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원한 1
개소문이 도성으로 귀환한 것은 그해 9월이었다.
임금과 조정 중신들은 개소문이 나타나자 크게 놀랐다.
“경은 어찌하여 이토록 빨리 왔는가?”
건무왕은 대경실색하여 개소문을 나무랐다.
하지만 개소문의 대답은 태연했다.
“신은 왕명에 따라 장성 공역을 감독하고 돌아왔나이다.”
“그렇다면 장성이 모두 축조되었더란 말인가?”
“아닙니다. 하오나 공역은 이제 차질 없이 진척되고 있으므로 안심하소서.”
“장성이 완공되는 것을 보고 돌아오라고 하지 않았던가?”
“장성이 완공되려면 앞으로도 몇 년은 족히 더 있어야 합니다.
한두 해만 같아도 대역사의 완공을 보고 돌아오려 했으나
생각보다 공사가 험해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나이다.”
“그렇다고 경이 돌아오면 누가 공역을 감독한단 말인가?”
“성주들과 관수들이 열심히 직무를 다하므로 과히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개소문의 대답이 워낙 확고하니 임금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보다 못한 사본이 나섰다.
“지난날 맹진공과 금태공은 7년씩이나 역부들과 같이 숙식하며 왕명을 받들다가 급기야
맹진공은 죽고 금태공도 나이가 들어 돌아왔거니와, 젊은 상신께서는 떠날 때 말과는 달리
고작 한 해도 넘기지 못하고 돌아오니 실로 어이가 없소.
제아무리 성주와 관수들이 있다고는 하나 조정에서 감독할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금태공이 돌아온 후 공역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겠소?”
사본의 말에 힘을 얻은 임금이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 말이 필요 없다! 다시 요동으로 가라!”
그러자 개소문은 잠시 궁리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신이 부랴부랴 돌아온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요동에 가서 떠도는 말을 들어본즉 일전에 우리나라를 다녀간 진대덕이
요동 일대를 샅샅이 헤집고 다니며 유람을 핑계로 지형 지세를 자세히 그려갔는데,
그것을 기회로 당주가 곧 쳐들어올 거라는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나이다.”
“당은 쳐들어오지 않는다.
과인이 얼마나 지극한 정성으로 당을 섬기는데 당주가 쳐들어온단 말인가?
무지한 백성들의 쓸데없는 기우일 뿐이다.”
임금은 잘라 말했으나 사본을 비롯한 중신들의 안색은 많이 굳어져 있었다.
개소문이 끊어진 말을 이었다.
“신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고 관수들을 안심시켰지만 만일의 일을 알지 못해 사람을 시켜
은밀히 장안의 동향을 알아보았나이다.
전하께서도 혹시 아시는지 모르오나 신은 오래전 장안에 유숙할 때
지금의 당주와 친분이 깊어 침식을 같이한 날이 많았고,
한 마디를 들으면 열 가지 속뜻을 알아차릴 정도는 되었습니다.
비록 세월이 흘렀지만 그가 군사를 낼 때 반드시 백마를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1백일 동안 여자를 멀리하며, 계책과 지략을 짜내기 위해 어두운 방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하는 것이야 어찌 달라졌겠나이까?”
신하들은 물론이고 임금도 개소문이 당주와 한이불을 덮고 잠을 잤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였다.
자연히 그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인편에 알아본즉 당주는 금년 여름에 백마를 잡아 방장산에 제사를 지냈고,
오랫동안 비빈의 거소를 찾지 않으며, 요즘은 가까운 신하들조차 얼굴을 대하기 힘들다고 하니
어찌 두려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일순 편전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개소문이 보니 중신들의 낯은 이미 놀라움과 충격으로 굳어졌고,
좀 전까지만 해도 그럴 리가 없다고 장담하던 임금 또한 고개를 앞으로 빼고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임금의 심약한 점을 노린 개소문의 거짓말이 먹혀드는 순간이었다.
“계속하라!”
임금이 개소문을 재촉했다.
“고창과 토번, 돌궐 등이 모두 복속되거나 번국의 충성을 맹약하였으므로 만일 장안에서
지금 군사를 일으킨다면 쳐들어올 데라곤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요동으로 오는 길목인 탁군에서까지도 전시 징발이 있다는 풍문이니
이쯤 되면 요동에 나도는 말이 반드시 근거 없는 헛소문만은 아니지 않겠나이까?
신이 알아보고 또 알아본 뒤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장성 공역은 시일이 지나서도 다시 쌓을 수 있지만 자칫 요동을 잃어버리면
그 수고로움조차 모조리 당의 수중에 들어가 당나라의 재산이 될 것이니
신으로선 그저 무섭고 두려운 마음밖에 없습니다.
빨리 돌아온 것은 그 때문입니다.”
개소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임금은 땅이 꺼지게 탄식했다.
“하면 이 노릇을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그러나 누구 하나 나서서 방책을 말하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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