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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6. 강안남자 (6)

오늘의 쉼터 2014. 10. 11. 01:15

886. 강안남자 (6)

 

(2351) 강안남자 -11

 



 

“나중에 알려주마.”

외면한 채 조철봉이 말하자 최갑중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어디 여자가 한둘인가?

 

가장 또는 제일 등의 최상급 표현을 쓴 여자도 여럿이었던 것이다.

 

도중에 최갑중을 내려주고 자동차가 자유로로 들어섰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집으면서 시계를 봤더니 오전 3시다.

 

발신자 번호가 생소했으므로 이맛살을 찌푸리던 조철봉이 핸드폰을 귀에 붙인다.

“여보세요?”

“아, 조 사장님. 저, 이강준입니다.”

국정원 정보실장 이강준이다.

 

이강준이 미안한듯 웃음이 섞인 목소리를 낮춘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통화할 수 있겠습니까?”

“아, 그럼요.”

“좀 급한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무슨 일 났습니까?”

조철봉의 얼굴이 굳어졌다.

 

새벽 3시인 것이다.

 

그때 이강준이 말했다.

“조금전에 북한측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조 사장님을 초청하고 싶다는데요.”

“무슨 일로 말입니까?”

“그것이….”

잠깐 뜸을 들이던 이강준이 말을 잇는다.

“위원장 특보로 일해달라는 것 같습니다.”

“위원장 특보?”

되묻고 나서 조철봉이 쓴웃음부터 짓는다.

“지금 난 대통령님은 만나지도 않지만 한국 대통령 특보 아닙니까?”

“저쪽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이강준의 목소리가 굳어졌는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 사장님 역할이 큽니다.

 

저쪽 신임을 받고 있는 유일한 분이시니까요.”

“아니, 천만에.”

이제는 조철봉도 정색하고 말했다.

“난 내 분수를 압니다. 결국 나는 양쪽 모두 실망시키게 될 겁니다.”

“아니, 조 사장님.”

“결국 나는 한국 사람이란 말씀입니다.”

그러자 이강준이 입을 다물었다.

 

뜻을 파악하려고 이맛살을 찌푸린 모습이 선했으므로 조철봉이 다시 쓴웃음을 짓고 말한다.

“그쪽에서는 못 삽니다.

 

그리고 그걸 감수하고 지낼 만큼 내 의지가 강하지도 못하고요.

 

양쪽에 좋은 말을 해서 잠깐 사기를 칠 수는 있겠지만 바탕이 깊지 못해서 곧 다 드러납니다.”

그러고는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는다.

“사양한다고 전해주시지요. 난 한국에서 평범하게 살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지요.”

그러더니 이강준이 서두르듯 말을 잇는다.

“저쪽에서도 지금까지 해오신 것처럼만 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래도….”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전화가 끊겼으므로 조철봉은 의자에 등을 붙였다.

 

차는 이제 일산IC로 진입하는 중이다.

 

하긴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어도 국회의원도 해보았고 위원회 위원장, 대통령 특보까지 했다.

 

의자에 맞는 역할을 해온 습성 덕분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잠재능력은 끝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10여년전, 자동차 영업사원이었을 때 불가능은 없다고 다짐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것은 지금도 같다. 달라진 것은 겸손해지려고 노력하는 것,

 

분수를 지키겠다는 것도 그 일환이다.

 

이윽고 조철봉은 머리를 젓는다.

“아냐, 초심으로 돌아가겠어.”

불쑥 말했더니 가슴이 개운해졌다.

 

조철봉이 근래에 들어서 문자를 많이 쓰지만 속을 보면 별것 아니다.

 

조철봉의 초심은 대단한 내용이 없다.

 

옛적, 분방하게 놀았던 그 시절,

 

그때의 자유롭고 활기찬 그 분위기를 그리고 있다는 말이다. 

 

 

 

 

(2352) 강안남자 -12

 



 

다음날 오전 11시가 되었을 때 최갑중이 조철봉의 사무실로 들어선다.

“사장님. 가져왔습니다.”

손에 쥐고 있는 파일을 눈으로 가리켜 보이면서 최갑중은 소파에 앉았다.

 

조철봉이 주민증 앞번호만 알려준 여자에 대한 조사를 해온 것이다.

“그 앞번호가 같은 이름의 여자가 일곱명이나 있었지만 아무래도 이 여자인 것 같은데요.”

하고 최갑중이 펼쳐진 파일에서 사진을 집어 조철봉에게 내밀었다.

 

사진을 받아쥔 조철봉이 심호흡을 했다.

 

맞다. 1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모습 그대로인 윤희영이다.

 

볼의 살이 조금 불어난 것이 더 육감적으로 보인다.

 

식당에 앉아 있는 모습을 찍었는데 옷차림도 말끔했고 웃음 띤 얼굴이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자 최갑중은 파일을 읽는다.

 

이런 일은 한두번이 아니어서 진행이 매끄럽다.

“현재 신촌 서교동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라오케식 카페인데 장사를 시작한 지 1년반이 되었지만 몇달째 적자를 내고 있네요.”

그러더니 힐끗 조철봉을 보고 나서 말을 잇는다.

“남편하고는 13년 전에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자식이 없습니다.”

잠자코 듣던 조철봉이 다시 손에 쥔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헛기침을 한 최갑중이 파일을 다시 읽는다.

“남편 이기석하고의 사이는 좋은 편입니다.

 

이기석은 3년 전까지 대기업 성진전자 부장이었다가 사직했는데 이유는 실적부진이었습니다.”

“…….”

“이기석의 퇴직금에다 집을 담보로 해서 모은 6억을 가지고 처음엔 식당을 했다가

 

1년 만에 문을 닫았고 지금 가라오케를 시작할 때 4억이 들었습니다.”

“…….”

“현재 가라오케 부채가 3억5000 정도, 전세금 등을 빼면 빚만 1억 정도 남습니다.

 

아파트는 담보로 잡혀놓았거든요.”

그러고는 머리를 든 최갑중이 조철봉을 보았다.

 

진지한 표정이다.

“형님. 누굽니까?”

최갑중이 묻자 조철봉은 피식 웃는다.

“그래도 이 여자는 남편하고 잘 살고 있구나. 안 그러냐?”

“겉은 그렇지만 내막은 아직 모릅니다.”

그러고는 시선을 주었으므로 조철봉이 헛기침을 했다.

“나하고 3년 정도 같이 지낸 여자야.”

“3년이나요?”

눈을 크게 떴던 최갑중의 이맛살이 찌푸려졌다.

 

그러더니 다시 묻는다.

“물론 좋아하셨겠지요?”

“미친놈. 그건 당연하지.”

“왜 헤어지셨습니까?”

“여자가 떠난 거지.”

소파에 등을 붙인 조철봉이 최갑중의 시선을 받더니 빙긋 웃는다.

“내가 그때 영업사원 초창기여서 데이트 자금도 없었거든.”

“결혼도 하신 상태에서 말씀이죠?”

“그렇지.”

“양쪽 관리하시기가 엄청 힘드셨겠군요.”

했던 최갑중이 퍼뜩 시선을 들었다가 내렸다.

 

그러나 조철봉은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힘들었다. 하지만 이 여자가 그때 나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었다.”

눈으로 탁자 위의 사진을 가리킨 조철봉의 목소리에 열기가 어렸다.

“이 여자만 떠올리면 기운이 났어.”

“그런 여자가 도망쳤지 않습니까?”

최갑중이 대들 듯이 말했을 때 조철봉은 다시 웃는다.

 

“그 경우에 더 좌절하는 놈이 있고 이를 악무는 놈도 있지. 내가 바로 이를 악무는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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