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61. 새세상 (3)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5:30

861. 새세상 (3)

 

 

 

(2300) 새세상 -5

 

 

충남 보령시의 대천해수욕장은 전북 부안군의 변산해수욕장과 함께 서해안에서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피서지다.

 

조철봉도 여러번 와본 터라 모두 눈에 익다.

 

오후 7시반, 바닷가 식당에서 회와 매운탕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일행은

 

모래사장 앞쪽의 계단에 서 있다.

 

주위는 피서객으로 혼잡했는데 분위기가 밝다.

 

부르고 답하는 목소리는 활기에 차 있었으며 가끔 간드러진 여자 웃음소리와

 

사내의 허세 섞인 외침이 일어났다.

 

남녀노소가 뒤섞인 채 북적대는 주변을 둘러보던 김대성이 옆에 선 조철봉에게 말했다.

“여긴 다른 세상 같습니다.”

조철봉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갔다.

 

김대성은 경찰과 싸우는 시위대의 모습과 비교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김대성이 말을 잇는다.

“이 사람들은 지도자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겠지요?

 

이렇게 만들어준 대통령이나 장관, 국회의원한테 말입니다.”

그러자 조철봉 옆에 서있던 이강준이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가늘고 긴 숨을 뱉는다.

 

그것을 본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예? 아니라뇨?”

놀란 듯 김대성의 눈이 커졌다. 정색한 김대성이 묻는다.

“그럼 누구한테 감사합니까?”

“꼭 감사의 뜻을 표한다면 자신을 낳아준 부모나 진급시켜준 직장 상사,

 

또는 학교 은사한테는 할 겁니다.”

그러고 나서 김대성의 표정을 본 순간 조철봉은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물었다.

 

다음 순간 조철봉은 뱉듯이 말을 잇는다.

“대통령이나 장관, 정치인들이 잘 해준 덕분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게 다 내 덕이라고 자랑했다가는 하루 아침에 목이 떨어질 겁니다.

 

어림없지요. 잘하라고 국민이 뽑아 주었으니 잘해야 하는 겁니다.

 

잘살게 되었다고 대통령이나 장관, 정치인들한테 굽실대다니요?

 

우리가 미쳤습니까? 이 나라가 대통령, 장관 것입니까?

 

우리가 저희들 종입니까? 아니, 저희들이 우리가 뽑은 심부름꾼이죠.

 

저희들은 우리한테 봉사하겠다고 약속해서 뽑힌 것이라고요.”

숨을 고른 조철봉이 똑바로 김대성을 보았다.

 

김대성의 표정은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시선을 내리지 않는다. 조철봉이 한마디씩 말을 맺는다. 내친 김이다.

“존경이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 존경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겁니다.

 

존경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다 놔두는 건 아니죠.

 

민주주의는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니까요.

 

다수가 동의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는 것이지요.”

조철봉이 이토록 길게 열변을 토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말을 옆에서 들은 이강준은 흡족한 표정이었으며 당사자인 김대성도 가만있었다.

 

그러나 다 이해한다는 표정은 아니다.

“자 바닷가로 가 보실까요?”

하고 이강준이 말했을 때였다. 앞쪽 바닷가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술에 취한 남자들의 목소리였다.

“가봅시다.”

김대성이 그쪽으로 발을 떼며 말했으므로 모두 뒤를 따른다.

 

모래사장 위에는 이미 십여명의 남녀가 모여 있었는데 경찰관도 두명 보였다.

“당신이 뭔데?”

하고 웃통을 벗은 사내가 경찰한테 대들었고 주위의 사내 하나도 거들었다.

“아, 시발. 열받네. 여기서 술 마시면 안 된다고 법에 쓰여 있어?”

술판을 벌이려다 경찰에게 제지당한 모양이다.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김대성은 바짝 다가선다.


 

 

 

(2301) 새세상 -6

 

 

모래사장의 소동은 결국 순찰차가 증원 경찰 둘을 싣고 온 후에야 끝이 났다.

 

그동안 경찰을 상대로 욕설까지 내뱉으며 대들던 사내 둘이 연행되었는데

 

동료들은 박수로 환호하며 배웅했다.

“저 사람들 왜 그럽니까?”

정색한 김대성이 환호하는 남녀를 눈으로 가리키며 묻자 이강준이 쓴웃음을 짓고 대답한다.

“장난치는 겁니다.”

“아니, 친구들이 잡혀 갔는데….”

“훈방이 되거나 내일 아침이면 풀려날 테니까요.”

“경찰한테 욕설을 하고 대들어도 저렇다면 법 집행이 어렵겠군요.”

김대성이 여전히 정색하고 말했고 이번에는 할 말이 없어진 이강준도 입을 다물었다.

 

북한과는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해 못하는 부분을 일일이 설명해 준다고 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이강준은 안다.

 

바닷가 모래 위에 나란히 앉은 그들 주위로 피서객들이 오가고 있다.

 

옆쪽에서 폭죽을 쏘아 올렸으므로 밤하늘에 불꽃이 퍼져 나간다.

“야, 멋지군요.”

하늘을 올려다본 김대성이 감탄했다.

 

그때 김대성의 앞을 지나던 비키니 차림의 여자 둘이 걸음을 늦추면서 저희끼리 소곤거렸다.

 

그러더니 그 중 하나가 몸을 돌려 김대성에게로 다가와 앞에 멈춰 섰다.

 

쇼트커트한 머리에 미끈한 몸매의 미인이다.

 

그래서인지 행동과 표정에서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나하고 나이트 안 갈래요? 물론 각자 부담하고요.”

하고 여자가 불쑥 물었으므로 김대성이 머리를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당황한 표정이다. 김대성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빙긋 웃었다.

“가 보시렵니까? 저만한 미인이 파트너하자는데 거절할 남자가 대한민국에는 없을 겁니다.”

그러자 여자가 조철봉과 김대성을 번갈아 보고 나서 말한다.

“싫으면 말고요.”

“갑시다.”

하면서 김대성이 일어났으므로 주위에 앉아 있던 사내들이 주르르 일어섰다.

 

이강준, 강영만, 조철봉까지 포함해서 모두 여섯 명이나 된다.

 

그러자 놀란 여자가 한 발짝 물러섰다.

“오빠 일행이세요?”

“그래요.”

대답은 조철봉이 했다. 여자에게 한 걸음 다가선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외국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며칠 안 되는 분이셔.

 

그러니까 한국 물정에 익숙지 못하니 아가씨가 이해를 해 주셔야겠어.”

그러자 김대성이 말을 잇는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아녜요.”

한 걸음 물러선 여자가 손을 젓더니 쓴웃음을 짓고 말한다.

“죄송하지만 취소할게요. 분위기가 거북해서 싫어요.”

“아가씨.”

하고 조철봉이 불렀지만 몸을 돌린 여자는 발바닥을 보이며 달려갔다.

 

여자가 제 친구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을 때 길게 숨을 뱉은 김대성이 조철봉을 보았다.

“앞으로는 혼자 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기회를 놓치지 않을 테니까요.”

“제가 좀 잘했어야 했는데.”

김대성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철봉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분위기가 많이 가벼워졌지만 아직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김대성이 나이트에 같이 갔다고 해도 작업이 성공했을 가능성은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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