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63. 새세상 (5)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5:32

863. 새세상 (5)

 

 

 

(2304) 새세상 -9

 

 

전라북도 전주는 진즉부터 음식의 도시로 널리 알려졌지만 국악과 전통의 고장이기도 하다.

 

도시에 고층 빌딩이 드물고 수백년된 한옥이 많이 보존되어서 걷다보면

 

문득 옛날로 돌아온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전주시는 또 한옥마을을 따로 구분해 놓았기 때문에 한 구역 전체가 한옥이다.

옛적 전라도의 도성, 교육의 도시이기도 한 전주시에 지금 김대성 일행이 와있다.

 

전주시에 온 것은 김대성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강준은 김대성에게 ‘한국 탐방 스케줄’이라고 적힌 방문 계획서를 제출했지만 단서를 달았다.

 

도중에 김대성이 요구하면 즉시 바꾼다는 내용이다.

 

김대성은 대전에서 전주로 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이강준은 두말하지 않았다.

 

오후 12시반, 대전에서 전주까지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일행이 한식당의 방안에 둘러앉았을 때 김대성이 말했다.

“도시가 아늑하고 깨끗하군요. 오늘은 이곳저곳을 걸어다녀 보십시다.”

김대성의 시선이 조철봉에게로 옮겨지더니 말을 잇는다.

“학생도 만나고 싶고 아주머니들 하고도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시지요.”

선선히 대답한 조철봉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길을 걷다가 내키는 대로 붙잡고 물으십시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테니까요.”

그러자 옆쪽에 앉은 이강준이 머리를 끄덕였다.

 

조철봉이 봐도 이강준은 전혀 연출을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한정식 상이 들어오자 김대성은 물론이고 강영만까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전주식 한정식상을 보면 산해진미, 진수성찬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다양한 찬에 맛의 진미, 음식의 정성이 모두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김대성은 찬 하나하나에 감탄하면서 한정식을 먹었다.

 

그것을 본 조철봉이 자부심으로 가슴이 뻐근해질 정도였다.

 

식당을 나왔을 때는 오후 2시쯤.

 

오늘도 조철봉과 김대성이 앞장을 섰고 수행원들은 표시가 나지 않게 뒤를 따른다.

 

이곳은 시내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성당 근처의 샛길이다.

 

김대성이 두리번거리며 걸으면서 말했다.

“이곳이 야당 도시지요? 한번도 여당세력이 발을 붙이지 못한 곳이라면서요?”

그 순간 조철봉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김대성의 의도를 알았기 때문이다.

 

하긴 그렇다. 전주시는 전라북도의 도청 소재지로 야당 도시다.

 

현 집권당은 이곳에서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지방의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2년 전만 해도 전라도는 여당의 아성이며 통치자를 배출한 지역이었다.

 

김대성은 야당 도시에서 민심을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조철봉이 대답했을 때 김대성은 걸음을 멈췄다.

 

길가의 공터에 장기판을 사이에 놓고 두 노인이 마주앉아 있었는데 훈수꾼이 둘 더 있었다.

 

장기가 막 끝났는지 알을 치우면서 떠들썩했다.

“이놈아, 인자 통일허자고 떠드는 놈들은 다 기어 들어갔단 말여.”

오른쪽에 앉은 노인이 큰 목청으로 말했다.

 

“이산가족도 다 늙어 디져서 고향 찾아간다고 하는 노인도 드물단 말여.”

 

김대성은 그들의 말을 듣고 관심을 보인 것이다.

 

그러자 상대 노인이 말을 받는다.

“아녀. 이 기회에 꼭 통일혀야 된다.

 

김정일이가 아들한티 왕위를 물려 준다는 것을 본께 인자 갈 때가 된 모양인디

 

이때가 기회란 말여.”

노인은 유식한 척 시치미를 뗀 얼굴이다. 

 

 

 

 

(2305) 새세상 -10

 

 

“통일혀서 뭐허게?”

하고 불쑥 나선 것은 훈수꾼으로 옆에 서 있던 노인이다.

 

백발에 주름살투성이였지만 입성은 깨끗했고 허리도 곧아,

 

노인이 손끝으로 삿대질을 하면서 목청을 높인다.

“통일해 쌓는 놈들 하나씩 적어 놓고 도대체 그놈들이 세금 얼마나 내고

 

그렇게 큰소리를 해 대는지 조사혀 보자,

 

십중팔구 그놈들 일년에 세금 몇십만원도 안 내고 남이 낸 세금으로 흥청망청 살던 놈들일 거다,

 

그런 놈들이 위원회다 뭐다 감투를 차고는 민족, 민주, 통일 찾으면서 그동안 국민 세금 갖고

 

잘 먹고 잘살았지, 안 그려?”

“또 지랄이구먼.”

듣던 노인 하나가 투덜거렸지만 대들지는 않았다.

 

뒤쪽에 멈춰 서서 듣던 김대성이 조철봉에게 낮게 말한다.

“이쪽에서는 통일을 열망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군요.”

“예, 그야.”

말을 이으려던 조철봉이 다른 노인이 목청을 돋우는 바람에 입을 다물었다.

“그려도 이놈아 우리가 그만큼이라도 해줬응께 전쟁이 안 난 거여,

 

그걸 알아야 된다고, 이 무식헌 놈아.”

“이런 병신이 있응게로….”

“가십시다.”

그때 김대성이 발을 떼며 말했으므로 조철봉이 뒤를 따른다.

 

정치 토론은 끝도 없다. 나중에 역사가 판단을 하겠지만 지금은 목소리가 큰 놈이 이기는 판국이다.

 

여론이랍시고 TV에 보도를 하는 것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승자의 과오는 덮여져서 영원히 묻혀질 수도 있다.

 

조철봉은 묵묵히 김대성의 옆을 걷는다.

 

지금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김대성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다.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때 묵묵히 걸음을 떼던 김대성이 불쑥 말한다.

“아버지는 이 실상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귀만 세운 조철봉이 바짝 붙어 걸었고 김대성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나한테 남조선을 둘러보고 오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김대성이 길게 숨을 뱉는다.

“내가 쓸데없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무 , 무엇을 말씀입니까?”

마침내 조철봉이 묻자 김대성은 거침없이 대답한다.

“군부 강경파 세력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도록 말입니다.”

“……”

“내가 이틀 동안 남조선에서 뭘 느낀 것 같습니까?”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김대성이 쓴웃음을 짓더니 제 말에 제가 대답했다.

“혼란과 무질서, 대립에다 공권력과 시위대의 전쟁, 불평과 불만….”

한마디씩 힘을 주어 말하던 김대성이 머리를 들더니 조철봉을 보았다.

 

김대성의 얼굴에는 일그러진 웃음이 떠올라 있다.

 

20대 후반이 되어 가는 젊은 나이인데도 조철봉에게는 10년쯤 더 나이 들어 보였다.

 

김대성이 말을 잇는다.

“하지만 나는 그 바탕에 깔린 힘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경제력도 아니고 군사력도 아니었습니다.”

시선을 돌린 김대성이 머리까지 젓는다.

 

오가는 행인이 많았으므로 둘은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몸을 비키면서 발을 떼어 나간다.

 

그때 김대성의 말을 조철봉이 듣는다.

“아버지는 이 남조선의 저력을 느끼라고 나를 보내신 것 같습니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865. 새세상 (7)  (0) 2014.10.10
864. 새세상 (6)  (0) 2014.10.10
862. 새세상 (4)  (0) 2014.10.10
861. 새세상 (3)  (0) 2014.10.10
860. 새세상 (2)  (0) 2014.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