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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7. 강안남자 (7)

오늘의 쉼터 2014. 10. 11. 01:16

887. 강안남자 (7)

 

(2353) 강안남자 -13

 



 

“환경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말이 실감나네.”

식탁에 앉으면서 이기석이 웃음 띤 얼굴로 말한다.

 

오후 4시반, 동교동의 아파트 안이다.

“그 증거를 대보셔.”

된장찌개 냄비를 들고 오면서 윤희영이 말했다.

 

외출 준비를 마친 윤희영의 표정도 밝다.

 

앞쪽에 앉은 윤희영에게 이기석이 대답한다.

“우리 집 식사 시간도 그렇고.”

“또 있어?”

“성생활.”

“또?”

“가라오케에 대한 내 사고까지 변한 것을 보면 그렇다니까?”

쓴웃음을 지은 윤희영이 계란부침 접시를 이기석의 앞쪽으로 밀어 놓는다.

 

하긴 그렇다.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가 둘의 점심 겸 저녁식사 시간이다.

 

그래서 아침은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먹는다.

 

윤희영의 기상, 출근시간에 맞춰 식사 시간이 조정되었고 그 시간이 되면 배가 고프다.

 

새벽 3시나 4시쯤 귀가하는 윤희영에게 섹스하기 좋은 시간은

 

잠에서 깬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다.

 

이제 이기석은 그 시간에 길들여졌다.

 

가라오케에 대한 선입견도 마찬가지.

 

전에는 가라오케가 변형된 룸살롱으로만 알았던 이기석이다.

 

그러나 지금은 건전한 여가 선용 클럽으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윤희영이 경영하는 가라오케 ‘온리’에 한해서다.

 

국을 삼킨 이기석이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참, 국일전자에서 다음주에 한번 와 보라고 했어. 거기 김 전무님 알지?”

윤희영이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끄덕였다.

 

입안의 음식을 다 삼켰지만 윤희영은 여전히 씹는 시늉을 한다.

 

그러자 이기석이 말을 이었다.

“관리부에 자리가 있다고 했어. 영업부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지. 안 그래?”

“그럼.”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윤희영이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거기서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옮겨가면 되지. 뭐.”

이기석은 낙천적이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낙천적이려고 노력한다.

 

요즘 들어서 더욱 그렇다.

 

가라오케가 계속 적자를 내는 바람에 윤희영은 이곳저곳에서 돈을 얻어다 썼고

 

나중에는 사채업자한테서 5천만원이나 돈을 빌린 것이다.

 

윤희영은 그 사실을 전혀 말해 주지 않았지만 이기석이 눈치를 채지 못했겠는가?

 

가게가 적자를 내면서부터 이기석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는 말이 부쩍 많아진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러나 본래 지어낸 이야기라 이기석은 모르고 있겠지만

 

지금 국일전자 스카우트 건은 두 번째다.

 

지난달에는 김 전무가 총무부에 자리가 있다고 하더니 유야무야됐었다.

 

설거지는 집에 남은 이기석의 몫이었으므로 식사를 마친 윤희영은 나갈 채비를 한다.

“참, 내 정신 좀 봐.”

현관으로 향하던 윤희영이 가방을 열더니

 

10만원권 수표 두 장을 꺼내 이기석에게 내밀었다.

“자기 오늘 동창회 가 봐.”

“글쎄, 안 간다니까 그러네.”

이맛살을 찌푸린 이기석이 주춤거리자 윤희영은 수표를 탁자 위에 놓으며 말한다.

“와이프 가게가 잘된다고 해. 한 달 수입은 순이익이 3천쯤 된다고 하고.”

현관으로 다가간 윤희영이 웃음 띤 얼굴로 이기석을 보았다.

“그렇다고 가게로 동창들 데리고 오지 마. 외상 술값 받으러 다니기 싫으니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윤희영이 길게 숨을 뱉는다. 

 

 

 

 

(2354) 강안남자 -14

 



 

커피숍 안으로 들어선 윤희영은 안쪽에 앉아 있는 박상택을 보았다.

 

언제나 단정한 차림에 반들거리는 피부, 강한 눈빛을 보면 몸이 위축되는 느낌이 든다.

“점점 더 예뻐지시는데.”

앞쪽에 앉은 윤희영에게 박상택이 말했다.

 

육중한 체격이었지만 목소리는 가늘다.

 

윤희영은 손님하고 부대끼는 장사를 해오면서 나름대로 남자를 판단하는 기준 하나를 만들었다.

 

그것은 용모하고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 남자를 불신하는 버릇이다.

 

그것이 박상택을 겪고 나서 확실하게 굳어졌다.

 

윤희영이 박상택의 굵은 목을 바라보며 말한다.

“이달 이자는 다음달로 미뤄 주셨으면 고맙겠는데요.”

“또 다음달이란 말이지?”

말이 비명 같았으므로 윤희영은 어금니를 물었다.

 

박상택은 처음에 ‘온리’에 손님으로 찾아왔다.

 

그러다 반년 전에 5000만원을 빌린 것이다.

 

석 달을 쓰고 원금에 30% 이자를 주기로 했지만 한 번도 이자를 내지 못하자

 

계약서를 두 번이나 재작성하고 났더니 원금에다 이자가 1억이 넘게 되었다.

 

박상택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안 되겠는데.”

“사장님, 사정 좀 봐주세요.”

윤희영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다음달에는 어떻게든 이자 드릴게요.”

“다음달에 원금에다 이자 합해서 1억2000만원이 되는 거 알고 계시겠지?”

그러더니 박상택이 지그시 윤희영을 보았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제 말로는 마흔다섯이라고 했지만 그보다 열 살은 더 먹은 것 같다.

“그럼 계약서를 다시 쓰고 나서 말야.”

한마디씩 높은 목소리로 말한 박상택이 머리를 탁자 위로 내밀었다.

“나하고 잠깐 위층으로 갈까?”

커피숍 위쪽 7층은 모텔인 것이다.

 

윤희영의 시선을 잡은 박상택이 눈웃음을 치면서 말한다.

“딱 한 시간이면 돼. 내가 열받으면 당장 가게 폐업시키고

 

팔아 넘길 수도 있지만 참아주는 대가야.

 

사람이 인사가 있어야 될 것 아니겠어?”

“오늘은 안 돼요.”

얼굴을 굳힌 윤희영이 똑바로 박상택을 보면서 말한다.

 

어금니를 물었다 푼 윤희영이 말을 이었다.

“다음에요.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서.”

“그럼 내일로 하지.”

박상택이 이제는 정색하고 말한다.

“내일 나한테 주든가 아니면 끝장을 내든가 둘 중 한 가지를 골라.”

그러고는 박상택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봐, 분수를 알아야 돼.

 

당신보다 더 젊고 더 잘 빠진 애들도 이런 상황이면 다 따라와. 내가 봐준지 알라구.”

박상택이 떠나갔을 때 그때야 종업원이 다가와 묻는다.

“저기요. 주문하실래요?”

”아니…”

앞쪽에 박상택이 마시다 만 커피잔을 보면서 윤희영이 낮게 말했다.

”난 됐어요.”

긴장이 풀린 온몸이 늘어져 있었으므로 윤희영은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내일이다.

 

그동안 박상택은 여러 번 같이 갈 것을 요구했다.

 

이자를 깎아 주겠다는 언질도 주었지만 윤희영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겨우 시선을 든 윤희영은 벽시계가 5시반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가게에 나가야 할 시간이 지났다.

 

요즘은 손님을 옆쪽 재즈바에 다 빼앗겨서 하루 매상이 20만원 정도가 평균이다.

 

종업원 넷의 임금은 물론 임차료도 밀려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윽고 윤희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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