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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 강안남자 (10)

오늘의 쉼터 2014. 10. 11. 01:19

890. 강안남자 (10)

 

(2359) 강안남자 -19

 





 

밤 11시반. 역삼동 골목길의 포장마차에 앉아있던 윤희영에게

 

옆에 앉아 있던 사내가 수작을 걸었다.

“같이 한잔 하실까요?”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선량한 인상의 사내였다.

 

같이 술을 마시던 또래의 사내도 윤희영에게 싱긋 웃는다.

 

둘의 시선을 받은 윤희영이 머리를 저었다.

“아뇨, 일행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요.”

“실례했습니다.”

예의바르게 인사를 한 사내가 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이런 남자도 술이 더 들어가면 개가 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다.

 

제 욕심만 채우고 나면 금방 등을 돌리는 이기적인 놈들,

 

그 전형이 조철봉이 아니었던가?

 

문득 조철봉을 떠올린 윤희영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요즘 언론을 통해 조철봉의 모습이나 동향을 보면서 긴 세월이 지났다는 것을

 

실감할 뿐 변한 모습에는 전혀 감동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우즈베키스탄에 대학을 세운다면서 100억원을 투자했다는 보도를 보고서도 그렇다.

 

북한을 수시로 다니면서 중개자 역할을 하는 모양인데 그에 대한 기사나 보도를 보면

 

외면해 버렸다.

 

관심이 없는 것이다.

 

3년동안 수백번 만났지만 막상 떠나고 나니깐 지난날이 악몽 같았다.

 

어떻게 그런 자하고 3년이나 엮어져 있었단 말인가?

 

마치 악몽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조철봉하고 심하게 싸운 것도 아니다.

 

떠난 이유는 간단하다.

 

조철봉은 잘 안 풀리는 직장에서의 압박감을 섹스로 풀었다.

 

만나면 곧장 섹스만 하려고 덤볐는데 제 욕심만 후다닥 채우고는 떨어졌다.

 

그래서 열번에 아홉번은 불쾌한 추억으로 남았다.

 

둘째는 가장 중요한 점인데 진실성이다.

 

조철봉한테서 진실성을 보았다면 비록 유부남이었더라도 더 기다려 주었을 것이었다.

 

소주잔을 든 윤희영이 한모금에 삼켰을 때 가방에 든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든 윤희영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남편 이기석이었던 것이다.

“응. 왜?”

핸드폰을 귀에 붙인 윤희영이 묻자 이기석은 잠깐 머뭇거리는 것 같더니 말했다.

“저기, 조금 전에 박상택씨 직원이라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

“가게 압류한 것으로는 채무가 모자라니까 아파트 서류도 내라고 하는데.”

“…….”

“박상택씨가 누구야?”

어금니를 문 윤희영은 숨을 죽였고 이기석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내가 가게에다 전화를 해봤더니

 

박상택씨 직원이라고 하는 사람이 받았어.

 

오늘부터 가게 접수해서 문 닫았다고 하던데.”

“…….”

“어떻게 된 거지? 당신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밖에.”

“밖에라니.”

이기석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당황한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으므로 윤희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이기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아파트도 넘어가는 건가?”

“…….”

“아니, 도대체 얼마나 적자를 보았기에.

 

당신 나한테 가게 잘된다고만 했지 않아? 그런데….”

“그만.”

마침내 윤희영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심호흡을 한 윤희영이 말을 잇는다.

“자기는 가만 있어. 제발 가만히 있는 것이 날 도와주는 거야.”

그때 윤희영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2360) 강안남자 -20

 



 

핸드폰을 내려놓은 윤희영이 가방을 열고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는다.

 

차분한 표정이었고 동작도 침착해서 화장을 고치는 것 같다.

 

옆쪽 사내들은 언제인지 사라져서 포장마차 손님은 끝쪽에 앉은 젊은 한 쌍하고 셋뿐이다.

 

그때 뒤쪽에서 기척이 나더니 손님 하나가 들어와 옆에 앉는다.

 

윤희영은 손수건을 가방에 넣고는 다시 술잔을 쥐었다.

 

옆쪽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시선을 느낀다고 다 돌아보는 여자는 없다.

 

윤희영이 소주를 한 모금 삼키고 잔을 내려놓을 때였다.

“이게 누구야?”

낮은 목소리가 울렸으므로 윤희영이 머리를 돌렸다.

 

눈앞 40센티미터쯤 떨어진 곳에 사내의 얼굴 하나가 떠 있었다.

 

그 순간 윤희영은 숨을 멈췄다.

 

조철봉이다.

 

세상에 조철봉을 만나다니.

 

조철봉 또한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는 것이 윤희영과 똑같은 심사인 것 같다.

 

그때 조철봉이 입술만 달싹이며 묻는다.

“윤희영씨 아뇨?”

“네.”

짧게 대답한 윤희영이 그때서야 길게 숨을 뱉는다.

 

연속극에서는 그 넓은 서울 바닥에서 우연히 잘도 만나지만

 

이렇게 만날 확률은 복권 당첨되는 것이나 같다.

 

조철봉도 어깨를 늘어뜨리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말한다.

“기가 막히군.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그동안 잘 지내셨죠?”

그렇게 인사를 한 윤희영은 제 목소리가 차분해진 것을 듣고는 마음을 놓는다.

 

반갑지도 않지만 귀찮은 것도 없다.

 

조철봉처럼 기가 막히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조철봉이 주인한테 안주를 건성으로 시키더니 윤희영에게 물었다.

“결혼은 했지?”

“그럼요.”

윤희영이 제 잔에 술을 따라 조철봉 앞에 내려놓으면서 웃었다.

“14년이 지났는데요. 뭘.”

“그렇게 되었나?”

눈을 가늘게 떴던 조철봉이 소주를 한 모금 삼키고는 문득 생각난 것처럼 다시 묻는다.

“아이는?”

“없어요.”

하고 나서 이번에는 윤희영이 선수를 친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시던데. 잘되시는 것 같아서 좋아요.”

“내 바탕은 그대로야. 변한 거 없어.”

그래 놓고 조철봉이 묻는다.

“남편은 뭘 하시지?”

“사업.”

금방 대답한 윤희영이 조철봉의 시선을 받고는 말을 잇는다.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죠.”

“그렇군.”

정색한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주인이 갖다 놓은 안주 접시를 윤희영 앞으로 밀어 놓았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나한테도 일어나다니.

 

갑자기 술 한잔 마시고 싶은 생각에 길 가다가

 

차 보내 놓고 불쑥 들어선 포장마차에서 말이야.”

조철봉이 소주잔을 내려다보면서 혼잣소리처럼 말을 잇는다.

“이 기회를 이대로 흘려 보내고 싶지 않구먼.”

“어떻게 하실 건데요?”

쓴웃음을 지은 윤희영이 묻자 조철봉이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내가 가장 어려웠을 때 네가 옆에 있다가 떠났지.

 

그래서 너한테 보답을 하고 싶은데. 물론 네가 받겠다면 말이지.”

윤희영이 눈만 치켜떴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너야 돈 걱정 없는 사장 사모님이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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