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56. 남북암행 (9)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3:38

856. 남북암행 (9)

 

 

(2289) 남북암행-17 

 

 

함흥식당 이층에는 특실이 있다. 장방형 테이블 한 개가 놓인 20평쯤 면적의 방인데

좌석은 10개 정도였다.

그 특실 안에 모두 여덟 명이 들어가 있다. 안쪽의 상석 중앙에 김대성이 앉았고

좌우에는 강영만과 조철봉 그리고 앞쪽에 해군 중장, 함흥시당 비서, 보위대장이

나란히 앉은 것이다.

그리고 문의 양쪽에 호위군관 둘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는데 위압적이었다.

보위대장도 그 둘한테 시선도 보내지 못한다.

자리를 잡고 앉은 지 30초쯤이나 지났지만 강영만이 입을 열지 않았으므로

함흥 사람 셋의 불안감은 짙어졌다.

그들은 아직 상석에 앉은 김대성이 누군지도 모른다.

당연히 중앙에 앉아야 할 강영만이 끝자리에 가있는 것도 아직 깨닿지 못한 것 같다.

그만큼 강영만에게 정신이 나간 것이다.

보위부 권한이 세고 대도시인 함흥의 일인자인 당비서 위세가 대단하다고 해도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다.

북한도 그렇지만 한국도 마찬가지다. 몇년 전만 해도 청와대에서 똥 푸는 사람이

지방 장관보다 더 힘이 셌다고 한다.

고금, 남북을 막론하고 통치자 주변에 있는 자가 힘이 센 것이다.

지금 강영만이 그렇다.

호위총국에서 지도자 호위를 맡으면서 만날 지도자를 만나는 위인인 것이다.

시당 서기는 물론 보위대장, 해군 중장까지 한 번도 지도자 앞에 서본 적이 없다.

그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셋은 강영만과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한다.

강영만 옆에 앉은 김대성과 조철봉이 누군지 생각할 여유도 없다.

조철봉과 김대성을 강영만의 보좌관쯤으로 넘기고 있다.

이윽고 강영만이 헛기침을 했다.

무려 1분 가깝게 시간을 죽이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놓은 것이다.

그동안 김대성과 조철봉은 이곳 저곳을 둘러볼 뿐 거들지 않았다.

김대성은 강영만의 의도를 짐작한 것 같다.

강영만 또한 김대성이 무엇을 바라는지 예민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번에 터뜨린 것도 김대성의 의중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무들, 일어서.”

하고 강영만이 말하자 셋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해군 중장도 그렇다.

강영만과 같은 계급이지만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다.

강영만이 서있는 셋을 훑어보며 말했다.

“동무들 앞에 계신 분이 지도자 동지시다. 인사를 해.”

그순간 셋의 얼굴이 순식간에 누렇게 굳어졌다.

지도자 동지 한마디가 마치 벼락을 맞은 효과를 낸 것이다.

특히 함흥시당 서기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더니 입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그대로 뒤로 넘어져 기절할 것 같았다.

조철봉은 바로 앞에 선 보위대장의 손이 벌벌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해군 중장이 먼저 인사를 한다.

그중 가장 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내다.

“위대하신 지도자 동지를 뵙게 되어 이제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기를 쓰고 있었지만 결국 마지막 몇 단어는 떨렸다.

중장이 말을 그쳤을 때 김대성은 시선을 떼었다.

그러나 답례하지 않았다.

그때 함흥시당 서기가 이어서 인사한다.

“대장군이신 지도자 동지를 위해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당서기는 연설엔 익숙한지 끝으로 갈수록 말소리가 커졌다.

그러자 보위대장이 말했다.

“천세 만세를 이어갈 지도자시여….”

보위대장의 외침이 이어지지 못했다.

김대성이 손을 들어 막았기 때문이다.

말이 끊긴 보위대장은 입도 다물지 못하고 서있다.

그때 김대성이 말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웃어요. 그런 말.” 

 

 

 

(2290) 남북암행-18 

 

 

김대성이 굳어진 얼굴로 앞에 선 셋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방 안에 다시 무거운 정적이 덮였다. 조금 전 강영만이 조성했던 것보다 더 삼엄한 분위기다.

조철봉이야 부담 없는 구경꾼 입장이었으므로 셋의 표정을 보면 드러난다.

셋의 눈동자는 모두 초점이 멀다.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손끝으로 밀면 그대로 넘어갈 것 같다.

그때 김대성이 말을 잇는다.

“인민들은 배를 곯고 하루 한 끼도 겨우 먹는 상황인데

이런 곳에서 주지육림에 싸여 생일파티를 한단 말입니까?”

한마디씩 차분하게 말했지만 당비서한테는 말끝마다 칼로 쑤시는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김대성의 시선이 보위대장과 해군 중장에게로 옮겨졌다.

“뭡니까? 권력 실세끼리 모여 이렇게 축제를 벌이고 있는 꼴을 인민들이 본다면 뭐라고 하겠소?

당과 공화국에 대한 불만이 쌓이지 않겠습니까?”

그때 해군 중장이 이를 악무는 것 같더니 김대성을 보았다.

이제는 눈의 초점이 잡혀 있다.

“지도자동지, 저는 책임을 지고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조철봉은 그가 죽으라면 당장 총으로 머리를 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때 김대성이 쓴웃음을 짓는다.

조철봉은 김대성이 갑자기 10년쯤 더 나이를 먹은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 김대성은 한 달도 안 되는 암행 기간이었지만 엄청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런 경험은 많을수록 좋다.

그때 김대성이 말했다.

“이것 보시오. 중장.”

“예. 지도자동지.”

호명이 되자 바짝 긴장한 중장이 작대기처럼 섰다.

눈은 김대성의 15도 위쪽을 겨냥하고 있다.

김대성의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내가 눈감아 줄 테니 앞으로 행동을 조심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지도자동지.”

감동한 중장이 주르르 눈물을 쏟는다.

50대 초반쯤의 중장은 잘 생겼다.

지금까지 승승장구 하다가 오늘 날벼락을 맞은 것 같다.

조철봉은 중장의 어깨가 천천히 내려가고 있는 것을 본다.

아마 20년은 감수했을 것이다.

그때 김대성의 목소리가 들렸으므로 조철봉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대좌, 동무도 마찬가지야. 허름한 옷을 입은 인민들을 하인처럼 부리면 안돼.”

“지, 지도자동지.”

대좌가 살찐 턱을 흔들면서 말까지 더듬는다.

붉어졌던 대좌의 얼굴이 다시 누렇게 굳어지더니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대좌가 결의에 찬 표정을 짓고는 김대성에게 말한다.

“충성하겠습니다. 지도자동지.”

그때 자리에서 일어선 김대성이 선언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북조선은 남조선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일해야 돼.

그러기 위해서는 당과 군, 그리고 인민들이 한마음이 되어서 움직여야 돼.”

앞에 선 셋은 얼어붙었고 어느새 강영만과 조철봉도 따라 일어나 몸을 굳히고 있다.

조철봉은 소리죽여 심호흡을 한다.

지금까지 인민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단 말인가?

조철봉이 듣기에도 새벽 별보기 운동이라고 새벽에 별이 떠있는 것을 보고

나와 밤에 별이 떠야 집에 돌아가면서까지 무지막지하게 일을 해왔다.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것이다.

그때 김대성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도 남조선의 박정희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 순간 조철봉은 소스라쳤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김대성이 원인을 아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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