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23장 연개소문 13

오늘의 쉼터 2014. 10. 17. 23:38

제23장 연개소문 13

 

 

 

이튿날 개소문은 아침 일찍 입궐해 임금을 알현하고 사령장과 절도봉까지 받아 요동으로 떠났다.

그런데 국상의 행차를 수행하는 이가 아무도 없으니

그를 요동으로 쫓아 보내는 데 일조한 중외대부 시명개조차 임금의 처사가 너무했다고 혀를 찼다.

개소문이 홀로 한 필 말에 올라 도성을 출발했다가 어느 만큼 가서는 슬그머니

말을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아우인 정토가 깜짝 놀라며,

 

“요동으로 안 가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개소문이 웃으며,

 

“가다가 생각하니 깜빡 잊은 물건이 있어 도로 왔다.”

 

하고 백산에서 데려온 을지유자를 손으로 가리키니 유자는 말없이 웃기만 하고,

 

“유자 형님도 요동에 같이 가십니까?”

 

정토는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개소문과 유자는 미리 무슨 말이 있었던지 어둑어둑 날이 저물 때까지 집에서 뒹굴다가

유자의 아내인 청령(淸玲)이 지어준 이른 저녁상까지 물리고는,

 

“이제쯤 슬슬 나서볼까?”

 

하고 나란히 말에 올랐다.

그렇게 집을 나선 두 사람은 요동으로 가지 않고 책사 맹부의 집 앞에 당도했다.

유자가 개소문을 보고,

 

“어제만 해도 열 명도 넘는 종놈들이 대문 앞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더니

자네가 요동으로 떠난 줄 알고 오늘은 개미 새끼 한 마리 뵈지 않는군.”

 

하며 맹부의 집 앞이 한산한 것을 말했다.

 

“사정이 이러면 일도 아니겠네. 굳이 둘이 들어갈 필요가 있는가?”

 

개소문의 말에 유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네는 밖에 있게. 내가 해치우지.”

 

하니 개소문이 고개를 흔들며,

 

“자네가 밖에 있으란 소리야.”

 

하고는 말잔등에 올라갔다가 비호처럼 담을 넘어갔다. 

유자가 깜짝 놀라며,

 

“하여간 날쌔기는.”

 

하고 덩달아 담을 넘어가서,

 

“이 사람아, 자네는 얼굴을 알지 않나?”

 

“죽을 놈이 얼굴을 알면 어때?”

 

“행여 다른 사람 눈에라도 띌까 하는 소리지.”

 

“안 띄면 될 것 아닌가?”

 

둘이 몇 차례 승강이를 하다가 결국,

 

“같이 하세 그럼.”

 

“좋아.”

 

결론을 내고는 맹부가 거처하는 사랑채로 잠입하였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맹부는 이날 모처럼 마음 편히 사랑채에서 글을 읽다가 한가로이 졸던 중이었다. 개소문이 다녀간 뒤로는 후환이 두려 워 밤마다 잠을 설친 그였다.

사랑채 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자객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 맹부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졸고 있었다.

그런 맹부를 유자가 칼끝으로 살살 이마를 찔러 깨우니

위인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는 한동안 사태를 알아채지 못하다가,

 

“누, 누구냐?”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벽이 무너져라 등짝으로 밀어댔다.

위인의 부릅뜬 눈에 차츰 개소문의 모습이 보였다.

개소문이 가만히 웃으며,

 

“너는 내가 잔인하고 포악하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지?”

 

하고 물었다.

맹부가 꼭 어린애처럼 도리질을 하며,

 

“아니오, 나는 아무 말도 한 일이 없소. 정말이오.”

 

“그렇다면 어째서 생면부지의 임금이 내게 그런 모욕을 주었을까?”

 

“그, 그건 말이외다……”

 

맹부는 엉겁결에 둘러댈 말을 찾느라 바쁜데 유자가,

 

“잔인하고 포악한 걸 몰라서 그랬겠지. 이놈아, 잔인하고 포악한 건 바로 이런 게다.”

 

하고는 그대로 칼을 들어 목을 잘라버렸다.

맹부는 변명은 고사하고 비명 한번 지르지 못했다.

잘린 목이 방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만 툭, 하고 났을 뿐이었다.

 

“자, 어서 가세!”

 

유자가 먼저 밖으로 나와 담장을 뛰어넘자 개소문도 허겁지겁 유자를 따라나왔다.

 

“이 사람아, 무슨 성질이 그렇게 급해?”

 

“그런 놈과 길게 말할 게 뭐야?”

 

“원한은 내가 샀으니 죽이는 것도 내 몫이 아닌가?”

 

“누가 죽이면 어때? 나도 원한이 깊네.”

 

“자네가 무슨 원한이 있어?”

 

“조정 중신이란 것들은 다 내 원수야. 생부가 저놈들 때문에 돌아가셨거든.”

 

유자는 자신의 생부인 귀유를 잊지 않고 있었다.

개소문도 그제야 소문으로 들은 귀유의 일을 떠올리고,

 

“아참, 그랬지.”

 

하고는,

 

“그래도 내가 먼저 들어갔지 않아?”

 

말도 안 되는 푸념을 했더니,

 

“나올 때라도 내가 먼저 나와야지.”

 

역시 말 같잖은 대꾸가 돌아왔다. 유자는 재미가 들었는지,

 

“그 사본인가 하는 놈 집은 어딘가?

생부께서는 그 자의 모함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네.

내친김에 간신들을 모조리 요절내고 가세나.”

 

했지만 개소문은 고개를 저으며,

 

“본보기를 보이는 데는 이놈 하나면 충분하네. 곧 또 기회가 있을 테지.”

 

하여 둘은 그 길로 말을 몰아 북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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