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78. 남자의 꿈 (10)

오늘의 쉼터 2014. 10. 11. 01:09

878. 남자의 꿈 (10)

 

 

 

(2334) 남자의 꿈 -19

 

 

이런 분위기의 좌석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최갑중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호기심이다. 20년 전의 여자가 찾아오다니,

 

그것도 단 한 번 미팅으로 끝난 관계, 뻔하지만 여자가 어떤 수작을 부릴지가 궁금한 것이다.

 

지금까지 최갑중도 수많은 유형의 사기꾼을 겪었다.

 

그러나 20년 전에 스쳐간 여자가 찾아온 적은 없었다.

 

뻔뻔하게, 심호흡을 한 최갑중이 옆에 앉은 조철봉을 곁눈질로 보았다.

조철봉은 로비를 둘러보고 있었는데 태연했다.

 

이건 마치 내가 20년 만에 여자를 만나는 것 같군.

 

조금 어이가 없어진 최갑중이 마음속으로 말했을 때 출입구로 여자 하나가 들어섰다.

 

30대 후반쯤, 검정 투피스가 잘 어울렸다.

 

쇼트커트한 머리, 화장이 좀 어울리지 않는다.

 

얼굴만 희고 바로 아래쪽 목은 누렇잖아?

 

최갑중이 이맛살을 찌푸렸을 때 여자의 시선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더니 옆쪽을 향해 활짝 웃는다.

 

옆쪽 좌석에 앉아 있던 사내 하나가 여자한테 손을 들어 보였으므로 최갑중은

 

소리죽여 숨을 뱉는다.

 

그 여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자 옆쪽에서 입맛 다시는 소리가 났으므로 최갑중이 시선을 돌렸다.

 

최갑중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나도 저 여자인 줄 알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조철봉도 여자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손목시계를 본 최갑중이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5분이 지났는데요, 형님.”

3시5분이다.

 

서울호텔 스카이라운지 안이었다.

 

둘은 10분 전부터 와 있는 것이다.

“그 여자가 내 얼굴을 알 테니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등을 의자에 붙인 채 말한다.

“난 그 여자 얼굴을 기억 못해.”

“미인이었습니까?”

조심스럽게 최갑중이 묻자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떴다가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 후로 다 잊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다시 전화를 해 온 유서경에게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전해준 것도 자신이어서 최갑중은 초조해졌다.

“이 여자가 웬일이야? 지가 먼저 와서 기다리지 않고.”

최갑중이 투덜거렸다. 다시 시계를 내려다본 최갑중의 말이 조금 험해졌다.

“틀림없이 돈을 좀 빌려 달라는 겁니다.

 

이번에 형님이 우즈베키스탄에다 투자하시고 나서 그런 요청이 일백건도 더 왔으니까요.”

그때 출입구로 여자 하나가 들어섰으므로 최갑중은 입을 다물었다.

 

조철봉의 시선도 여자에게 옮겨졌다.

 

잠깐 멈춰 섰던 여자가 라운지 안을 둘러보더니 조철봉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여자가 발을 떼어 곧장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여자는 언론에 보도된 내 얼굴을 알고 있겠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다가선 여자가 조철봉을 향해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제 얼굴 잊으셨죠?”

“아, 그야.”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러자 따라 일어선 최갑중이 정색하고 묻는다.

“유서경씨 되십니까?”

“네, 맞아요. 최 사장님이시군요.”

하고 여자가 아는 체를 한다.

 

조철봉은 그 사이에 여자를 관찰했다.

 

세련되었고 무르익었다.

 

껍질이 스르르 벗겨지는 물컹한 복숭아가 연상되었다.

 

한입 베어 물면 단 과즙이 주르륵 쏟아지는 복숭아,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조철봉이 힐끗 최갑중을 보았다.

 

최갑중도 조금 놀란 표정이다. 

 

 

 

 

(2335) 남자의 꿈 -20

 

 

 

“근데 말이오.”

자리에 앉았을 때 조철봉의 차분한 목소리를 듣고 최갑중은 긴장한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것이다.

 

조철봉이 앞에 앉은 유서경을 똑바로 보았다.

“난 거기 얼굴은 물론 이름도 잊어먹었어. 잘 아시겠지만 요즘은 무서운 세상이라.

 

보이스 피싱 아시지?”

“그럼요.”

유서경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얼굴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그땐 9월 중순이었죠. 산장 이름이 뭔지 기억나세요? ‘소쩍새’ 산장이었죠.

 

주인은 수염이 긴 박씨.”

유서경이 똑바로 조철봉을 보면서 말을 잇는다.

“오후 5시경부터 비가 엄청 왔죠.

 

같이 떠났던 두 팀은 산장을 거쳐 한 시간쯤 전에 내려갔구요.

 

우리 둘은 제가 배가 아픈 바람에 쉬느라 늦었구요.”

“그래, 맞아.”

환해진 얼굴로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남자는 박경식이 하고 한 뭐라고 하는 놈이었어.

 

박경식이는 복학한 과 동기였고 한 머시기는 그놈 친구였지.

 

근데 박경식이는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연락이 안 돼.”

유서경은 조철봉의 말을 건성으로 넘기고는 바로 말을 받는다.

“저도 조철봉씨 이름이 기억 안 나서 긴가민가했어요.

 

그러다가 이번에 사진을 보고 나서 연락을 해본 거라구요.”

“그전에도 여러 번 사진이 나왔었는데.”

“그건 못봤구요.”

“이 사람한테 비오는 날 산장에서 하룻밤 같이 지냈다고 말하는 게 쑥스럽지 않았어?”

조철봉이 옆에 앉은 최갑중을 눈으로 가리키며 불쑥 물었다.

 

그러자 유서경이 눈웃음을 쳤다.

 

무르익은 복숭아 껍질이 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므로 조철봉은 숨을 멈췄다.

 

그때 유서경이 말했다.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죠.”

“그렇게까지 떠올리게 하려고 했던 이유는 뭔데?”

부드러운 표정으로 조철봉이 물었지만 최갑중은 긴장했다.

 

그러자 유서경이 바로 대답했다.

 

당당한 표정이다.

“자금 지원을 받고 싶어서요. 참 제 소개가 늦었네요.”

하면서 유서경이 가방을 열고 명함을 꺼내더니 조철봉과 최갑중에게까지 건네주었다.

 

명함을 본 조철봉이 놀란 듯 눈동자를 고정시켰다.

 

유서경은 심리학 박사이며 대학교수, 국제자선재단 이사장이었다.

 

머리를 든 조철봉에게 유서경이 웃음띤 얼굴로 말한다.

“재단 사무실이 소공동 서울빌딩에 있어요. 초대장 보내드릴 테니까 오세요.”

“내가 좀 바빠서.”

“전 국무총리 백영진씨가 고문으로 계시고 문화부장관 안세현씨가 감사로 계세요.

 

재단이사로 전직 장관이 네 분이죠.”

“대단하군.”

“국제자선재단의 주요 사업은 세계 27개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치료를 해주는 것인데

 

작년에는 253명을 초청해서 완치시켜 보냈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주는 사업이죠.”

“당신이 이렇게 되었다니.”

조철봉이 감탄한 듯 반쯤 입을 벌리고는 멀거니 유서경을 보았다.

 

그러자 유서경이 쓴웃음을 짓고 나서 말한다.

“가끔 자선사업이나 기부를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고민하는 사람이 있어요.

 

또 사기를 당하거나 쓸데없는 곳에 쏟아 부어서 의도가 퇴색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내가 조철봉씨를 찾아온 것이라구요.”

유서경의 태도는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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