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3장 연개소문 17

오늘의 쉼터 2014. 10. 18. 00:23

제23장 연개소문 17

 

 

 

상기가 본당 옆문을 가만히 잡아당기고는 안으로 손가락만 집어넣어 자꾸 까딱까딱 흔드니

안에서 돌연,

 

“문 닫아라! 기도 중이렷다!”

 

하는 호통소리가 났다.

그래도 상기가 손가락 까딱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으니,

 

“대체 어떤 놈이 신성한 불당에서 저리도 무엄한가?”

 

벌컥 문이 열리고 화려한 금박장삼에 비단 승복 차림을 한 팽지만이 나타났다.

팽가가 앞에 선 상기를 보고,

 

“아니 형님, 무슨 일인데……”

 

잔뜩 골이 나서 도둑놈 개 나무라듯이 따지고 들려다가 뒤에 선 유자와 그만 눈이 딱 마주쳤다.

 

“어어?”

 

팽지만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안녕하시오, 대사.”

 

유자가 빙긋 웃자 팽지만은 냉큼 맨발로 법당을 내려와서,

 

“이리 좀 오게, 어서 이리로 좀 와……”

 

하고는 본당 뒤로 데려가더니 인적이 없는 곳에 이르러서야 와락 몸을 돌려 유자를 끌어안았다.

상기도 그랬지만 팽지만 역시 유자를 마치 친동생처럼 여기는 눈치였다.

그는 한동안 유자와 볼까지 비벼가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뒤따라온 개소문을 쳐다보았다.

개소문이 인사를 하자 팽지만은 한동안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다가,

 

“저놈의 중이 요즘 하도 많은 사람을 만나 정신머리가 없으니 자네가 이해하소.

장수는 한번 싸운 사람을 잊지 않는 법이지만 저 중은 몰골을 봐도 영락없는 중이지 않아?”

 

상기가 일변으론 개소문에게 말하고 또 일변으론,

 

“전날 을지 장군과 같이 왔던 연개소문이야. 어양 객사에서 싸운 연개소문!”

 

팽가를 향해 냅다 고함을 지르자 그제야 겸연쩍게 씩 웃고서,

 

“햐 참, 그놈의 세월이 덧없다.

팽팽한 젊은이가 어찌 이처럼 몰라보게 변했나?”

 

정말 고승이나 된 양 근엄하게 말하고는 덥석 달려와 손을 끌어 잡았다.

팽가는 이들을 데리고 본당 아래채의 은밀한 곳으로 갔다.

신통재(新通齋)란 현판이 걸린 방이었다.

방안에 들어서자 팽가는 제일 먼저 치렁치렁한 금박장삼을 벗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에고, 당최 성깔에 안 맞아서 원!”

 

“이 사람아, 그래도 그게 밥줄이야.”

 

상기는 그런 팽가를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이죽거렸다.

네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자 팽가는 유자에게 을지문덕과 대허,

청령의 안부를 두루 물은 다음 이제 자신이 갈석산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유자에게 식솔들을 끌고 그곳에 와서 함께 지낼 것을 제안하였다.

유자는 대답을 미루고 웃기만 하는데 상기가 대신,

 

“어림도 없는 소릴랑 하지도 말게.

아무려면 을지 장군이 산적패와 같이 지낼까?”

 

하니 팽지만이 볼멘소리로,

 

“산적은 왜 산적이오? 그 간판 내린 지가 언젯적인데?”

 

하며 항변하였다.

한동안 이런저런 한담이 오가던 끝에 유자가 정색을 하며,

 

“팽형이 갈석산에 지은 농사도 이만하면 대풍이지만 여기 개소문도 그에 못지 않은 농사를 지었소.

개소문은 그사이 우리나라의 상신이 되어 요동에 짓는 장성을 감독하러 왔다가 마침 노형들

생각이 나서 일부러 예까지 찾아온 길이외다.”

 

하고 저간의 사정을 말하였다.

이에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이거 몰라뵈어 죄송하오.”

 

“상신이라면 나라에서 첫손 꼽히는 고관 대작이 아니오?”

 

별안간 말투까지 예우하며 크게 반가워하였다.

유자가 말을 끊지 아니하고,

 

“실은 노형들께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소.”

 

하고는 엿듣는 사람이 없는데도 목소리를 잔뜩 낮추어,

 

“혹시 칼 쓰고 창 쓰는 사람 백 명쯤을 평양으로 꿔갈 수 없겠소?”

 

물으니 팽지만은,

 

“언제? 당장?”

 

하고 묻는데 상기는 덮어놓고,

 

“왜 없어. 백이 아니라 백오십도 꿔줄 수 있지.”

 

하였다.

둘 다 이유는 안 묻고 대답부터 시원하니 유자가 도리어 궁금했다.

 

“어디에 쓸 건지는 왜 안 묻소?”

 

“어디에 쓰건 동생이 알아서 쓰겠지. 이틀만 말미를 주면 구해보겠네.”

 

상기의 대답을 듣고 유자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렇게 금방 쓸 것이 아니라 금년 10월쯤에나 필요한 일이오.”

 

“그럼 날짜를 정확히 못을 박고 가게.”

 

“웬만큼 능수능란한 군사들이라야 합니다.”

 

“정병들만 추려보지. 다들 한가닥씩은 하는 자들이니

무슨 짓을 시키든 크게 낭패 보는 일은 없을 걸세.”

 

얘기는 그렇게 시작됐지만 그로부터 장시간 대화를 나누다가 보니

자연히 군사가 필요한 상황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소문이 입을 열고 고구려의 사정을 대강 밝힌 뒤 무슨 계획으로

군사가 필요한가를 제법 소상하게 말하자 상기와 팽지만은 동시에 크게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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