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72. 남자의 꿈 (4)

오늘의 쉼터 2014. 10. 10. 23:13

872. 남자의 꿈 (4)

 

 

 

(2322) 남자의 꿈 -7

 

 

“오늘 처음 나왔습니다.”

조철봉의 시선을 똑바로 받은 소냐가 말을 잇는다.

“이바노프씨가 오늘 꼭 나오라고 해서요. 이바노프는 같은 마을에서 자란 오빠거든요.”

“음, 그런가?”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소냐의 잔에 위스키를 따른다.

 

소냐와의 대화에 열중하고 있어서 없어진 최갑중에게는 관심도 없다.

 

죽었다고 해도 여기 일은 마치고 나갔을 것이다.

 

어느덧 무대 위에 악사들이 모이더니 남자 가수가 경쾌한 리듬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남녀 서너 쌍이 일어나 홀에서 춤을 춘다.

 

홀 안의 분위기가 밝아졌고 소냐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타슈켄트에 언제 오셨습니까?”

이번에는 소냐가 묻는다.

“오늘 오후에.”

“처음이십니까?”

“그래.”

“선생님은 뭐 하십니까?”

그러자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는다. 이런 경우도 처음이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인데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었다.

“난 사업가야.”

술잔을 든 조철봉이 지그시 소냐를 보았다.

 

볼수록 매력이 풍겨나온다.

 

미끈한 피부, 짙은 속눈썹도 인조가 아니다.

“소냐.”

“네, 선생님.”

“몇 살이야?”

“스물다섯입니다.”

선생님 앞의 학생처럼 소냐가 고분고분 대답한다.

 

최갑중과 박영범은 보이지 않았고 홀에서는 춤추는 쌍이 더 늘어났다.

 

음악과 함께 함성이 일어나고 있다.

“소냐, 내가 소냐한테 어떻게 해줘야 되지?”

조철봉이 정색하고 묻자 소냐의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지워졌다.

 

시선을 내렸다가 든 소냐가 조철봉을 보았다.

 

이제는 차분해진 표정이다.

“그건 모릅니다.”

머리를 저은 소냐가 말을 잇는다.

“이바노프씨는 그냥 손님하고 같이 있으라고만 했거든요.”

“…….”

“그럼 손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라고.”

“그것참.”

황당해진 조철봉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할 때 소냐가 먼저 말했다.

“전 그런 경험이 없거든요. 하지만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바노프씨한테 부탁을 했지요.

 

그랬더니 오늘 처음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이런.”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는다.

 

이건 땡잡았다고 춤을 춰야 마땅한 일 같은데 조심스러워지는 자신을 느꼈기 때문이다.

 

천하의 조철봉도 이런 경우에는 어색하다.

 

한 모금 술을 삼킨 조철봉이 묻는다.

“무엇 때문에 돈이 필요한 거야?”

“사정이 있습니다.”

그러고는 소냐가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그건 말씀드리기 싫어요.”

“돈이 얼마나 필요한데?”

“그것도 비밀입니다.”

“오늘 나하고 같이 지내면 얼마를 받고 싶어?”

“주시는 대로.”

했다가 소냐가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말을 잇는다.

“100불 받는다고 들었어요.”

“그런가?”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머리를 들고 이바노프를 찾는다.

 

이바노프는 근처에 있었다. 

 

 

 

 

(2323) 남자의 꿈 -8

 

 

조철봉이 손을 들어 부르자 이바노프가 서둘러 다가왔다.

 

그러나 한국말을 모르는 이바노프가 러시아어로 소냐에게 묻는다.

 

그러자 조철봉이 소냐에게 말했다.

“박 사장을 불러오라고 해줘.”

소냐의 통역을 들은 이바노프가 서둘러 사라지더니

 

10초도 안 되어서 박영범이 이바노프와 함께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바쁘게 왔는지 가쁜 숨을 고르며 박영범이 묻자

 

조철봉이 눈으로 이바노프를 가리키며 묻는다.

“소냐가 뭣 때문에 돈이 필요한지를 물어봐. 소냐가 대답을 안해서 그래.”

그러고는 웃음 띤 얼굴로 소냐를 본다.

“소냐, 싫겠지만 난 알아야겠어. 미안해.”

금방 눈치를 챈 박영범이 이바노프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소냐는 시선을 내린 채 움직이지 않는다.

 

얼굴도 굳어져 있다.

 

흰 블라우스에 검정 스커트 차림으로 단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조철봉은 또 목이 메었다.

 

그때 박영범이 말했다.

 

주위가 소란해서 박영범은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에 가려고 한답니다.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 갖고 이곳에다 대학을 세울 계획이라는군요.”

“대학을.”

놀란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소냐를 보았다.

 

그러나 소냐는 외면한 채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때 이바노프의 말을 박영범이 다시 통역했다.

“이바노프도 다 알고 있는 일이랍니다.

 

뽈리따젤에도 소문이 다 났다고 하는데요.”

“뽈리따젤이 뭔데?”

“예, 타슈켄트 근처의 고려인이 사는 마을입니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이고는 잠시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이바노프가 사라졌다.

 

또 잠시 후에 박영범이 엉거주춤 엉덩이를 들면서 묻는다.

“저도 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수고했어.”

그러자 박영범도 서둘러 떠났으므로 다시 테이블에는 둘만 남았다.

 

그때 소냐가 입을 열었다.

 

여전히 굳어진 얼굴이다.

“모은 돈이 좀 있지만 한국 가려면 부족해서요.”

“비자는 받았고?”

“그건 준비되었어요.”

“가서 뭘 할 건데?”

조철봉이 연거푸 묻자 소냐는 망설이다가 대답한다.

“아르바이트 하면 한 달에 1000불은 모을 수 있다고 들었어요.

 

3년이면 3만불은 모을 수 있겠죠.”

“대학 세우는데 3만불이야?”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조철봉이 묻자 소냐는 머리를 젓는다.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다.

“대학 설립위원회가 조직되었어요.

 

동참한 회원은 200명쯤 되는데 전 운영위원을 맡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설립 자금을 모으는 중이군.”

혼잣소리처럼 말한 조철봉이 입맛을 다신다.

 

그러고는 잊고 있었다는 듯이 술잔을 들고는 다시 묻는다.

“한국 가는데 얼마나 모자라는 거야?”

“250불쯤.”

이번에는 소냐가 바로 대답했지만 시선을 보내지는 않는다.

 

소냐가 뱉듯이 말을 잇는다.

“비행기 요금은 준비되었는데 생활비가 부족해서요.”

“나하고 호텔로 같이 갈 거야?”

불쑥 조철봉이 묻자 소냐는 머리를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여전히 표정이 굳다. 소냐가 입을 열었다.

“안돼요. 제 집으로 가셔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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