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62. 새세상 (4)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5:31

862. 새세상 (4)

 

 

 

(2302) 새세상 -7

 

 

다음날 아침, 캠핑카에서 자고 일어난 김대성은 조철봉과 둘이서 해수욕장 안의 식당가를 걷는다.

 

오전 7시경이어서 아직 식당가는 한산했지만 드문드문 손님이 있다.

 

어젯밤부터 계속해서 마시고 있는 것 같은 술꾼들도 보인다.

 

조철봉은 잠자코 김대성의 옆을 따르면서 북한 땅에서의 암행과 비교해본다.

 

이곳은 바로 새 세상이다.

고등학교까지 스위스에서 다녔다는 김대성이지만 남조선 사회가 바로 북한 인민들이 꿈꾸던

 

세상이란 것을 알지 않겠는가?

 

그때 김대성이 걸음을 멈췄으므로 조철봉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김대성은 식당 앞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60대쯤의 여자 옆에 서 있었다.

 

여자는 남루한 옷차림에 얼굴은 볕에 타 검었는데 김대성과 조철봉이 다가가 섰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주머니, 지금 뭐 하십니까?”

김대성이 묻자 여자는 허리를 펴지도 않고 대답했다.

“보면 몰라? 음식물 걷어가는 거지.”

“걷어서 뭐 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통에 음식물 쓰레기를 붓고 난 여자가 허리를 펴더니 김대성을 노려보았다.

 

험악한 표정이다.

“그건 왜 물어?”

“제가 도와 드릴 일이 없나 하구요.”

정색한 김대성의 표정을 본 여자의 치켜뜬 눈썹이 내려갔다.

 

여자가 다시 비닐에 담긴 음식물 쓰레기를 통에 쏟으면서 말한다.

“필요없어. 옷에 쓰레기 튀니까 비켜.”

“살기 어려우십니까?”

하고 김대성이 물었을 때 여자가 번쩍 몸을 세우더니 김대성에게 한발짝 다가가 섰다.

“너, 몇살이야?”

“스물 여섯입니다.”

놀랐지만 김대성이 고분고분 대답하자 여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내 큰아들은 서른셋인데 지금 수원지검 검사야.

 

둘째는 서른살 먹었는데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있어. 그러고 막내 놈은.”

말을 그친 여자의 시선이 길 쪽으로 옮겨졌다.

“옳지, 저기 오는구먼. 나하고 양돈업을 하고 있어. 저놈은 스물 여덟이라고.”

김대성과 함께 머리를 든 조철봉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트럭을 보았다.

 

여자의 말이 이어졌다.

“내 행색이 이렇다고 동정하는 것 같은데, 마음씨는 착하지만 좀 우습기도 하구먼.

 

청년이 나한테 한 말을 내 아들들이 알면 당장 일 그만두라고 할겨.”

“죄송합니다.”

대신 사과한 조철봉이 김대성의 어깨를 살짝 건드리면서 눈짓을 했을 때 트럭이 멈추더니

 

운전석에서 건장한 체격의 청년이 내렸다.

 

그러고는 제 어머니보다 열배는 더 사나운 눈으로 조철봉과 김대성을 번갈아보며 묻는다.

“엄마, 뭐야?”

체격도 컸고 굵은 팔뚝에는 해골 문신까지 박혀 있다.

 

게다가 머리에는 해병대 모자까지 쓰고 있는 것이 해병대를 제대한 것 같다.

“아니다. 날 거들어 준다고 해서.”

여자가 말했을 때 사내의 시선이 금방 부드러워졌다.

 

그러더니 음식물이 담긴 통을 번쩍 들어올려 트럭에 실으면서 말했다.

“엄마는 집에 좀 있어. 이러고 다니면 꼭 거지 같잖아?”

“요새 거지가 어디 있냐? 이놈아.”

여자가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난 일 안 하먼 몸살이 난다. 그러니까 냅둬라.”

그때 김대성이 발을 떼면서 길게 숨을 뱉는다.

 

그것을 들은 조철봉도 심호흡을 했다. 

 

 

 

 

(2303) 새세상 -8

 

 

“괜찮을까요?”

옆으로 붙어선 강영만이 묻자 이강준은 쓴웃음을 짓고 대답한다.

“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저렇게 험악한데….”

하고 강영만이 시선을 보낸 곳은 도청 앞의 시위 현장이다.

 

거리는 1백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은 격렬했다.

죽봉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시위대는 모두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는데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경찰과 일진일퇴 공방을 벌이면서 죽봉으로 찌르고 쇠파이프를 무지막지하게 휘두른다.

 

멀리서는 엄청나게 큰 고무 새총과 보도블록을 깬 돌덩이로 엄호 사격을 쏟아붓고 있다.

 

소방차가 물을 뿌렸지만 역부족, 갑자기 함성이 일어나면서 경찰 호송버스 한 대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이건 마치 전쟁 같다.

“갑시다.”

하고 김대성이 앞장을 섰으므로 뒤를 이강준과 강영만,

 

조철봉에다 양측 수행원 대여섯명이 바짝 붙어 따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강준은 긴장한 얼굴이다.

 

이곳은 대전광역시 시청 앞, 오전 11시반이다.

 

시청 앞은 갖가지 색상과 크기의 깃발에다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로 뒤덮여 있었는데

 

‘생존권 보장’ ‘사수’ ‘차라리 죽여라’ 등의 험악한 구호가 대부분이다.

 

길가로 붙어서 다가갔지만 돌멩이가 가끔 날아왔고 물도 튀겼다.

 

그러나 이곳도 도심이어서 최루탄은 아직 사용하지 않는다.

“저런.”

하고 일행 중 누군가 소리쳤으므로 모두 머리를 들었다.

 

시위대에 포위된 경찰 10여명이 무지막지하게 구타를 당하고 있다.

 

방패로 가렸지만 몇명은 땅바닥에 뒹구는 바람에 장비를 빼앗겼다.

 

그때 함성과 함께 경찰들이 달려왔다.

 

이제는 시위대가 쫓겨갔고 뒤로 처진 몇명이 잡혀 구타를 당한다.

“저, 저.”

이제는 강영만이 치켜뜬 눈으로 앞쪽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죽봉 끝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져 있어서 찌르면 창날이나 같다.

 

시위대가 창을 겨누고 돌격해가고 있는 것이다.

 

그쪽과의 거리는 50미터 정도였으니 온갖 소음이 다 들렸다.

 

비명과 함성, 때리고 맞는 소리까지. 그때 사복 차림의 사내가 달려오며 소리쳤다.

“들어가요! 들어가!”

손에 무전기를 쥔 사내의 기세가 험악했으므로 일행은 옆쪽 편의점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더 이상 접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편의점 안에는 대피한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는데 그들을 둘러본 조철봉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쪽은 다른 세상인 것이다.

 

조철봉 바로 옆에 선 아가씨는 핸드폰을 귀에 붙이고 있었는데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어머, 어머, 정말? 그럼 걔가 또 만나자고 했단 말이야?”

그러더니 큭큭 웃기까지 했다.

“별꼴이네, 얘. 걔 정말 독특하다.”

김대성 앞에 붙어선 젊은 남녀는 애인 사이처럼 보였다.

 

여자의 허리를 감아안은 사내가 쉴 새 없이 귀에 입술을 붙이고 속닥거린다.

 

창가에 붙어선 30대 사내는 삼각김밥을 먹는 중이었고,

 

계산대에 선 알바 아가씨만 짜증난 표정으로 이쪽저쪽을 살피고 있다.

 

그때 김대성이 조철봉 옆에 붙더니 말한다.

“이제 알 것 같군요. 여기에 들어와 보니까 말입니다.”

조철봉은 시선만 준 채 가만있었고 김대성의 말이 이어졌다.

“남조선이 금방 망할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군요.”

그때 삼각김밥을 먹던 사내가 이쪽을 보았다. 김밥이 든 볼이 잔뜩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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