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75. 남자의 꿈 (7)

오늘의 쉼터 2014. 10. 10. 23:15

875. 남자의 꿈 (7)

 

 

 

(2328) 남자의 꿈 -13

 

 

돌아오는 차 안에서 조철봉이 최갑중에게 말한다.

“책은 당장 구입해서 모레까지 비행기로 도착하도록 해.”

“예, 사장님.”

해놓고 최갑중이 머리를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이왕이면 노트 같은 학용품과 학습자료도 함께 보내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는다.

“돈만 주면 다 구입할 수 있을 거다. 한 트럭분을 보내라고 해.”

“화물기에 실어야겠군요.”

앞에서 그 말을 들은 박영범이 상기된 얼굴로 말한다.

“폴리타젤에서 난리가 나겠습니다.”

조철봉은 등을 붙이고 앉아 대답하지 않는다.

 

고려인 마을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간 사람이 많았다.

 

유학을 떠난 학생도 있어서 한국과의 소통은 원활한 편이었다.

 

TV에서는 한국 연속극을 보고, 한국에서 일하는 엄마하고 폴리타젤에 있는 아들이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는 세상인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에겐 선망의 땅이며 자랑스러운 조국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 연방에서 독립해 나온 것은 1991년이다.

 

그때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은 다시 이주민의 서러움과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베크인이 71.4%, 러시아인이 8.3%를 차지하는 국가였기 때문이다.

 

우즈베키스탄이 다민족 국가라고 하지만 고려인은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는다.

 

만일 한국의 국력이 약했다면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은 더 서러움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조철봉이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는 중국 조선족 동포들하고 일어났던 일들이 발생하면 안 돼.”

그러자 박영범이 입맛을 다셨다.

“일부 한국에서 온 사람들이 그런 실수를 가끔 했지만 그렇게까지는 안 될 겁니다.”

조선족하고 일어났던 일들이란 언론에도 보도되었던 사건들을 말한다.

 

비자사기, 취업사기, 불법체류를 약점으로 잡아 임금을 주지 않는 등 여러 가지였지만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

 

쉽게 당하지도 않지만 동포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또한 몇년 전만 해도 중국에 가서 동포한테 자가용 자랑을 하던 관광객이 많았는데

 

지금은 기가 죽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중국 시내의 고급 외제차가 한국보다 많기 때문이다.

 

폴리타젤에서 타슈켄트 시내까지는 차로 30분도 안 걸린다.

 

그들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6시경이었다.

 

로비로 들어서던 최갑중이 머리를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약속하셨습니까?”

로비 안쪽의 소파에 앉아 있는 소냐를 본 것이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자 최갑중과 박영범은 잠자코 떨어졌다.

 

소냐는 다가서는 조철봉을 향해 수줍게 웃는다.

 

그 웃음을 본 순간 조철봉의 코가 시큰해졌다.

 

깊은 사이가 된 상대의 의미심장한 웃음인 것이다.

 

서로 몸을 섞은 사이가 되지 않으면 저런 은밀하고 뜨거우며 축축한 느낌이 오는

 

웃음을 짓지 못한다.

 

조철봉이 앞자리에 앉았을 때 소냐가 묻는다.

“노인들을 만나셨다면서요?”

“누구한테 들었어?”

“김빅토르 교장 선생님.”

그러고는 소냐가 다시 빙긋 웃는다.

“내 선생님이셨거든요. 그래서 전화를 해봤지요.”

폴리타젤을 방문한 것도 소냐가 추천했기 때문이다. 

 

 

 

 

(2329) 남자의 꿈 -14

 

 

“한국에 갈 필요는 없어.”

방에 들어선 조철봉이 불쑥 말하자 소냐는 시선만 주었다.

 

소파에 앉은 조철봉은 주춤거리며 선 소냐에게 눈으로 앞쪽 자리를 가리켰다.

“대학 설립위원회 간부들한테 말해. 재단에서 자금이 나올 테니까 당장 추진하라고.”

앞쪽 자리에 앉은 소냐가 놀란 표정으로 묻는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대학 설립자금이 준비되었다는 말이지.”

소파에 등을 붙인 조철봉이 웃음 띤 얼굴로 소냐를 보았다.

“단 조건이 하나 있어.”

긴장한 소냐는 숨도 쉬는 것 같지 않았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재단이사장은 내가 추천한 인물이 맡아야 한다는 것.

 

자금은 다 내가 낼 테니까 그것을 반대할 이유는 없겠지?”

소냐는 눈만 껌벅였다.

 

어떤 정신병자가 반대하겠는가?

 

정신병자를 재단이사장으로 임명해도 고맙다고 할 판이다.

 

대학만 세우면 되는 것이다.

 

이윽고 소냐가 긴장해서 굳어진 목소리로 묻는다.

“설립자금을 내시려고요?”

소냐의 검은 눈동자를 본 조철봉의 목이 다시 메었다.

 

‘이런 때 다시 욕망이 치솟다니. 나도 할 수 없는 놈이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표정은 엄숙해졌다.

“그래. 내가 댈 거야.”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그러니깐 의원회 간부들한테 보고를 하도록 해.”

“정말이세요?”

하고 다시 물었던 소냐가 조철봉의 시선을 받더니 갑자기 얼굴을 붉혔다.

“믿기지가 않아서 그래요.”

“그렇겠지.”

이제는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소냐의 위아래를 훑어보는 시늉을 했다.

“여자나 밝히는 인간인 줄 알았을 테니까.

 

하긴 실제로도 그렇긴 해. 난 괜찮은 여자를 보면 정신줄을 놓아버려.”

여자만 보면 정신이 나간다고 하려다가 그건 소냐에 대한 모욕일 것 같아서 그렇게 말을 바꿨다.

 

소냐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시선만 주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말이 나온 김에 위원회 간부들을 만날 수 있겠지?”

“그러믄요.”

문득 정신이 든 소냐가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이더니 생각난 듯 말한다.

“재단이사장은 어느 분이 맡으셔도 상관없지 않겠어요? 그건 전혀 상관없는 일이거든요.”

“그렇지?”

조철봉이 소냐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소냐, 이건 상관없는 질문인데.

 

내가 대학 설립자금을 대는 것 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라고.”

하고 나서 조철봉이 묻는다.

“소냐, 남자친구 있어? 누구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거나. 또….”

“없어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냐가 머리까지 저으며 대답했다.

 

얼굴도 굳어져 있다.

소냐가 똑바로 시선을 준 채 말했다.

“정말 없습니다.”

“그럼 소냐가 내 애인이 되어줄 수 있는 거야? 싫다고 해도 내가 투자는….”

“있어요.” 이번에도 소냐가 조철봉의 말이 끝나기 전에 대답했다.

 

그것도 부족한지 소냐가 말을 잇는다.

 

그러나 시선은 내려졌다.

“사장님이 재단에 설립자금을 안 내셔도 애인이 되어 드릴 수 있다고요.”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는다.

 

이런 조건을 붙이는 자신이 한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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