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국운(國運) 18
그 일로 신라군의 사기는 다시 한 번 높이 치솟았으며 고구려 군사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었다.
진채로 돌아온 고유림은 임금에게서 받은 절도봉을 고명화에게 건넸다.
“죽을 자리마저 잃은 패장이 무슨 할말이 있겠소.
나는 살아 있어도 산목숨이 아니오. 하니 이제부터 공이 군사를 통솔하시오.”
고명화도 앞일이 난감하긴 매한가지였다.
“말의 실수로 어찌 장군을 탓하겠소?
게다가 싸움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조갯국에서 모래를 씹는 것처럼 흔한 일이오.
오늘 일은 그저 일진 탓으로 여기고 내일 다시 싸워봅시다.”
“그렇습니다, 장군.
내일은 제가 나가서 알천을 상대해볼 테니 오늘은 일찌감치 군사들을 쉬게 합시다.”
고웅까지 나서서 패하고 돌아온 노장을 위로하였으나 고유림은 참담한 낯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죄인이오. 시윤을 참수하려던 내가 같은 꼴을 당하였으니
여러 장수들과 군사들 앞에 얼굴을 들고 있기도 괴롭소.”
무장은 늙으면 전장에서 사라질 때를 아는 법인가.
알천에게 패하여 돌아온 뒤로 고유림은 더 싸울 마음이 아예 없는 듯했다.
이튿날 날이 밝자 고웅이 말을 타고 나가 알천을 상대했다.
그러나 그 역시 알천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좋게 10여 합을 겨루다가 틈을 보아 도망을 쳤을 뿐이었다.
고웅이나 죽은 갑회보다 무술이 신통찮던 고명화는 아예 싸울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시초에 군사를 내어 그대로 적진을 덮치지 않은 것이 실수다.
이제 기회를 잃어버렸으니 알천을 꺾지 않고는 촌보도 더 진격할 수 없다.”
고명화가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양 진영의 대치 형국이 여드레쯤 계속되고 나서였다.
그는 기왕 거기까지 온 김에 전군을 동원하여 보란 듯이 한판 전면전을 벌이고 싶었지만
적진의 뒤편 숲에서 시시각각 피어오르는 연기와 함성 때문에 섣불리 군사를 내지 못했다.
만일 그랬다가 참패라도 당하는 날이면 장정들이 대부분 장성 쌓는 일에 동원되어
군사가 없던 고구려로선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때는 바야흐로 11월도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책사 맹부의 말처럼 날은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고, 준비해온 군량과 마초도 거의 동이 났다.
1만 명이나 되는 군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먹을 것을 찾느라 야단이었으나
민가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기껏 구하는 거라곤 칠중하에서 건져올린 물고기가 전부였다.
낚시나 작살로 드물게 한두 마리를 건져올리면 수십 명의 군사가 와르르 아귀처럼 달려들어
날것을 뜯어먹는 진풍경이 도처에서 벌어지곤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동빙한설의 맹추위가 엄습해 강물이 두껍게 얼면서부터는
더 구경할 수 없이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 남서풍이라도 불 때면 적진과 평산 숲에서 건너오는 밥짓는 냄새가
굶주린 고구려 군사들을 환장하게 만들었다.
헛고생에 날짜만 죽이던 고구려 장수들은 고명화의 단안으로 마침내 퇴각을 결정했다.
그러나 물러가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라군이 순순히 보내준다면 다행이었지만 언 강을 건너와 뒤쫓기라도 한다면
굶주린 군사들이 참변을 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게다가 이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 것은 알천의 동태였다.
연일 홀로 말을 타고 나와 싸움을 걸던 알천이 그날은
어쩐 일로 아침부터 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었다.
“야음을 틈타 차례로 빠져나가도록 합시다.
장군께서는 초경이 되면 선군을 이끌고 먼저 떠나시오.
나는 적이 깊은 잠에 들고 나면 후군을 데리고 뒤따르겠소.
산양에서 만나기로 합시다.”
고명화는 고유림에게 그렇게 제안했다.
그날 밤 고유림이 선군을 이끌고 떠난 뒤 고명화는 고웅과 의논하여 깃발과 무기를
성루에 그대로 걸어놓고 사람만 빼내 소리 없이 성을 빠져나갔다.
힘들게 공취한 여섯 구루를 눈물을 머금고 차례로 지나쳐 나올 때는 한숨이 절로 터지고,
함께 왔다가 같이 돌아가지 못하는 두 장수를 떠올리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퇴각하는 군사들을 더욱 괴롭힌 것은 살을 에는 듯한 칠중하의 밤공기였다.
장수들은 장수들대로 돌아가서 임금을 뵐 일이 꿈만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금태공과 맹진공처럼 요동에 가서 장성이나 쌓을 것을 그랬소.”
칠중하 강변에 당도할 무렵 고웅이 투덜거렸다.
예원 공주의 남편으로 각별한 총애를 받아온 고명화도
마음이 언짢기는 고웅이나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애초에 시윤이 잘못한 게라. 특히 군사를 움직이고 병법을 쓰는 막중대사일수록
한번 실기(失機)를 하면 다시 기회를 얻기가 그만큼 어려운 법이오.”
말머리를 나란히 한 채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던 두 장수는
선군이 지나간 칠중하 강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자신들이 배를 타고 건너온 곳은 강폭이 넓어 표면의 얼음이 두껍지 못했고,
하류 쪽으로 3, 40보쯤 내려갔더니 폭이 일시적으로 좁아지는 여울이 나타났는데,
능히 걸어서 건널 만하였다.
그러구러 자세히 보니 선군도 그곳으로 건넜는지 강변에 깃발 몇 개가 꽂혀 있었다.
고명화와 고웅은 후군을 모두 그쪽으로 이동시키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후군의 선발대가 강의 중간쯤에 다다랐을 때였다.
갑자기 사방이 대낮처럼 밝아지더니
고막을 찢는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돌과 화살이 비오듯 날아들었다.
“쥐새끼 같은 놈들아! 너희는 허락도 없이 감히 어디로 달아나려 하느냐?”
횃불을 밝힌 한 패의 군사들 틈에서 홀연 한 장수가 늠름하게 소리쳤다.
고명화가 보니 그는 다름아닌 알천이었다.
이때 알천이 이끌고 온 군사들은 김품석이 데려온 원군들이었다.
알천을 걱정한 품석은 행보를 바삐하여 알천의 예상보다 일찍 칠중성에 이르렀다.
알천은 먼길을 오느라 피곤한 원군을 일찌감치 재운 뒤
그날 아침 칠중성의 마지막 구루를 성주 주평에게 맡기고 자신은 품석과 더불어
평산 서쪽으로 우회하여 칠중하 하류에 막 도착하는 길이었다.
그러잖아도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고구려 군사들은 알천을 보자
오금이 저려 발걸음도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하물며 태반이 적의 눈을 속이느라 창칼을 성루에 그대로 버려두고 왔으니
싸우려 해도 싸울 무기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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