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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장 연개소문 7

오늘의 쉼터 2014. 10. 15. 14:31

제23장 연개소문 7

 

 

 

“대체 이것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임금은 편전에서 신하들을 불러모으고 물었다.

그러자 책사 사본(司本)이 입을 열었다.

“해가 빛을 잃는 것은 유사에 더러 있어온 일로 천지의 조화일 뿐 시속과는 무관합니다만

무지한 백성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동요하니 그것이 골칫거립니다.”

“하면 민심을 달랠 방법이 없는가?”

그러자 사본은 꼭 한 가지가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마침 동부 욕살이 맡고 있던 막리지의 임기가 다하였으니

서부대인 연태조를 조정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어떻겠나이까?”

“연태조를?”

임금은 연태조라는 말에 당장 상을 찡그리고 반문했다.

이때 막리지를 비롯한 고구려의 요직은 이십 수년째 건무왕의 남진파 신하들이 임기를 돌아가면서

독점하고 있었다.

중장년에 중신이 된 자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허옇게 변했으나 천수를 다해 죽지 않으면

물러나는 법이 없었고, 사람이 바뀌지 않으니 정사나 정책이 바뀔 까닭도 없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추켜세우는 방법으로 철통같은 유대를 과시하면서 장구한 세월에 걸쳐

권세를 유지하고 국정을 주도했다.

고금의 역사가 어찌 다를 것인가. 오래 한곳에 고인 웅덩이의 물이 썩지 않기란 노인이 젊어지고

죽은 나무에서 새싹이 돋기를 바라는 일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하옵니다.”

“그대는 연태조가 어떤 인물인지 모르는가? 나는 그 늙은이만 보면 밥맛도 달아나.”

“하오나 전하, 민심이 지금과 같은 때는 5부의 결속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연태조는 5부에서 골고루 신망이 두터우므로 오히려 전하께서 그를 불러 중책을 맡기시면

어수선한 민심을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적을 품에 안으라는 얘긴가?”

“그러하옵니다.”

“그럼 그 귀신 같은 늙은 것을 과인이 조석으로 봐야 한단 말인가?”

그러자 사본이 웃으며 말했다.

“연태조는 이미 나이 아흔이 가깝습니다.

소문에는 근년에 와서 부쩍 기력이 쇠하여 집 밖 출입도 못하는 날이 많다고 하니

어찌 전하께서 조석으로 대하겠나이까?

신은 다만 그가 순번에 따라 오래전에 맡아야 했던 책무를 죽기 전에 맡김으로써

전하의 덕업에 보탬이 되고자 할 뿐이올습니다.”

막리지와 같은 상신(相臣:國相)의 직책은 본래 5부 욕살들이 돌아가면서 맡는 것이

국법이었으나 건무왕은 유독 연태조를 기피하여 그를 한 차례 궐번시킨 일이 있었다.
사본이 다시 말을 보탰다.

“순번에 따르면 다음에 막리지를 맡을 사람은 북부 욕살 고창개입니다.

칠순의 개보다 차라리 아흔 된 늙은 범을 취하시는 것이 인심도 더 얻을 수 있지만

피곤함도 덜한 일거양득이 될 것입니다.”

사본은 고창개가 연태조의 추종자임을 빗대어 한 말이었다.

달리 묘책이 없던 임금은 결국 사본의 말을 좇을 수밖에 없었다.

서부대인 연태조가 막리지를 제수받아 물경 이십 수년 만에 다시 조정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그때는 소문처럼 건강이 좋지 않아 정무는커녕 출면도 못하는 날이 훨씬 많았다.

그는 왕명을 받아 서부에서 도성으로 올 때 둘째아들인 개소문을 불러 말하기를,

“이는 임금의 자충수다.

내가 임금과 조정 대신들의 빤한 속셈을 알고도 왕명을 받드는 체 대궐로 들어가는 까닭을

너는 알고 있느냐?”

하니 개소문이 숙연한 얼굴로 고개만 끄덕였다.

도성에 온 연태조가 직방랑중 진대덕이 왔을 때 불편한 몸을 이끌고 주연에 참여하려는 것을

임금이 또 무슨 망발이 나올까 염려하여 호위병을 시켜 막았더니

화를 벼락같이 내고는 집에 돌아와 그 길로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노인이 사흘 밤낮을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숨만 쉬다가 비보를 듣고 서부에서 달려온

개소문의 손을 그악스레 붙잡으며,

“당이 우리를 친다. 당이 우리를 친다.”

같은 말을 일고여덟 차례나 반복하고야 숨을 거두었다.

이때 개소문의 형은 이미 죽은 뒤여서 서른여덟 살의 개소문이 상주가 되어 부상을 치는데,

상가 한쪽에 따로 은밀히 방을 만들어놓고 그 아우인 정토(淵淨土)에게,

“언제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너는 찾아오는 문상객을 받되 빈소에서 진심으로 슬퍼하는 자를 가려 뒷방으로 보내라.”

하고 자신은 아예 뒷방에 틀어박혀 빈소에는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연태조의 막내인 정토가 형의 뜻을 받들어 문상객에게 일일이 절하고 곡을 하면서 보니

도성의 관리 가운데는 소형(小兄) 고정의(高正義)와 뇌음신(惱音信), 의후사 고운(高雲) 정도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 뿐 다른 사람들은 그저 인사치레로 들렀거나 심지어 임금의 책사

맹부 같은 자는 곡소리를 듣고도 헤실헤실 웃으며,

“노인네가 너무 오래 살면 자손들이 힘들지요.

호상이외다. 일흔만 넘어가도 호상인데 돌아가신 어른은 구순이 아닙니까?”

하여 상대하던 정토가 분을 참느라 어금니를 깨물기까지 했다.

개소문은 뒷방에서 아우가 보낸 사람들을 만났다.

태대사자인 노신 고정의는 시초만 해도 남진파 신하들과 생각이 달랐지만

오랜 관직 생활 끝에 처신하는 법을 배워 좀처럼 앞에 나서지 않고 뜻을 감춘 채 지냈다.

그러다가 무자년(628년)에 객부의 책임자를 맡으며 사신으로 발탁되었는데,

그때 임금이 당나라를 안심시킬 목적으로 기밀이나 다를 바 없는 봉역도를 자진해 바치려 하자

크게 놀라 반대했다가 그만 소사자로 좌천되었다.

그는 건무왕의 친당책이 너무 지나친 것에 줄곧 회의를 품어오다가 장안을 다녀온 뒤

이를 더욱 확신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당조를 경계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특히 그는 한동안 가까이 지내던 시명개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시명개는 고정의의 고명딸이 천하절색인 것을 알고 은밀히 청을 넣어 후처로 줄 것을 말하였는데,

고정의가 불같이 화를 내며 면전에서 무안을 주었다.

그리고 한때 자신의 막부에서 함께 일했던 조의 출신의 젊은 장수에게 딸을 시집보냈는데

그가 바로 뇌음신이었다.

그 뒤로 시명개가 권세를 이용해 호시탐탐 고정의를 해치려 했으나 하나뿐인 사위 뇌음신이

그림자처럼 붙어 다녀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뇌음신은 본래 말갈 땅에서 자랐다.

그러나 고구려의 승려 보덕화상(普德和尙)이 불법을 전파하러 말갈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뇌음신의 무예를 보고 크게 탄복하여 데려다가 반룡사(盤龍寺)에서

선가의 무예를 가르쳐 조의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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