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3장 연개소문 10

오늘의 쉼터 2014. 10. 15. 14:46

제23장 연개소문 10

 

 

 

임금은 개소문을 잘 몰라서,

“그 귀신 같은 늙은이가 죽으니 앓던 이가 빠진 것 같구나.

그런데 연태조의 아들은 어떤 자인가?”

하고 물으니 처음엔 사본이 나서서,

“연태조의 아들 개소문은 나이 아홉 살에 조의에 뽑혀 무리를 끌고 다니며

우두머리 노릇까지 한 자로 그 성정이 연태조를 빼다 박은 듯이 흡사할 뿐 아니라

한때 장안에 유숙하면서는 지금의 당주 와 의형제를 맺을 만큼 절친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주가 현무문에서 형제를 죽일 때 이를 반대하다가 사이가 틀어져 뒤로는

원수처럼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가 조정에 들어오면 그 아비의 전철을 밟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하였고 곧장 뒤를 이어 맹부가 말하기를,

“본래 장자 상속이 통례이긴 하오나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일문의 종친으로

승계하는 예도 없지 않습니다.

연태조의 아들 개소문은 제법 꾀가 있고 용맹스러운 인물로 알려졌으나

오랫동안 혼자 산천을 떠돈 탓에 그가 어떤 자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개 이런 자를 궐내에 들여놓으면 뒤가 시끄러운 법이옵니다.

신이 연태조의 상가에 가서 보고 온 자 가운데 적임자가 있었나이다.

그로 하여금 연태조의 남은 임기를 잇게 한다면 귀가 시끄러울 일은 없을 듯합니다.”

하고서 자신이 엿본 연서구의 됨됨이를 설명하였다.

“경의 꾀가 탁월하다!”

이야기를 듣고 난 건무왕은 맹부를 칭찬하고 곧 연서구로 막리지와 서부 욕살을 삼도록 명하려 하였다. 그런데 노신 금태가 이의를 제기했다.

“연서구란 자는 조정에서 벼슬을 살아본 일이 없고 서부에서도 인심이 어떤지 알 길이 없나이다.

그런 자를 막리지로 삼는다면 백성들의 빈축을 사는 것은 물론이옵고 자칫 조정과 관가의

위신마저 떨어뜨릴 공산이 큽니다.

우선 서부에 사람을 보내 연서구의 신망을 물어본 연후에 일을 처리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임금은 금태의 말에 이유가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막리지를 당분간 공석으로 비워두고 연나부로 내관 하나를 파견해 민심을 물어오도록 하였다.

개소문이 도성에 돌아와 이런 사실을 들어 알게 되자

그는 사람들에게 물어 다짜고짜 맹부의 집을 찾아갔다.

맹부가 난데없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람을 보니

키는 5척이 채 되지 않은 땅딸보에 어깨는 넓고 머리는 커서 어른인지 아이인지 분간이 어려운데,

유난히 머리카락도 검고 눈썹도 짙고 귀밑에서 턱 언저리까지 온통 뻣뻣한 털이 뒤덮고 있어서

비로소 어른인 줄 알았다.

“뉘신가?”

맹부가 점잖은 말투로 물으니 그가 눈빛을 번들거리며,

“그대는 눈으로 뻔히 보고도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나를 어찌하여 임금 앞에서 나쁘게 말하였던가?”

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이때까지도 사정을 알지 못한 맹부는 생면부지의 젊은이가 환갑이 가까운 자신에게

그대 운운하는 것이 발칙해서 돌연 버럭 고함을 지르며,

“네 이놈! 어느 안전에서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느냐? 도대체 네놈이 누구더냐?”

하고는 분을 참지 못하고 일어나 마당으로 내려섰다.

맹부도 그리 큰 키는 아니었지만 내려서서 보니 젊은이의 키는 겨우 턱밑에 닿을락말락하여

더욱 시쁜 마음이 일었다.

“누구냐, 이놈!”

문상을 가서도 연정토만 보고 왔으니 맹부는 개소문을 알아볼 턱이 없었다.

그러자 젊은이가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너희와 같은 것들이 수십 년씩 조정 중신으로 있으니 임금이 나라를 망치는 것도 당연지사다.

이 늙은 놈아, 네 허연 대가리에서 나온 계책이 지금까지 단 한 가지라도 나라에 보탬이 된 것이 있더냐? 금왕의 실정은 태반이 너와 사본의 대가리에서 나온 줄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개는 아가리만 열면 짖는다고, 밤낮 그놈의 대가리로 생각하는 것이 권모술수요

잔꾀밖에 더 있었느냐?  구역질 난다,

이 간신배 놈아.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광명정대한 길로 가보라!”

눈 한번 깜짝거리지 않고 호통을 쳤다.

그 서슬에 맹부가 사뭇 기가 질려 뒤로 두어 발짝 옮겼다가,

“혹시 연태조의 아들인가?”

문득 짚이는 바가 있어 묻자,

젊은이가 그 말에 답은 하지 않고 품안에서 칼 한 자루를 꺼내 들더니,

“너희가 만일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내 종친을 데려다 선친의 뒤를 잇게 한다면

제일 먼저 너부터 죽여 없앨 것이다. 실은 오늘 너를 죽이러 찾아왔다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는 것이니 그리 알라.

죽기 싫거든 법대로 할 것이지만 살 만치 살아 미련이 없거든 네 마음대로 하라.”

시퍼런 칼날을 한번 뽑았다가 도로 집어넣고는 그대로 등을 돌려 사라졌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3장 연개소문 12  (0) 2014.10.17
제23장 연개소문 11  (0) 2014.10.17
제23장 연개소문 9  (0) 2014.10.15
제23장 연개소문 8  (0) 2014.10.15
제23장 연개소문 7  (0) 2014.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