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91. 강안남자 (11)

오늘의 쉼터 2014. 10. 11. 01:19

891. 강안남자 (11)

 

(2361) 강안남자 -21

 



 

 

 윤희영은 모르고 있었지만 왼쪽, 그러니까

술에 취해있는 젊은 한 쌍과 윤희영 사이에 사내 하나가

 

조철봉보다 조금 늦게 들어와 앉아 있었다.

 

윤희영을 사이에 두고 조철봉하고 그 사내가 앉아있는 꼴이다.

 

그 사내는 다름아닌 조철봉의 분신 최갑중이다.

 

최갑중은 소주에 안주 하나를 시켜놓고는 시치미를 딱 떼고 앉아 있었는데

 

두 남녀의 사설을 토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들었다.

 

윤희영을 미행시키고 나서 포장마차에 들어가 있다는 보고를 받자

 

조철봉의 참을성은 한계에 닿은 것 같았다.

 

고현숙에게 집적거리던 것을 멈추더니 곧장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지금 최갑중은 조철봉 못지않게 긴장한 채 윤희영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최갑중만큼 조철봉의 복잡한 머릿속을 잘 들여다보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자주 의표를 찌르는 행동을 하지만 지금까지 여자 등쳐 먹지는 않았다.

 

아주 악질 여자는 빼고 말이다. 지금 조철봉은 윤희영에게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윤희영을 미워하면서도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고 결심한 듯했다.

 

그때 윤희영이 입을 열었다.

“필요없어요.”

그러고는 앞쪽 해산물을 바라보며 웃었으므로 그 옆모습이 최갑중에게도 다 보였다.

 

윤희영이 말을 잇는다.

“부족한 것 없어요. 하지만 호의는 고맙습니다.”

그러자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여전히 긴장으로 굳어진 얼굴이다.

“다 거짓말이야.”

놀란 윤희영이 머리를 들었고 최갑중은 그 두 배쯤 더 놀랐다.

 

그래서 젓가락으로 집던 곱창을 떨어뜨렸다.

 

윤희영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여기서 우연히 만났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우연히 만난 보답을 해주겠다는 것도 말이지.”

그러고는 조철봉이 일그러진 웃음을 띄운다.

 

윤희영을 향하고 웃었으므로 최갑중은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최갑중에게는 가슴이 찡해지는 느낌이 들 만큼 슬픈 웃음이다.

 

조철봉이 낮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한다.

“난 널 찾았어. 그랬더니 네가 서교동에서 ‘온리’란 가게를 한다는 것까지 알았어.

 

영업이 잘 안 된다는 것도, 그래서 널 도와주려고 핑계를 만든 거야.”

“…….”

“네 생각을 하면 항상 빚진 기분이 들었거든.

 

그래서 이제는 뭔가를 한번 주려고 널 찾았던 거야.”

최갑중은 조철봉이 저렇게 진심만을 말하고 있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래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사실 진실 절반에다 거짓말 절반 정도의 비율로 섞어놔야

 

진짜 그럴 듯한 줄거리가 만들어지는 법이다.

 

거짓말 100퍼센트는 아무리 문장이 매끄러워도 꼭 견본용 음식같고

 

진실 100퍼센트는 꽁보리밥 같다.

 

풋내는 나지만 퍽퍽해서 잘 안넘어간다.

 

윤희영은 여전히 말이 없고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네 자존심 알아. 하지만 나한테 한번만 굽혀주지 않을래?

 

내가 너에게 사업자금을 줄게. 난 내가 모은 재산을 이제 다 사회사업에 투자하는 중이야.

 

집에 먹고 살 것만 남겨두고 말이지.”

“…….”

“네가 그냥 받기가 싫다면 나하고 하루만 같이 여행을 가자.”

최갑중은 숨을 멈췄다.

 

바로 이것이다.

 

빅딜인 것이다.

 

이 제의를 하려고 조철봉이 탁 털어놓았다.

 

그때 윤희영이 머리를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그래요. 갈게요.”

윤희영이 또박또박 말을 잇는다.

“남편한테 이야기해 놓구요.” 

 

 

 

(2362) 강안남자 -22

 



 

“하실 수 있을 만큼은 다했습니다.”

포장마차를 나와 택시 정류장에 나란히 섰을 때 최갑중이 말했다.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어서 정류장에는 그들 둘뿐이었고 빈 택시도 오지 않는다.

 

조철봉이 잠자코 서 있었으므로 최갑중은 위로하듯 말을 잇는다.

“그리고 제가 생각해도 그 방법이 최선이었습니다. 형님.”

“뭐가 말이냐?”

불쑥 물은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최갑중을 보았다.

 

의외로 웃음 띤 얼굴이었다.

“아니, 제 말씀은, 그.”

최갑중이 더듬대자 조철봉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윤희영이가 나한테 딱 한 가지를 가르치고 떠났지.

 

그것이 이젠 내 습성이 되었는데 그게 뭔지 아냐?”

그러고는 금방 제가 대답했다.

“여자한테 적극적으로 나서되 항상 도망갈 구멍은 남겨둔다는 것이야.

 

그것을 이번에는 윤희영이한테 써먹은 거다.”

“어떻게 말입니까?”

“윤희영이 핑계를 대리라고 예상했어. 기대하지 않았단 말야.”

그러고는 어깨를 들었다 내리면서 다시 웃는다.

“이건 사업에도 써먹는 수법이지.

 

항상 제2, 제3의 대안을 준비해놓고 최악의 경우에도 대비하는 것 말이다.”

그러자 최갑중도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며칠간 윤희영 때문에 당사자도 아닌 자신이 조바심을 친 것도 우스워졌다.

 

그래서 부담 없이 조철봉에게 묻는다.

“제 남편한테 이야기를 한다는 건 물론 제의를 거부한다는 말이겠죠?”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시선을 주었으므로 최갑중은 긴장했다.

“난 남편 있는 몸이라고 비꼬는 것으로 들었거든요.”

“글쎄, 그건 두고 봐야겠지.”

건성으로 대답한 조철봉이 마침 빈 택시가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차도로 바짝 붙어서며 말을 잇는다.

“인간사는 알 수 없는 거다.

 

특히 남녀 관계는 오뉴월 날씨처럼 변덕스럽거든.”

멈춘 택시에 오른 조철봉의 얼굴이 편안하게 보였으므로 최갑중은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조철봉이 한 말은 제대로 귀에 들리지 않는다.

 

조철봉은 사회 경험이 조금 더 있다고 가끔 귀신이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한다.

그 시간에 윤희영은 가운 차림으로 남편 이기석과 나란히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둘의 얼굴은 앞쪽 TV 화면을 향하고 있다.

 

TV에서는 무슨 토론을 하고 있었지만 이기석이 음소거를 시켜서 출연자들이

 

붕어처럼 입만 뻐끔대는 중이다.

 

이윽고 이기석이 화면을 향한 채로 묻는다.

“그럼 이 아파트도 그 사람이 압류시킬 수도 있겠구먼. 그렇지?”

윤희영은 잠자코 붕어들만 보았고 이기석이 다시 묻는다.

“이렇게 될 때까지 나한테 한마디 상의도 하지 않고 왜 그랬어?

 

내가 알고는 있어야 할 것 아냐?”

“…….”

“아무리 그렇다고 4억을 2년도 안 돼서 날리고 빚까지 지다니, 더구나 나한테는….”

“그만.”

TV를 쏘아본 채 윤희영이 이기석의 말을 잘랐다.

 

심호흡을 하고 난 윤희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헤어져.”

놀란 이기석이 눈을 치켜떴을 때 윤희영은 말을 잇는다.

“내가 당신이 살아갈 자금은 내놓을게. 그래. 4억 내줄 테니 이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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