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79. 남자의 꿈 (11)

오늘의 쉼터 2014. 10. 11. 01:09

879. 남자의 꿈 (11)

 

 

 

(2336) 남자의 꿈 -21

 

 

조철봉은 공인이다. 더구나 대통령 특보 신분이다.

 

그래서 최갑중은 회사 일을 맡아서 하는 전문업체에 의뢰하지 않고

 

국정원 정보실장 이강준에게 부탁했다.

 

유서경한테서 받은 명함을 그대로 보내주고는 조사를 의뢰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부탁한 다음 날에 서면으로 통보되었다.

 

유서경과 만난 지 이틀 후가 된다.

 

조철봉의 사무실에 마주 앉은 최갑중이 파일을 펼치고는 입을 열었다.

“그 여자 이름이 유서경은 맞습니다.

 

42세, 사무실이 소공동 서울빌딩 705호실에 있는 것도 맞습니다.

 

직원이 셋 있다는군요.”

최갑중이 계속해서 파일을 읽는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거짓말입니다.

 

유서경은 아시아여대 3학년 중퇴자입니다.

 

심리학 박사라니요, 턱도 없는 거짓말이죠,

 

국제대학 조교수도 거짓말, 국제자선재단은 등록도 되지 않은 단체이고

 

전 총리가 고문이라뇨? 시뻘건 거짓말이라 웃음도 안나옵니다.

 

직원 셋은 모두 전과자구요.”

그러고는 최갑중이 머리를 든다.

 

제 말대로 웃음도 안나오는지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도대체 우리를 뭐로 보고 이런 뻔한 거짓말을 한단 말입니까?

 

자존심이 상합니다.”

조금 더 그럴듯한 거짓말을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그러자 조철봉이 턱으로 파일을 가리켰다. 태연한 표정이다.

“계속해서 읽어.”

“예, 사장님.”

입맛을 다시고 난 최갑중이 다시 파일을 읽는다.

“유서경은 전과가 3번 있습니다.

 

사기 2번, 공금횡령 1번인데 합계 4년 반 동안 교도소에 들어가 있었고

 

이혼한 남편이 14살 난 딸을 키우고 있습니다.”

힐끗 조철봉의 눈치를 살핀 최갑중이 계속해서 읽는다.

“현재 사당동의 8평짜리 오피스텔에서 보증금 300에 월 20만원짜리 월세를 사는데

 

부모 형제하고 왕래도 끊긴 상태입니다.

 

친구도 없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영등포의 천하 나이트클럽에 나간다고 하는군요.”

그러고는 최갑중이 머리를 서너 번 흔들었다.

 

감탄한 시늉이다.

“만 하루 만에 이렇게 조사를 하다니, 과연 정보기관은 다르군요.”

“다, 끝났어?”

“아닙니다.”

헛기침을 한 최갑중이 다시 파일을 본다.

 

“현재 예금 잔고는 42만원,

 

지금까지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자들 등을 쳐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입맛을 다신 최갑중이 머리를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중2짜리 딸을 만나는 건 빼먹지 않는다는 군요,

 

전 남편은 재혼해서 살고 있는데 딸 양육비로 전 남편한테

 

한 달에 50만원씩 보내주고 있습니다.”

“뭣 때문에 이혼했는데?”

유서경이 사기로 교도소에 가는 바람에 남편이 이혼 소송을 했습니다.

“도대체 뭘 하려고 사기 친 거야?”

“그건 적혀 있지 않는데요.”

그러자 소파에 등을 붙인 조철봉이 멍한 표정으로 최갑중을 보았다.

“참, 사람 산다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하구나.”

최갑중이 눈만 끔벅였고 조철봉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이제는 비오던 날 산장에서 떨던 그 여자 열굴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아주 앳되었지, 나하고 어설픈 불장난을 하고 나서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던 모습이 선하구나.”

그러고는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는다.

“그런데 이제 내 등을 치려고 한단 말이지?” 

 

 

 

 

(2337) 남자의 꿈 -22

 

 

“어제 백영진 총리님을 만났어요.”

다음날 조철봉의 사무실로 찾아온 유서경이 말했다.

 

오늘도 조철봉은 최갑중과 함께였는데 최갑중이 자꾸 같이 있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유서경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정색한 채 듣는 조철봉을 보더니 유서경의 목소리에 생기가 실려졌다.

“총리님한테 조 사장님 이야기를 했더니 꼭 한번 뵙자고 하시더군요.”

그때 최갑중이 힐끗 조철봉을 보고 나서 입을 조금 열었다가 닫는다.

 

다시 유서경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도 전 문화부 장관 안세현씨가 여기 같이 오신다는 걸 겨우 말렸어요.

 

조 사장님한테 인사 드린다고 해서요.”

최갑중이 작게 헛기침을 하고 나서 찻잔을 들었는데 온몸이 근지러운 것 같았다.

 

사지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유서경은 열심히 말한다.

“모두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거든요.

 

정부 지원금은 처음부터 받지 않기로 해서요.

 

저도 부모한테서 물려받은 재산이 없었다면 자선재단을 운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겠네.”

마침내 조철봉이 맞장구를 쳤다.

 

그것을 본 유서경이 길게 숨을 뱉는다.

“한달에 제 돈으로 2500쯤 들어가요.

 

행사 비용에다 사무실 운영비, 직원 월급까지 챙겨줘야 하니까요.”

“고생이 많아.”

“다음 달에 아프리카에서 수술받을 아이들 70명이 방한하기로 계획이 되어 있는데

 

대학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은 해준다고 하지만 경비가 부족해요.”

“얼마나 부족한데?”

마침내 조철봉이 묻자 유서경은 먼저 긴 숨부터 뱉는다.

 

그러고는 정색한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최갑중도 긴장한 채 유서경의 얼굴을 본다.

 

이 순간이 클라이맥스인 것이다.

 

조철봉도 유서경의 시선을 받은 채 긴장하고 있다.

 

조철봉 스스로도 자신을 사기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최갑중 또한 조철봉의 심복으로 사기에는 도가 트인 인간이다.

 

따라서 둘은 유서경의 지금 심중을 맑은 물속을 보듯이 들여다보고 있다.

 

유서경의 심장은 무섭게 뛸 것이고 머릿속 혈관은 최대치로 팽창되었다.

 

뇌는 수백가지 생각을 정리, 억제시키느라 번개처럼 움직이고 있다.

 

사기꾼의 이 순간은 절정에 오르기 직전이나 같다.

 

지금 뱉어낼 말이 바로 절정이다.

 

대포가 발사되고 샘이 발광을 하는 그 순간인 것이다.

 

그때 유서경이 터뜨렸다.

“3억5000 정도. 하지만 내가 아파트를 담보로 1억5000 정도는 만들 수 있으니까

 

2억쯤 부족하네요.”

한마디 한마디를 또박또박 말하면서 유서경이 시선을 떼지 않는다.

 

그때 최갑중이 먼저 길게 숨을 뱉는다.

 

시선을 돌린 조철봉은 최갑중의 얼굴에서 감탄한 표정을 읽는다.

 

유서경의 태도가 그럴듯하다는 표시였다.

 

조철봉이 유서경을 보았다.

 

여전히 차분한 표정이다.

“그렇게 집까지 담보로 잡히면 되겠어? 그러지 마.”

“그럼 어떻게 해요?”

눈을 크게 떴던 유서경의 눈에 금방 물기가 고여진다.

“벌써 부모한테서 물려받은 20억짜리 상가는 은행 담보로 잡혀 경매처분 되었는데요.”

그렇게 말한 순간에 유서경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을 본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더니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내일 저녁에 같이 식사나 하지. 그때 결론을 내자고.”

조철봉의 목소리는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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