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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국운(國運) 8

오늘의 쉼터 2014. 10. 11. 10:04

제22장 국운(國運) 8

 

 

 

두 장수가 말머리를 어울러 교전한 지 3, 4합, 그러나 우소는 알천의 적수가 아니었다.

 

힘에서 밀리고 기예로도 밀려 알천의 공격을 한 번 막는 데도 등골이 오싹하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났다.

 

그는 사력을 다해 알천과 6, 7합을 겨루었지만 갈수록 어렵다는 판단이 들자

 

그만 등을 돌리고 반대편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당초의 등등하던 기세에 비하면 너무도 싱거운 싸움이었다.

“이놈아, 잘도 조잘대던 그 주둥이는 어찌하고 도망을 치느냐? 게 섰지 못하겠느냐?”

기세가 오른 알천은 우소를 뒤쫓으며 천지가 떠나가라 고함을 질러 군사들을 독려했다.

“계림의 신군들이여, 사악한 간적의 무리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토벌하라!”

우소의 호기에 고무되어 겨우 싸울 마음을 품는가 했던 백제 군사들은

 

우소가 순식간에 등을 돌리고 달아나는 것을 보자 다시금 싸울 마음이 가셨다.

 

이들에게 사기충천한 신라군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모습은 마치 저승에서 온 사자처럼

 

무섭기만 했다.

 

사비성을 떠날 때는 다들 엄격한 선에 들 만한 맹졸들이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때에

 

적국의 한복판에서 갑절도 넘는 군사들의 습격을 받으니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백제군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이어지고 평화롭던 옥문지 주변은 금세 피비린내 나는

 

아비규환으로 돌변했다.

 

그나마 산속으로 뿔뿔이 달아나는 자는 다행이었고, 급한 김에 못으로 뛰어든 자들은

 

궁척들이 쏜 화살을 맞고 붕어밥이 되었다.

“이 천하의 쥐새끼 같은 놈들아, 너희는 누구이며 대체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달아나려 하느냐?”

알천에게 쫓긴 우소가 몇몇 말을 탄 군사들과 함께 허겁지겁 산길을 내달았을 때였다.

 

돌연 눈앞에 수백 명의 군사를 거느린 한 장수가 신비로운 찬간자를 타고 앉아 버럭 고함을 질렀다.

 

정신없이 도망치던 우소의 눈에 푸르스름한 명마를 탄 채 앞을 막아선 그 장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처럼 보였다.

미처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자 찬간자를 탄 장수가 별안간 목소리를 높여 호탕하게 웃었다.

“죽을 때가 되면 말도 나오지 않는다더니 너희가 바로 그렇구나.

 

황종 장군의 손자요, 성조황고의 심복 필탄이 왕명을 받고 간적들을 기다린 지 이미 오래다!

 

너희는 순순히 목을 내놓아라!”

필탄이 무게 70근의 백련검을 한 손으로 꼬나들고 여유 있게 으름장을 놓자

 

우소는 그만 가슴이 오그라드는 듯하였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보니 더 도망갈 길도 없었다.

 

우소는 마침내 살기를 포기하고 필사의 각오로 칼자루를 단단히 고쳐 잡았다.

“내 어찌 계집의 군사들에게 쫓겨 값없이 죽겠는가!

 

비록 운수가 사나워 사면초가에 처하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백제 장수의 기백을 유감없이 보여주리라!”

말을 마친 우소는 그대로 몸을 날려 필탄에게 덤벼들었다.

“곧 죽을 놈이 용기 하나는 가상하구나.”


오랫동안 싸움을 해본 적이 없어 몸이 근질근질하던 필탄도 기꺼이 우소의 공격을 맞받았다.

 

두 장수가 화려한 무예를 펼치며 교전한 지 10여 합. 그러나 승부는 좀체 갈리지 않고

 

손에 땀을 쥐게 하 는 절묘한 공방만 계속되었다.

 

죽음을 각오한 우소의 칼놀림은 알천과 싸울 때보다 한결 가볍고 날카로웠다.

 

칼과 칼이 허공에서 맞 닥뜨릴 때마다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하지만 승패는 진작에 갈린 싸움이었다.

 

두 장수가 엎치락뒤치락 싸우는 동안 우소를 따라온 백제 군사 10여 명은

 

모두 신라군에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제 남은 것은 우소 하나였다.

 

그는 동료들 이 죽어 땅바닥에 널브러진 것을 보자 합이 거듭될수록 기운이 빠졌다.

 

바로 그때 우소의 눈에 산 위로 달아날 만한 좁은 소로가 눈에 들어왔다.

 

우소는 적당히 기회를 엿보다가 사력을 다해 그곳으로 달아났다.

“게 섰거라, 이놈! 너는 독 안에 든 쥐다!”

잔뜩 약이 오른 필탄은 군사들과 함께 그를 뒤쫓았다.

 

사방에는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려앉고 있었다.

 

우소는 도중에서 말을 버리고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를 산길로 정신없이 도망쳤다.

 

딴에는 서쪽으로 간다고 여겼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택한 길은 동향이었다.

 

그렇게 밤새 산길을 타고 넘은 우소가 이튿날 아침에 이른 곳은 남산령(南山嶺)이었다.

 

우소는 남산령의 어느 바위 위에 지쳐 쓰러졌다가 뒤쫓아온 필탄의 손에 죽고 말았다.

여근곡에 숨어들었던 백제군 5백 명 가운데 살아남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들은 최후의 순간에 민가를 습격하여 마지막 저항을 할 수 있었지만

 

무고한 백성들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장왕의 당부 때문에 독산성이나

 

민가 쪽으로는 얼씬거리지 않았다.

알천과 필탄은 여근곡에서 죽인 적군 5백 명의 시신을 수레에 싣고 도성으로 돌아왔다.

 

임무를 마친 직후 필탄이 알천을 보고,

“우리 임금이 개구리 우는 소리만 듣고 여근곡에 적군이 은신한 것을

 

어떻게 그처럼 귀신같이 알아맞혔겠소?”

하고 물어 알천이 고개를 저으며,

“자네가 아나, 내가 아나. 그렇게 궁금하거든 나중에 임금께 가서 직접 여쭈어보시게나.”

하였다.

 

필탄이 그 뒤로 혼자 몇 번이나 머리를 갸우뚱거리다가 다시 얼마만큼 와서는 사뭇 풀이 죽은 음성으로,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이상합디다.

 

제 절 부처는 제가 위하는 법이라고, 우소란 놈이 계집 운운하며 우리 임금을 능멸할 때는

 

정말이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며 그동안 임금이 여자라고 업신여겨온 일을 후회하듯 말하였다.

알천과 필탄이 은신한 복병을 모조리 섬멸하고 돌아오자

 

조정 백관들은 한결같이 여주의 신통함에 혀를 내둘렀다.

 

뒷날 신하들이 모두 모였을 때 상신 수품이 만인의 궁금증을 대변하여,

“전하께서는 어떻게 옥문지의 일을 아셨습니까?”

하고 물으니 왕이 웃으며 답하기를,

“청개구리는 그 모습이 노한 눈을 하였으므로 군사의 형상이요,

 

옥문이란 여인의 음부로 그 색깔이 흰데,

 

흰색은 서쪽을 뜻하기 때문에 군사가 대궐의 서쪽에 있음을 알았소.

 

또한 남근이 여근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어 나오기 때문에 쉽게 잡을 수 있음도 안 것이오.”

하므로 이 말을 들은 군신들은 일변 낯을 붉히면서도 여주의 비범한 성지(聖智)에

 

저마다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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