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3장 연개소문 18

오늘의 쉼터 2014. 10. 18. 00:37

제23장 연개소문 18

 

 

 

그런 얘기들을 한창 나누고 있을 때 바깥에서 신통 대사의 시자가 기척을 내며,

 

“큰스님 안에 계시옵니까?

지금 큰스님을 알현하려는 신도들이 난리가 났습니다요!”

 

하자 팽지만이 돌연 짜증을 벌컥 내며,

 

“이놈아, 오늘은 아무도 안 만난다! 내가 지금 신도들이나 만날 때냐?”

 

하고서,

 

“그럼 역모가 아니오? 상신께서 역모를 일으키겠소?”

 

눈빛을 빛내며 개소문의 앞으로 무릎을 바짝 당겨 앉았다.

개소문의 얘기를 다 듣자 상기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그렇다면 군사들만 보낼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가리다.”

 

하고는,

 

“자네도 뜻이 있거든 따라 나서게.

그놈의 중노릇 지겨워서 못해먹겠다니

모처럼 고구려에나 가서 신나게 몸이나 풀고 오는 것도 괜찮지?

그러고 나면 또 한 몇 해 착실히 연좌방석에 올라앉아 있어도 엉덩이에 좀이 슬지는 않을 게야.”

 

팽지만을 보고 말하니 갑자기 팽가의 안색이 부처처럼 환해지며,

 

“그거 좋은 생각이오!

사실 나는 요즘 들어 살맛이 안 나!

장부란 말을 달리고 칼을 써야 장부지,

허구한 날 쭈그리고 앉아 끝도 없이 찾아오는 부녀자들이나 상대해야 하니

차고 앉은 불알이 썩을 지경이오.

그렇게 산 지가 햇수로 10년째야.

오죽하면 이놈의 절에 확 불이나 싸질러버릴까,

요새는 자고 나면 그런 마음이 불쑥불쑥 든다니까?”

 

당장 칼을 차고 나가기라도 할 듯이 좋아했다. 

개소문과 유자는 신통사에서 얼마간 묵다가 요동으로 돌아왔다.

임지를 꽤 여러 날 이탈했지만 별일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들이 다시 신성으로 가서 양만춘을 만나니 만춘이 말하기를,

 

“저의 휘하에 시윤이란 자가 있는데 한번 만나보시렵니까?”

 

하고 물었다.

개소문이 깜짝 놀라며,

 

“시윤이라면 임금의 충복으로 유명한 시명개의 일가가 아니오?”

 

하고 반문하자 만춘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칠중성에서

신라 장수 알천에게 패한 책임을 지고 3년째 노역 중이라는 사실을 일러주었다.

 

“시윤이 비록 중외대부의 먼 조카뻘이지만 문책을 당할 때

시명개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은 것을 섭섭하게 여겨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더욱이 시윤이 새로 장가를 들려 했던 처자는 대사 자 섭질(攝質)의 딸이었는데,

시윤이 요동으로 쫓겨오자 섭질이 딸을 늙은 내평 금태에게 후처로 주어

임금과 조정에 대한 시윤의 사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시윤이란 자는 본바탕이 과히 좋지 않은 인물인데 성주께서는

그런 자를 왜 내게 천거하는지요?”

 

“저도 시윤이 충신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사람이 아쉬울 때입니다.

또한 시윤이 패전의 책임을 지고 북방으로 쫓겨올 때 그의 형제 일곱 명도 같이 벌을 받았는데,

다들 조의선인 출신으로 칼과 창을 다룰 줄 압니다.

특히 시윤의 형인 시은(侍恩)과 셋째 아우 시진(侍進)의 무예는 형제들 가운데서도 탁월하여

나이 스물에 구사자에 뽑혔던 시윤을 능가합니다.

하물며 그 두 사람은 시윤과는 달리 조정의 대당 정책에 불만하여 처음부터 벼슬을 살지도 않았습니다. 시윤 하나만을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닌 줄 압니다.”

 

개소문은 양만춘의 말뜻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그들의 노역이 아직 1년쯤 더 남았으나 만일 상신께서 데리고 가시겠다면

제가 기한을 앞당겨 빼내드리겠습니다.”

 

“고맙소. 내 성주의 충심과 호의는 두고두고 잊지 않으리다.”

 

개소문은 만춘의 손을 붙잡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해 4월, 개소문과 유자는 시윤 형제들과 함께 요동을 출발했다.

돌아오는 길에 일행은 백산으로 가서 을지문덕을 만나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여름이 되자

마지막으로 내지를 잠행하며 욕살들의 의사와 5부의 민심을 재확인했다.

서부는 개소문의 본향이니 더 알아볼 것이 없고, 동부 욕살 고명화는

임금의 누이와 혼인한 사람이므로 역시 더 알아볼 것이 없었다.

나머지 3부 가운데 북부 욕살 고창개는 연태조와 가장 절친했던 인물로,

그 아들인 고연수(高延壽)가 오골성 성주로 있는 데다 임금의 비굴한 대당책 때문에

사직이 망한다고 입버릇처럼 주장해온 사람이었다.

그는 개소문이 찾아가서 시국을 한탄하자 사람들이 여럿 듣는 앞에서,

 

“내가 20년만 젊었어도 저놈의 임금을 폐위시킬 계책을 짜겠네!”

 

하고 큰 소리로 분통을 터뜨렸다.

중부와 남부의 사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부의 고선(高扇)과 남부 욕살 고혜진(高惠眞)은 둘 다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특히 개소문과 마찬가지로 얼마 전에 욕살을 계승한 고혜진은 개소문이 당도하기 전에

미리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제 휘하에 향군 맹졸이 2천여 명이나 있습니다.”

 

하고서,

 

“혹시 상신께서 군사가 필요하시면 제가 이들을 데리고 함께 가겠습니다.”

 

하고 제안하였다.

개소문이 웃으며,

 

“뜻은 고마우나 머리를 숙이고 남의 신하가 된 처지에 군사가 무엇 때문에 필요하겠소?

나는 그저 요동의 공역 감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민심이 어떠한지나 알아보러 잠깐 들렀을 뿐이오.”

은근히 거절하고는,

 

“하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따로 기별을 하지요.”

 

하며 여운을 남겼다.

평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자가 궁금하여 까닭을 물었다.

 

“자네는 남의 나라에 사는 산적패까지 동원하면서

어찌하여 고혜진이 말한 2천이나 되는 군사를 마다하는가?

잘 훈련된 군사 2천이면 거사는 얼마든지 도모할 수 있네.”

그러자 개소문이 대답했다.


“그건 자네가 권력의 속성을 몰라 하는 말이네.

갈석산에서 얻은 산적패는 우리 군사지만 고혜진이 말한 군사 2천은 고혜진의 군사일 뿐이지.

그럼 정작 거사를 도모하고 난 뒤가 복잡해지거든.

고혜진이 만약 자신은 남부에 그대로 있고 군사만 꿔주겠다고 했으면 나는 고맙게 받았을 걸세.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돕겠다고 하더군.”

 

개소문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힘으로만 감당해야 하네.

자네와 나, 시윤의 일곱 형제,

그리고 10월에 약조한 갈석산 군사 1백여 명이 우리에겐 전부일세!”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4장 원한 2  (0) 2014.10.18
제24장 원한 1   (0) 2014.10.18
제23장 연개소문 17  (0) 2014.10.18
제23장 연개소문 16  (0) 2014.10.18
제23장 연개소문 15  (0) 2014.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