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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8. 강안남자 (8)

오늘의 쉼터 2014. 10. 11. 01:17

888. 강안남자 (8)

 

(2355) 강안남자 -15

 



 

녹음기의 버튼을 누른 최갑중이 조철봉을 보았다.

 

조철봉의 사무실 안이다.

 

오전 11시반, 방 안에는 잠깐 정적이 흘렀다.

 

둘은 방금 박상택과 윤희영의 대화 내용을 들은 것이다.

 

깨끗하게 녹음되어서 마치 두 남녀가 옆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조철봉이 입을 열 기색을 보이지 않자 최갑중이 말한다.

“미스터 김은 커피숍까지만 따라가 녹음을 했습니다.

 

필요하시면 윤희영씨 옆에 24시간 밀착 감시를 붙일까요?”

미스터 김은 최갑중이 애용하는 정보회사 사장 김동수를 말한다.

 

그때 조철봉이 머리를 들고 최갑중을 보았다.

“오늘 윤희영한테 묘수가 있는 건 아니겠지?”

“갑자기 묘수가 생길 리가 있겠습니까? 복권 추첨일도 아닌데요.”

외면한 채 말한 최갑중이 나중에는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오늘은 주는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융통성을 발휘하면 되겠지.”

조철봉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을 때 최갑중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물끄러미 조철봉의 옆얼굴을 본다.

 

다시 잠깐 방 안이 조용해졌다가 최갑중이 묻는다.

“형님,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그러더니 덧붙였다.

“다른 여자들처럼 해결해주시겠지요?”

“내가?”

억양 없는 목소리로 물었던 조철봉이 문득 눈을 크게 떴다.

“그, 남편되는 놈.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집에서 빨래하고 있을 겁니다.”

즉시 대답했던 최갑중이 쓴웃음을 지었다.

“마누라 복이 있는 놈이죠.”

“놔둘란다.”

한숨과 함께 조철봉이 말했을 때 놀란 최갑중은 숨을 들이켰다.

 

예상 밖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형님. 다른 사람은 놔두더라도 윤희영씨는 뭘 좀 해주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지금 절박한 입장인데요.”

“좀 겪어야 돼.”

“뭘 말씀입니까?”

“세상을.”

최갑중의 위쪽 벽을 응시한 채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그래야 피땀 흘려 모은 돈의 가치를 알게 될 테니까.”

“그, 그러면.”

“몇시간 안 남은 것 같구만.”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는 시늉을 하고 나서 조철봉이 불쑥 묻는다.

“지금 미스터 김이 따라붙고 있지?”

“물론입니다.”

“그냥 뭐하는가 보기만 하라고 해.”

“그건 이미 지시해 놓았습니다.”

최갑중이 어깨를 들었다 놓고 나서 입맛을 다셨다.

“그럼 오늘 놔두실 겁니까?”

“놔둔다고 했잖아?”

“손 떼실 겁니까?”

“그건 봐서.”

소파에 등을 붙인 조철봉의 표정이 차분해졌다.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나도 인간이다. 조건 없이 좋은 놈,

 

나쁜 놈 가리지 않고 다 준다고 했지만 이런 경우는 그렇게 못하겠다.”

“…….”

“날 버리고 간 여자가 제 남편하고 오순도순 살다가 일어난 일이야.

 

돈 못 버는 제 남편을 언제까지 봐줄지 지켜보고 싶기도 해.”

그러더니 웃었는데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늘 사채업자한테 당한다고 생각하니까 나까지 흥분이 된단 말이다.

 

사채업자가 나 대신 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야.” 

 

 

 

 

(2356) 강안남자 -16

 



 

“다 가져가.”

하고 윤희영이 말했을 때 박상택은 눈을 크게 떴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둘은 어제 만났던 그 커피숍에서 다시 만나고 있다.

 

박상택이 똑바로 쏟아지는 윤희영의 시선을 받으며 묻는다.

“그럼 주겠단 말야?”

“미친놈.”

시선도 떼지 않은 채 윤희영이 분명한 발음으로 욕을 했다.

 

박상택이 놀랄 겨를도 없이 멍한 상태일 때 윤희영의 말이 이어졌다.

“가게 다 가져가란 말야. 당신 말대로는 못하겠어.”

“어허, 그러셔?”

겨우 정신을 수습한 박상택이 심호흡을 했다.

 

그래도 진정이 안 되는지 어금니를 물었다가 풀고 나서 윤희영을 노려보았다.

“좋아. 가게는 내가 인수하기로 하지. 하지만 가게 나갈 때까지는 이자가 월 30%야. 알고 있지?”

“고발할 거야.”

“계약서에 다 사인 받았는데 잘될 것 같으냐? 내가 이런 일 한두 번 하나.”

그러더니 박상택이 팔목시계를 보면서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그럼 오늘부터 내가 가게 정리를 해야겠군.”

버튼을 누른 박상택이 핸드폰을 귀에 붙이더니 곧 잇새로 말한다.

“오늘부터 ‘온리’ 양도받기로 했으니까 지금 가게로 가서 정리해.”

그러고는 다시 말을 잇는다.

“종업원들 다 내보내고 가게 집기는 의자 한 개 가져가지 못하게 해.

 

문 밖에는 휴업 간판 붙이고. 알았지?”

일사불란하게 지시한 박상택이 핸드폰을 귀에서 떼더니 빙긋 웃는다.

“나로서는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는 게임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박상택이 윤희영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잇는다.

“불쌍한 년, 하는 짓이 무능한 제 남편하고 똑같구먼.

 

둘이 나란히 서울역 앞으로 나가 노숙자나 되거라.”

몸을 돌린 박상택이 커피숍을 나갔다.

 

윤희영은 그대로 그 자리에 앉아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옆자리에 손님이 앉았다가 나갔고 또 다른 손님이 앉는다.

 

그동안 가방 안에 넣은 핸드폰이 진동음을 여러 번 내었지만 윤희영은 꼼짝하지 않았다.

 

어느덧 퇴근시간이 되어서 커피숍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그때서야 윤희영은 꿈에서 깬 듯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피숍을 나왔을 때 다시 핸드폰이 진동을 했으므로 윤희영은 꺼내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가게 종업원이다.

 

윤희영이 응답하자 종업원이 반색을 하고 말한다.

“사장님, 박 사장 직원들이 가게 문을 닫았는데 알고 계세요?”

“응, 알아. 선옥아, 미안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래 놓고 종업원이 짧게 흐느끼며 묻는다.

“저희들은 어떻게 하죠?”

“내가 밀린 월급은 이달 안에 꼭 줄게. 정말 미안해.”

“사장님, 억울해서 어떡해요? 5천만원 채무로 가게를 뺏기다뇨.”

“할 수 없어.”

쓴웃음을 짓던 윤희영이 걸음을 멈춘다.

 

다리에 힘이 풀려 걷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길가의 편의점 귀퉁이에 선 윤희영이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는

 

초점 없는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 바쁘게 오가고 있다.

 

이 사람들하고 어울리려면 바쁜 척이라도 해야만 될 것 같았다.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으므로 윤희영은 가방으로 얼굴을 가렸다.

 

눈물샘이 터진 것처럼 눈물은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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