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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국운(國運) 19

오늘의 쉼터 2014. 10. 11. 11:41

제22장 국운(國運) 19

 

 

 

“자랑스러운 성조황고의 용병들은 들으라!

 

상대는 우리가 두려워 무기마저 버리고 도망가는 북적의 오합지졸이다!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주살하여 다시는 신성한 계림 땅을 넘보지 못하도록

 

버릇을 단단히 가르쳐주라!”

알천의 우렁찬 고함소리에 힘을 얻은 신라 복병들은 겁에 질린 고구려 군사들을 마음껏 유린했다.

고명화와 고웅이 상대한 신라군도 예외가 아니었다.

용기 백배하여 거침없이 달려드는 적군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서운 맹장이었다.

 

고명화는 누군가가 휘두른 칼에 허벅지를 베였고 고웅은 타고 있던 말을 잃었다.

 

이들은 앞을 막아선 적군 졸개 서넛을 사력을 다해 베고 나서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얼어붙은 강으로 달아났다.

무술년의 칠중성 전투에서 고구려군은 대략 2천의 군사를 잃고 무기 3천 점과

 

군마 1천 마리를 빼앗기는 참패를 당했다.

건무왕은 패하여 돌아온 장수들을 한동안 만나지 않다가 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나서야

 

이들을 모두 대궐로 불러들였다.

 

생각만 같으면 전군을 동원하여 다시 신라를 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요동에 쌓고 있던 장성 때문이었다.

 

왕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고유림의 관직을 삭탈하고 나머지 장수들은 집에서 근신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지었다.

그러나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고유림은 이 일로 마음의 병을 얻어 괴로워하다가 이듬해 봄,

 

도성 북쪽 영류산(대성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었다.

 

뒤에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별안간 내관에게,

“요즘 시윤은 어떻게 지내는지 은밀히 알아보고 오라.”

하며 일렀다.

내관이 시윤의 이웃에 사람을 놓아 알아보니

 

하필이면 그 무렵에 시윤의 처가 죽어 시윤이 새로 장가를 든다고 잔치 준비가 한창이었다.

 

내관이 이 소식을 왕에게 전하자 왕은 크게 노여워하며,

“본래 싸움을 망친 것은 시윤인데 시윤은 조금도 반성하거나 근신하는 빛이 없고

 

애꿎은 노장만 중이 되었으니 만일 이를 알고도 그대로 방치한다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을 것이다.”

하고는 이어,

“시윤은 벼슬과 관직을 삭탈하여 북방의 장성 축조에 3년간 노역을 시키고

 

그 형제들도 같은 벌에 처하라.

 

또한 고유림의 두 아들에게는 각기 의후사와 오졸 벼슬을 내려

 

그 아비의 갸륵한 마음을 이어가도록 하라.”

하였다.

이에 고유림의 두 아들인 운(高雲)과 흥(高興)은 뜻밖의 출세를 하게 되었지만

 

시윤과 그 형제들은 뒤늦게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이것이 곧 건무왕과 고구려 조정에 불어닥칠 거대한 피바람을 예고하는 전주(前奏)일 줄을.

알천이 한 자루 칼로 흔들리는 왕업을 반듯하게 세우고 개선하자

 

신라 여주 덕만은 친히 대궐 앞에까지 나가 개선군을 반갑게 맞이하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노고를 치하하였다.

 

여러 사람을 통해 알천의 신출귀몰한 무용담이 전해지면서 전날 가잠성의 무공에 이어

 

알천은 일약 신라의 영웅이자 최고 장수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심지어 알천을 대장군으로 삼을 때 더러 그의 나이를 문제삼아 반대하던 자들까지도

 

태종(이사부)과 황종(거칠부)을 이을 불세출의 명장이 났다며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용춘이 죽고 나서 슬픔과 도탄에 빠져 있던 신라 조정은 알천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서현은 사직을 청하면서 자신이 맡고 있던 병부령의 자리를

 

알천에게 양보하고자 표문을 올렸다.

 

그는 알천도 알천이지만 마흔이 넘은 유신의 벼슬길을 이제쯤은 열어주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여주가 글을 읽고 서현을 불러 몇 차례 만류하였지만 서현이 눈물을 흘리며,

“신의 나이 어느덧 일흔하고도 다섯이옵니다.

 

한 세대가 흘러가면 다음 세대가 오는 것은 천연의 섭리요,

 

고목이 지나치게 오래 살면 주변의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이치올시다.

 

신은 난정의 시기에 죽은 용춘공과 말하기를 여주께서 무사히 보위에 오르시는 것만 보기로 하였는데,

 

어느덧 그때는 지나가고 맹약하던 벗마저 청산에 묻었으니

 

신이 지금 물러난다 한들 무슨 여한이 있으오리까.

 

전하께서는 알천과 같은 젊고 유능한 인재들을 발탁하여 새로운 세대를 열어가실 때입니다.

 

신과 같은 구세대의 늙은이는 이제 남천과 황강의 물길처럼 순리대로 흘러가게 윤허하여주십시오.

 

사람의 세대도 강물과 마찬가지로 도도히 흐를 때가 아름다운 법입니다.”

하고 간청하니, 이 말을 듣고는 하는 수 없이 사직을 허락하였다.

용춘이 죽은 뒤부터 서현은 매사에 별의욕이 없는 듯했고,

 

주위 사람들의 눈에도 항상 짝을 잃은 기러기처럼 측은해 보였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 유신과 흠순, 두 아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금관국의 마지막 임금이셨던 내 할아버지 구해 대왕께서는 나의 아버지 무력 장군에게

 

계림과 가야의 사직이 둘이 아니라고 당부하셨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러갔으나 여전히 신라인과 가야인은 작금의 사직을 지탱하고

 

떠받치는 양대 기둥이다.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사직이 망하는 것은 필지의 일이다.

 

대개 신라인과 가야인을 나누어 말하는 자는 악신이고 구분 없이 대하는 자는 충신이다.

 

나는 신라 왕실의 사람인 너희 어머니를 만나 평생을 서로 도우며 만인의 부러움을 받고 살았다.

 

그러니 너희의 왼쪽 다리는 금관국의 것이지만 바른쪽 다리는 신라의 것이 아니냐?

 

이제 나의 세대는 끝이 났으나 유유히 흐르는 강물에 시작과 끝이 있을 리 없고,

 

앞물과 뒷물의 경계 또한 부질없는 것이다. 나는 젊어서부터 충신의 도리를 다하고자 했으나

 

기회가 오지 않는 것을 늘 한탄하였고, 시운이 불우하여 때를 만나지 못했다고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나이 일흔을 넘겨 생각해보니

 

기회와 때란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누가 대신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이 이치를 젊었을 때 깨달았다면 얼마나 많은 일을 했을 것인가.”

서현은 자신이 일생을 통해 느낀 점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런 다음 그윽한 눈길로 아들 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늙은 아비가 벼슬살이에서 물러나 집으로 돌아왔으니

 

집안일은 모두 내게 맡기고 너희는 세상으로 나가라.

 

오늘 이후로 세상은 너희 것이다.

 

사직이 흥하고 망하는 것도, 전장에서 이기고 지는 것도,

 

하물며 구름이 일고 새가 날아가는 것까지 일체가 다 너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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