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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국운(國運) 10

오늘의 쉼터 2014. 10. 11. 10:25

제22장 국운(國運) 10

 

 

 

자장이 금성을 떠난 이듬해,

 

하루는 용춘의 집으로 고승 원광이 위독하다는 전갈이 왔다.

 

용춘이 급보를 듣고 부랴부랴 황룡사에 도착해보니 원광은 이미 입적한 뒤였다.

 

시자들이 용춘을 보자 울며 말하기를,

“이레 전부터 몸이 조금 아프시다가 갑자기 청절한 계(誡)를 남기시고 방 한가운데

 

단정히 앉은 채로 숨을 거두셨는데,

 

임종할 때 동북간 허공에서 음악소리가 나고 이상한 향기가 절에 가득 차더니

 

곧 영롱한 오색 무지개가 스님의 방 앞에 내려와 머물다가 방금 전에야 사라졌습니다.”

하고 입을 모았다. 용춘 또한 눈물로 옷깃을 적시며,

“아아, 계림의 큰 별이 떨어졌구나. 법사가 가고 없으니 장차 이 나라는 어찌할꼬……”

하고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원광은 속성이 박씨(혹은 설씨)로, 성품이 온화하고 겸허하며 정이 많았고,

 

항상 얼굴에서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어떤 경우에도 노하는 법이 없었다.

 

처음 삼기산(三岐山:경주 안강읍)으로 출가한 이래 젊어서는 서쪽으로 유학하며

 

진(陳)과 수(隋)의 세대를 겪었고, 도유(道儒)를 섭렵하고 제자(諸子)와 사서(史書)를 공부하여

 

그 학문이 중국을 복종시켰다.

수나라 9년, 장안으로 유람을 왔을 때에는 처음으로 불법이 모이고 섭론이 일어나는 시기였는데,

 

원광은 그곳에서 문언(文言)을 받들어 가풍을 진작시켰으며, 미묘한 법리에 대한 지혜로운 해석으로

 

그 명성을 장안에 날렸다.

 

성실열반을 간직하고 삼장 석론을 열람한 뒤로도 정진을 계속하고 각관(覺觀)을 잊지 않으니

 

그의 주변에는 구도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법륜(法輪)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강호를 크게 경탄시켰다.

 

귀국한 뒤로는 임금을 도와 정사를 보좌하고 세속오계를 지어 화랑들을 가르쳤는데,

 

나라에 보탬이 되는 표문이나 국서(國書)가 모두 그의 손에서 나왔다.

 

온 나라의 노유가 그를 스승으로 받들어 도화(道化)를 묻고 말한 대로 행하니

 

실제로 벼슬을 산 일은 없었지만 마음은 항상 나라를 함께 다스리는 것과 같았다.

 

더러는 원광을 일컬어 ‘걸사표를 지은 중’이라고 비난하는 무리가 없지 않았지만

 

원광은 그런 비난에 대하여 초연했으며, 왕업이 번창해야 불법도 번성한다는 신념을

 

일평생 버리지 아니하였다.

 

말년에는 승여를 타고 궁궐에 들어가 왕을 돕고 신하를 가르쳤는데,

 

당시의 여러 현사들 가운데 덕의가 감히 그보다 나은 이가 없고,

 

풍부하고 유장한 문장이 만인을 경도시키는 바였다.

 

진나라, 수나라 세대에는 해동 사람으로 서역에까지 항해하여 도를 구한 자가 드물었으며,

 

설혹 있었다 하더라도 그 이름을 크게 떨치지 못하였는데,

 

원광 이후에 유학하는 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니

 

원광이 처음 사해로 통하는 길을 연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승 원광의 죽음이 알려지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황룡사로 모여들었다.

 

승려와 신도, 화랑과 낭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평소 그를 흠모하고 존경하던

 

산곡간의 무명 속인들까지 대성(大聖)의 마지막 가는 길을 구경하려는 바람에 황룡사 주변은

 

며칠 동안 조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여주 덕만도 만조의 백관들을 거느리고 원광의 빈소를 찾아와 슬피 울었고,

 

환궁한 뒤에는 장구(葬具)를 하사하고 중신들로 하여금 의례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

 

국상(國喪)에 미칠 정도였다.

 

뒷날 한 산승이 원광을 다음과 같이 찬(讚)하였다.

처음 바다를 건너 한지(漢地:중국)의 구름을 뚫으니
그 뒤로 얼마나 많은 이가 오가며 향기로운 덕을 쌓았던가
옛날의 발자취는 청산에 남았는데
금곡(金谷)과 가서(嘉西)에서 소식이 오네

원광의 명활산 장지에서 용춘은 모처럼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났다.

 

서현이야 같은 금성에 살며 오다가다 들러 말벗을 하고 지내는 사이였지만

 

구칠의 누이 지혜나 대세의 아우 만세, 그리고 한돈의 세 아들은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라

 

상대가 알은체를 하지 않았으면 누군지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그 가운데 뭐니뭐니 해도 가장 반가운 얼굴은 취산의 기승 낭지였다.

 

낭지는 백수가 훨씬 넘은 고령임에도 마치 청년처럼 건강하고 활달한 모습으로 참석해

 

그를 아는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하였다.

 

장례를 주관하던 경사의 중들이 한때 원광을 가르친 고승을 알아보고 설법을 청하니

 

낭지가 몇 번을 고사하다가 마지못해 장지에 마련된 야단의 법석에 섰다.

 

구름같이 모인 사람들은 말로만 듣던 신승(神僧)의 입에서 무슨 거룩한 법어라도 나오려나

 

잔뜩 기대들을 하고 정숙하게 주의를 기울였는데,

 

정작 낭지가 원광의 널을 향하여 던진 영결사는,

“새파랗게 젊은 놈이 나 먼저 가다니 되우 무엄하구나!

 

예끼 이 천하에 버릇없는 중놈아, 이번에 가거든 다시는 오지 말아라!”

거의 독설에 가까운 것이었다.

 

입적한 원광의 세수가 물경 아흔아홉이나 되었지만

 

낭지가 그보다 한참 위인지라 다들 할말이 없었다.

낭지는 그래 놓고도 모자랐는지 퉤, 하고 침까지 뱉었다.

 

용춘과 서현이 낭지를 발견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이에 두 사람이 달려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니 낭지가 어린애처럼 활짝 웃으며,

“오랜만이야.”

하고서,

“세상 오래 살 거 아니네.

 

그저 한 7, 80만 넘기면 새파란 애들이 맥을 못 추고 다투듯이 죽어가니

 

내가 어디다 정을 붙이고 살겠나.

 

자네들은 제발 저 버릇없는 중놈처럼 요절하지 말게나.”

하였다. 두 사람이 낭지의 말에 한참을 웃다가,

“어찌하여 법사께서는 통 늙지를 않으십니까?”

서현이 물으니 용춘이 곁에서,

“늙지 않는 게 다 무언가? 오히려 나날이 젊어지시는걸.”

하고서,

“그 비결이 대체 무어랍니까?”

하자 낭지가 웃지도 않고,

“내야 이미 늙을 것도 없고 안 늙을 것도 없네.”

대꾸를 선문답하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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