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84. 강안남자 (4)

오늘의 쉼터 2014. 10. 11. 01:14

884. 강안남자 (4)

 

(2347) 강안남자 -7

 

 

“맞습니다.”

사흘 후 퇴근 시간 무렵이 되었을 때 사무실로 들어선 최갑중이 대뜸 말한다.

 

소파 앞자리에 앉은 최갑중이 서류를 펼치고 읽는다.

“딸 이름이 유성미, 15세, 여중 3학년인데 지난 3월에 휴학했습니다.

 

 

심장병으로 2개월 입원했다가 지금은 집에서 통원치료 중인데 병원에 알아보았더니

 

심장 이식을 해야 하는 데다 특수한 병이어서 의료보험 적용분을 빼고 경비가

 

1억 가깝게 든다고 합니다.”

조철봉은 눈만 껌벅였고 최갑중이 말을 잇는다.

“애는 지금 외할머니하고 천안 근처의 외가에 내려가 있습니다.”

“여행사 다닌 건 맞아?”

“예, 맞습니다. 6개월쯤 전에 회사가 폐업해서 실직자가 된 것도 맞습니다.”

최갑중은 지금 김경옥의 뒷조사를 해 온 것이다.

 

이런 조사에는 도가 트였으므로 최갑중은 요점만 콕콕 찍어서 보고하고 있다.

“주위 평가도 좋습니다. 남자관계도 없고요. 착실한 주부로 소문났습니다.”

“…….”

“하지만 생활은 곤란합니다.

 

지금 사는 연립은 작년까지 전세였다가 올 초에 월세로 바꿨습니다.

 

집주인이 사정을 봐준 것이죠.

 

전세금을 빼내어서 애 병원비로 썼습니다.”

그러더니 최갑중이 머리를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이번에도 애가 걸려 있는 사건이니까 틀림없이 형님이 해결해 주시겠군요?”

“뭐? 사건?”

했다가 조철봉이 외면하고 말한다.

“인마, 이 여자가 와이프 친구야. 아주 둘도 없는 친구래.”

“그건 아침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이 여자를 3년 전에 왕궁에서 만났댄다.”

“이런 우연이.”

크게 떠졌던 최갑중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렇다면 형님, 그 여자가….”

“시끄러워.”

최갑중의 입을 막은 조철봉이 머리를 저으며 말을 잇는다.

“그런 곳에서 만났다고 다 그렇고 그런 여자가 아냐. 넌 선입견을 바꿔야 돼.”

“하긴 그렇습니다만.”

“이 여자는 취직 부탁한 것도 취소해 달라고 하더라.”

“왜요?”

“글쎄.”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지그시 최갑중을 보았다.

“사기꾼 눈에는 사기꾼만 보이는 거야.

 

때로는 보이는 대로 믿어도 되는 인간도 있더란 말이다.”

그러나 최갑중이 눈만 껌벅이는 것을 보면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소파에 등을 붙인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나눠 주려고 마음을 먹었더니 다 받아 주고 싶은 거야.

 

사기꾼이면 어떻고 전과자면 어떠냐?

 

내가 나눠 준 몫으로 착한 사람이 되고 좋은 일 하게 된다면 그것이 잘 쓴 거 아니냐?”

“그, 그렇습니까?”

“그렇다고 내가 다 나눠 준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내가 거지 된다면 아무도 날 찾지 않는다는 건 머릿속에 팍 심어 놓고 있으니까.”

“그럼요.”

그때 조철봉이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최갑중에게 내밀었다.

“이 여자를 찾아봐라.”

쪽지를 받은 최갑중에게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내가 수없이 여자를 겪었지만 가장 찾고 싶은 여자다.

 

주민등록번호 앞쪽만 알고 있으니까 네가 찾아봐.” 

 

 

 

 

(2348) 강안남자 -8

 

 

다음 날 점심을 마친 조철봉이 김경옥에게 전화를 했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

 

퇴근 무렵까지 두 번 더 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조철봉은 퇴근하고 나서 김경옥의 집으로 찾아갔다.

 

회사에서 택시를 타고 간 것이다.

 

오후 7시반경이었는데 연립주택의 벨을 누르는

 

조철봉에게 복도 끝쪽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다가오며 묻는다.

“누굴 찾으시려고?”

“이 집 주인 여자를 찾는데요.”

그러자 앞에 선 사내가 턱으로 문을 가리켰다.

“빈 집요. 어제 이사갔어.”

“어제요?”

“어제 오후에.”

사내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어디로 갔느냐고 물어볼 필요는 없다.

 

최갑중한테 시키면 금방 알아낸다.

 

그때 사내가 몸을 돌리면서 말한다.

“애가 아파서 안되었어.”

혼잣소리처럼 말했지만 조철봉은 가슴이 휑해진 느낌이 든다.

 

연립주택 밖으로 나온 조철봉이 동네 가게 앞에 서서 최갑중에게 전화를 한다.

“예, 사장님.”

공적인 상황에서는 사장님이다.

 

최갑중이 응답했을 때 조철봉은 먼저 긴 숨부터 뱉는다.

“야. 김경옥 집에 왔더니 어제 이사를 갔다는구나.”

“예에?”

놀란 듯 최갑중의 말이 빨라졌다.

“어디로 말입니까?”

“내가 알면 너한테 이러고 있겠어?”

“그럼 당장 찾아볼까요?”

“천안 외가로 내려갔겠지.”

최갑중이 잠자코 있었으므로 조철봉이 묻는다.

“너, 김경옥의 친정이 어딘지 바로 알아낼 수 있어?”

“형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연립주택 앞이다.”

그러자 수화기에서 최갑중의 숨 뱉는 소리가 들리더니 묻는다.

“저녁이나 드셨습니까?”

“아직.”

“그럼 어디 가서 저녁이나 드시지요. 그동안 알아낼 테니까요.”

최갑중이 달래듯이 말했을 때 조철봉은 문득 자신이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뭘 놓친 것 같기도 했다.

 

최갑중이 조철봉 앞에 나타났을 때는 그로부터 한 시간 반쯤 후인 9시경이었다.

 

근처 식당에서 돼지갈비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있던 조철봉이 쓴웃음을 띤 얼굴로

 

최갑중을 보았다.

“어떻게 되었어?”

“찾았습니다.”

앞쪽에 앉은 최갑중이 말을 잇는다.

“천안 근처에 있더만요. 지금 할머니하고 애하고 셋이 있습니다.”

“지금 내려가면 만날 수 있을까?”

시계를 내려다보는 시늉을 하면서 조철봉이 묻자 최갑중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가시죠. 그러실 줄 알고 그쪽에 사람을 먼저 보냈습니다.”

식당을 나온 조철봉은 최갑중이 대기시켜 놓은 차에 오른다.

 

옆자리에 탄 최갑중이 말했다.

“아마 두 시간쯤 걸릴 겁니다.”

“전화를 받지 않아서 말야.”

“그럼 찾아가 불러내지요. 뭐.”

했다가 최갑중이 힐끗 운전사의 뒷머리를 스쳐 보고 나서 낮게 묻는다.

“그런데 12시가 다 된 시간에 불러내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조철봉은 대답 대신 심호흡만 했다.

 

할 말은 없다.

 

아마 김경옥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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