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77. 남자의 꿈 (9)

오늘의 쉼터 2014. 10. 10. 23:17

877. 남자의 꿈 (9)

 

 

 

(2332) 남자의 꿈 -17

 

 

“이번에 지역구로 한번 나오시죠.”

그렇게 정색하고 말한 사내는 여당 의원 김명국이다.

 

조철봉의 사무실 안이다.

 

오전 11시반, 조금전에 찾아온 김명국은 외교위 소속으로 조철봉의

 

우즈베키스탄 투자에 대한 인사차 들른 것이다.

 

김명국은 조철봉이 비례대표 의원 시절부터 안면이 있다.

 

다시 김명국이 말을 잇는다.

“지역구에 빈 곳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이번 보선에서 공천만 받으시면 백발백중입니다.”

“아이고, 저는….”

입맛을 다신 조철봉은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현재로 만족합니다. 한번 그만둔 일을 다시 하다니요?

 

그리고 적성에도 맞지 않습니다.”

“지역구를 해보시면 보람이 더 있으실 텐데요.

 

그리고 전보다 조 사장님 위상이 더 나아지셨고.”

“아닙니다. 저는 전혀….”

김명국은 조철봉을 설득하려고 온 것이다.

 

아직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여당 고위층의 지시를 받고 온 것 같았다.

 

우즈베키스탄 투자에 대한 인사는 명분인 셈이었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앞에 앉은 김명국을 보았다.

 

김명국은 조철봉이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 중의 한사람이었다.

 

3선인 김명국은 자리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적당히 융통성이 있었으며 위선적이지가 않았다.

 

그것을 안 당 지도부가 김명국을 보냈을 것이다.

 

이윽고 다시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저는 제 자신을 압니다. 지금 제 위치만으로도 과분합니다.”

머리를 저은 조철봉이 똑바로 김명국을 보았다.

“이대로 베풀면서 살렵니다. 재산을 좀 모았으니까 나눠주면서 말이지요.”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다.

“김 의원님 같은 분한테는 제가 자금을 댈 테니까 선거때 걱정하지 마십쇼.”

“아이고, 이런….”

김명국이 질색했다가 곧 얼굴을 펴고 따라 웃었다.

“허, 이거, 졸지에 후원자 하나 만들었네요.”

“말씀은 고맙지만 저한테 그 이야기는 그만해주시지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지요.”

어깨를 늘어뜨렸던 김명국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지그시 조철봉을 보았다.

“조 사장님이 부럽습니다.”

비서실에서 기다리던 최갑중이 따라 들어왔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되어 있었는데 그동안 최갑중은

 

거의 매일 개성구 건설현장에 다녀왔다.

“사장님, 유서경씨라고 아십니까?”

“누구?”

눈을 가늘게 뜬 조철봉에게 최갑중이 한 자씩 또박또박 말한다.

“유서경씨라고, 꼭 뵙고 싶다는데요.”

“모르겠는데.”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최갑중을 노려보았다.

 

어디 내가 겪은 여자가 한두명이냐는 표정이다.

 

이런 표정은 최갑중한테만 보인다.

 

그 표정을 보았으면서도 최갑중은 태연하게 말을 잇는다.

“대학때 만나셨다는데요. 지리산에 같이 가셨다고 하면 기억하실 것이라고.”

“염병.”

마침내 화가 솟아오른 조철봉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가 무슨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이라도 탔대? 내가 기억하게?

 

아니, 내가 대학때부터 겪은 여자가 천명이 넘을 텐데 지가 뭐라고?

 

기가 막히구먼, 모른다고 해.” 

 

 

 

 

(2333) 남자의 꿈 -18

 

 

그런데 최갑중은 조철봉의 그런 반응도 예상한 것 같다.

 

최갑중이 다시 차분하게 말했다.

“지리산 산장에서 하룻밤 같이 지낸 사람이라고 하면 아실 거라고 하던데요.

 

그날 비가 엄청 왔답니다.”

“이런 빌어먹을.”

머리끝까지 열이 받친 조철봉이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탁자 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는데 던질 것을 찾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 순간 조철봉 눈동자의 초점이 멀어지는 것 같더니

 

입술 끝이 늘어졌고 이어서 어깨가 내려갔다.

 

그러더니 털썩 소파에 등을 붙였다.

 

마치 누구한테 급소를 한방 맞은 것 같다.

“끄응.”

배에서부터 울린 신음이 뱉어졌다.

 

그러고는 멀거니 최갑중을 보았다.

“그 여자가 날 만나자고 해?”

“예, 꼭 뵙고 싶다면서.”

여전히 최갑중은 침착하게 말한다.

 

‘어디 내가 한두번 겪나’ 하는 표정이 최갑중의 얼굴에 떠올라 있다.

“왜?”

하고 조철봉이 묻자 이제는 최갑중도 소파에 등을 붙인다.

“이유는 말하지 않던데요.”

“그거 웃기는 여자네.”

혼잣소리처럼 조철봉이 말했지만 최갑중은 들었다.

 

최갑중이 눈을 좁혀 뜨고 묻는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야 인마, 일은 무슨 일.”

했지만 조철봉은 외면했다.

 

지리산 산장의 비를 말한 순간에 20년 전의 일이 선명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제대하고 3학년으로 복학한 그해 초가을,

 

천신만고 끝에 여학생 팀과 세쌍이 지리산으로 일박이일 코스의 등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의 파트너가 연락을 해온 것이다.

 

조철봉의 눈치를 살핀 최갑중이 다시 묻는다.

“한시간 후에 저한테 다시 연락을 해오기로 했습니다.

 

비서실에서 저한테 넘겨준 전화인데 해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여자 이름이 누구라고?”

“유서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조철봉이 눈을 크게 뜨고는 최갑중을 보았다.

“그것 참. 이게 좋은 현상인지 어쩐지 모르겠구먼.”

최갑중은 잠자코 시선만 주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 기억나. 비오는 날 일행하고 떨어져서 산장에서 둘이 밤을 보냈다.”

숨을 죽인 채 듣는 최갑중의 두 눈이 번들거린다.

 

뒷 장면은 뻔한 것이다.

 

그때 조철봉이 입맛을 다셨다.

“산장의 방은 하나뿐이었어. 그래서 만난 지 몇시간 만에 같이 자게 되었지.”

최갑중의 얼굴을 본 조철봉이 외면하더니 말을 잇는다.

“그래, 했다.”

“뭘 말씀입니까?”

정색한 최갑중이 묻자 조철봉이 이 사이로 대답한다.

“그걸 말야. 인마.”

“아아, 예.”

“뭐, 그냥 어설프게 했어. 허둥지둥….”

잠깐 말을 멈춘 조철봉이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땐 그냥 내 욕심만 채우고 끝냈으니까. 여자도 뭐, 잘 모르는 것 같더군.”

시선을 내린 최갑중이 위로의 말을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시늉을 했을 때

 

조철봉이 헛웃음을 웃고 나서 말한다.

“일 끝내고 서로 등 돌리고 잤다.

 

여자는 다음날 아침에 비가 그치자마자 혼자 앞서 가더니만 그것으로 끝났다. 그런데.”

그러더니 조철봉이 다시 배를 들썩이며 웃는다.

“내가 사회사업을 한다고 매스컴에서 떠드니까 나타났구먼, 20년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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