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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장 연개소문 12

오늘의 쉼터 2014. 10. 17. 23:28

제23장 연개소문 12

 

 

 

흡사 송충이 두 마리가 달라붙은 듯 굵고 시커먼 개소문의 눈썹이 강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시선을 마주친 맹부에게 자연히 전날의 일이 떠올랐다.

그는 임금과 자신의 세도를 믿고 정작 큰소리는 쳤으나 그 살벌한 시선을 대하는 순간

오금이 저리고 등에 식은땀이 채였다.

 

“맹주부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충신이라면 임금을 바로 모셔야 한다는 말 외에 제가 달리 또 어떤 얘기를 하던가요?

더구나 그 자리는 망부의 초상에 와주신 것이 고마워서 인사를 갔던 자리가 아니던가요?”

 

개소문은 비록 임금의 앞이었지만 눈 한번 깜짝거리지 않고 매섭게 다그쳤다.

그 기세에 눌리고 서슬에 질려서 맹부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곤경에 빠진 그를 구해준 사람은 왕이었다.

 

“어쨌거나 짐은 너의 자질이 흉포하다는 말을 들어서 국상의 자리를 주려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하니 서부로 돌아가 욕살의 지위만 계승함이 어떠한가?

덕을 쌓고 충성을 다하면 훗날 기회는 또 있을 것이다.”

 

임금의 말에 개소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번 절하고 대답했다.

 

“전하의 뜻이 정녕 그러하시다면 도리가 있으오리까마는 단지 국법에 정한 망친의 관직도

계승하지 못하는 신의 부족함과 용렬함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만일 맹주부께서 신의 말 때문에 마음이 상하셨다면 대왕 전하께서 지켜보시는 앞에서

사죄할 용의가 있습니다.

또한 신이 잔인하고 포악한 사람으로 소문이 났다면 이는 전적으로 신이 아직 나이 어리고

덕이 없어 생긴 오해이니 만일 잘못된 일을 저지른다면 그때 가서 처벌을 받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아직 개 한 마리도 잔인하게 죽여본 일이 없습니다. 부디 통촉하여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개소문의 태도는 무척 양순하고 간절해서 짐짓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릴 정도였다.

개소문은 맹부를 돌아보며,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저의 충정과 진심을 헤아려주십시오.”

 

하고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임금도 그제야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하면 만약 앞으로 잘못된 점이 있을 때는 국상의 자리에서 폐하여도 후회함이 없겠는가?”

 

“여부가 있으오리까.”

 

“좋다. 네가 짐과 만조의 문무 백관 앞에서 약조한 일이니 명심하라.”

 

그런 다음 왕은 비로소 막리지의 지위를 내렸다.

개소문은 아버지의 자리를 계승하는 순간 감격하여 눈물까지 글썽였다.

이를 본 대신들 가운데는 그가 소문과는 달리 유한 사람이라고 믿는 자가 적지 않았다.

개소문이 막리지의 자리를 찾아가 시립하자 임금은 만조의 백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자고로 요동에 천리성을 축조하는 일은 지금 나라에서 첫손에 꼽는 중대사이니

어찌 역부 한 사람, 돌 하난들 부리고 나르는 일이 위중하지 않겠는가?

지난 10여 년간 과인은 먹고 입는 것을 아껴가며 공을 들이고 정성을 쏟아왔거니와,

이제쯤 그 공역이 얼마나 완성되었는지 알아볼 때가 되었다.

들리는 말에는 시일이 흐르다 보니 관수나 역부들도 당초의 각오와 열의가 많이 침체되어

매년 60리 성을 쌓아야 할 공역이 작년에는 30리도 채 쌓지 못했다고 한다.

과인은 그 일을 걱정하느라 침식이 두루 순조롭지 않다.

누가 과인을 대신하여 장성의 축조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관수들을 다그쳐

공역이 예정대로 진척되도록 감독할 수 있겠는가?”

 

임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노신 시명개가 입을 열었다.

 

“장성 축조는 천하의 대사로, 이를 감독하는 일은 웬만한 지위로는 어렵습니다.

신이나 막리지 가운데 한 사람을 보내주십시오.”

 

그러자 사본이 말했다.

 

“대부의 충정은 만조를 감동시키는 바이나 어찌 칠순 노인을 험지로 보내

하물며 장성 축조와 같은 위험한 노역을 감독하게 하겠나이까?

젊은 사람을 뽑아 보내셔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런 공론에 맹부가 빠질 리 없었다.

 

“그러하옵니다. 연부역강(年富力强)한 막리지가 적임인 줄 아뢰오.”

 

신하들이 다투어 간하는 말을 듣고 임금은 개소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국상을 대하는 예로 말투를 고쳐 물었다.

 

“막리지의 뜻은 어떠하오?”

 

개소문은 공역의 감독을 핑계로 자신을 요동으로 내쫓으려는

임금과 조정 대신들의 수작을 단번에 간파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명쾌하고 수럭수럭했다.

 

“신이 어찌 그와 같은 막중대임을 피하겠나이까.

다만 관수들을 감독하고 공역을 재촉하자면 외지 관리들을 다스릴 수 있도록 사령장을 써주십시오.

그리하면 신이 내일이라도 요동으로 떠나겠나이다.”

 

그러자 임금은 매우 흡족한 낯으로 말했다.

 

“어찌 사령장뿐이겠는가?

관수와 성주의 생사여탈권도 함께 줄 것이니

막리지는 가서 공역이 차질 없이 진척되도록 애써주시오.”

 

개소문이 퇴청하여 집으로 돌아올 때

노신 고정의가 사위 뇌음신과 함께 뒤따라와서 홍변한 얼굴로,

 

“이는 국상을 멀리 쫓아 보내려는 술수입니다.

아침에 벌써 그런 논의가 있었는데 알고 계시는지요?”

 

하고 묻자 개소문이 웃으며,

 

“그런 얄팍한 술수를 눈치채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제게도 다 뜻이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조만간 이 일로 가슴을 치고 후회하는 자가 여럿 생길 것입니다.”

 

알 수 없는 대답을 한 뒤에,

 

“모쪼록 전날 저희 집에서 나눈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제가 일을 벌일 때는 두 분께서 반드시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고 재차 다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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