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68. 새세상 (10)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5:37

868. 새세상 (10)

 

 

 

(2314) 새세상 -19

 

 

일행이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4시경이었다.

 

김대성이 부산 시내를 시찰할 줄로 예상했던 이강준은 항구로 가자는 말에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부산항은 마침 노조원들의 시위로 이틀째 하역이 중지된 상황이었다.

 

김대성이 TV로 그 장면을 보고 또 호기심을 일으킨 것 같았다.

 

이제는 시위 현장에 익숙해졌는지 김대성은 멀찍이 떨어진 구경꾼들 사이에 끼어 서더니

 

잠자코 둘러보기만 했다.

 

1백미터쯤 전방에 바리케이드를 친 시위대와 경찰 병력이 대치하고 있었는데 길바닥에는

 

부서진 보도블록, 깨진 병 조각, 화염병에 탄 검은 자국, 그리고 물이 흥건하게 고여있었다.

 

전쟁이 훑고 간 흔적이다.

 

구경꾼들 대부분은 시위자 가족이어서 시위대를 응원하고 경찰을 욕하는 외침이 사방에서 울린다.

 

카메라를 눈에 붙이고 있거나 목에 맨 남녀가 구경꾼의 절반은 되었다.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현장이 보도되는 것이다.

“대통령을 끌고 와!”

그때 와락 옆쪽 아줌마가 소리치는 바람에 김대성이 깜짝 놀란다.

 

40대 중반쯤의 약간 비만형 체격, 그러나 눈을 치켜뜬 모습이 다부졌다.

 

주먹을 쥔 아줌마가 다시 소리쳤다.

“대통령 그놈을 끌고 와서 합의를 하도록 해야 돼!”

놀란 김대성의 시선이 조철봉 옆쪽에 선 이강준에게로 옮겨졌다.

 

그러나 이강준은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앞만 보았다.

 

이곳저곳에서 외침이 일어나는 중이어서 어수선하기는 했다.

 

그러나 아줌마의 대통령에 대한 욕설은 계속되었다.

 

이제는 이름에다 별명까지 부르면서 욕질을 한다.

 

전경 대여섯명이 앞을 지나갔지만 못 들은 척했다.

 

조금 지겨워진 조철봉이 손목시계를 두 번째 내려다 보았을 때였다.

 

김대성이 슬쩍 조철봉의 어깨를 건드렸다.

“가시지요.”

머리를 든 조철봉에게 김대성이 눈으로 앞을 가리켰다.

 

지금까지 아우성을 쳤던 비만 아줌마가 구경꾼 대열에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김대성이 그 아줌마의 뒤를 따라나왔으므로 일행도 대열에서 빠져나왔다.

 

아줌마는 느린 걸음으로 인도를 따라 걷는다.

 

시위대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때 김대성의 옆으로 다가온 이강준이 상황을 설명했다.

“항만 노조가 임금 인상과 고용 보장을 내걸고 파업 시위를 하는 겁니다.”

이미 TV로 보았는지 김대성이 머리만 끄덕였다.

 

김대성의 시선은 20미터쯤 앞을 걷는 여자의 등에 박혀 있다.

 

그러자 이강준이 묻는다.

“저 여자를 따라가시는 겁니까?”

“예, 그런데.”

잠깐 시선을 뗀 김대성이 이강준을 보았다. 굳어진 표정이다.

“저 여자 신원은 다 파악하고 있겠지요? 경찰이나 국정원에서 말입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따라서 정색한 이강준을 향해 김대성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렇게 대통령 욕질을 해대는 여자를 잡아가지 않고 놔두는 건 내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자 이강준이 헛기침을 했다.

“그런 거 없습니다.”

머리까지 저은 이강준이 말을 잇는다.

“여기선 대통령 욕한다고 잡아가지 않습니다.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긴 TV에서 수십 번 보도가 되기도 했다.

 

그때 여자가 길을 건넜으므로 일행도 서둘러 무단 횡단을 했다.

 

조철봉이 돌아보니 일행도 10여 명이나 된다.

 

길을 건넌 여자가 주차장으로 다가간다. 

 

 

 

 

(2315) 새세상 -20

 

 

여자의 차는 소형차였지만 신형이었다.

 

차 옆으로 다가갔던 여자가 문득 손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귀에 붙였다.

 

그때는 김대성과 조철봉이 3미터쯤 뒤쪽으로 다가가 있어서 다 들렸다.

“응, 명수냐?”

하더니 여자가 힘찬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엄마는 아빠 회사 앞에서 금방 나왔어. 그러니까 너, 집에서 기다려.”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여자가 말을 잇는다.

“미옥이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오면 밖에 못 나가게 잡아둬. 알았지?”

김대성과 조철봉은 여자한테 등을 돌린 채로 대형차 앞에서 우물쭈물했고 다시 목소리가 울린다.

 

시위 현장에서 떠들썩하게 외치고 나온 후여서 여자의 목소리는 크다.

“배고프면 냉장고에서 카레 꺼내 갖고 전자레인지에다 녹여 먹어라. 알지?”

그때 김대성이 발을 떼었으므로 조철봉은 뒤를 따른다.

 

다시 주차장 입구 쪽으로 나왔을 때 여자가 탄 소형차가 그들 옆을 지나 차도로 들어섰다.

“어디로 가실까요?”

관리실 옆에 서 있던 이강준이 다가오더니 김대성에게 묻는다.

 

그러자 차도의 차량 대열에 섞여져서 멀어져 가는 여자의 차를 바라보던

 

김대성이 머리를 돌려 이강준을 보았다. 멍한 표정이다.

“예에?”

하고 김대성이 되묻자 이강준은 작게 헛기침을 한다.

“예. 어디로 모실까요?”

“돌아갑시다.”

김대성이 말했을 때 이강준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확인하듯 다시 묻는다.

“차로 돌아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 평양으로.”

그러나 잠자코 서 있던 조철봉이 놀라 한 걸음 다가섰다.

“아니, 벌써 왜….”

조철봉이 더듬대며 묻자 김대성이 발을 떼면서 말한다.

“더 볼 것 없습니다.”

이제 김대성의 좌우에는 조철봉과 이강준이 붙어 섰고 강영만은 뒤를 따른다.

 

김대성의 말이 이어졌다.

“많이 느꼈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강준이 눈만 껌벅였으므로 조철봉이 다시 묻는다.

“오늘은 늦었으니 쉬시고 내일 돌아가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김대성이 웃음 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그, 한 시간에 삼백 킬로 달린다는 열차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몇 시간에 갑니까?”

“예. 세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그걸 타 보고 싶습니다.”

김대성의 말에 이강준이 손짓으로 수행원을 부른다. KTX 예약을 하려는 것이다.

 

곧 차가 도착했으므로 일행은 버스에 올랐다.

 

이제 일행의 목적지는 부산역이다.

 

버스가 속력을 내었을 때 김대성이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전혀 다른 세상이네요.”

창밖을 향한 채 말했지만 옆쪽에 앉은 조철봉과 이강준은 다 듣는다.

“실제로 며칠 겪어 보니까 너무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혼란스러워요.”

조철봉은 숨을 죽였다. 김대성과 함께 북한땅을 암행했을 때의 여러 장면이 눈앞을 스쳐 갔다.

 

그렇다. 너무 차이가 난다.

 

그래도 경제력 차이는 조철봉의 생각에도 견딜 만했다.

 

그때 김대성의 목소리가 버스 안을 울렸다.

“이제는 인민들을 위한 세상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때 조철봉과 이강준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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