보내 장안의 동향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임금은 그제야 사본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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