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53. 남북암행 (6)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3:34

853. 남북암행 (6)

 

 

(2283) 남북암행-11 

 

 

“그 동무, 데려와요.”

막사 밖으로 나온 김대성이 불쑥 강영만에게 말했다.

 

그러자 강영만은 몸을 돌려 김복산을 본다.

“데려와.”

“예? 예.”

엉겁결에 대답한 김복산의 시선이 김대성을 스치고 지나갔다.

 

직접 막사 안으로 들어간 김복산이 조금 전의 사내를 데리고 나온 것은 30초도 안 돼서였다.

 

사내를 김대성 앞에 세워놓은 김복산이 강영만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데려왔습니다.”

김대성에게 보고하기에는 아직 미심쩍고 수상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그때 김대성이 이번에는 김복산에게 직접 말한다.

“이 동무의 여동생이 있는 곳으로 갑시다.”

그래놓고 김대성이 내쏘듯 말을 이었다.

“난 김대성이오.”

“윽.”

5미터쯤 떨어져 서있던 조철봉은 김복산의 딱 다문 입안에서 터진 신음 같은 외침을 듣는다.

 

마치 배를 강타당해서 뱉어진 신음 같았지만 표정은 더 처절했다.

 

두 눈을 치켜뜨고 김대성을 보았는데 눈의 초점이 없다.

 

정신이 나간 것 같다. 김복산은 김대성을 아는 것이다.

 

아니, 이름만을 들었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 될 것이다.

 

위원장의 후계자이며 이제는 지도자로 불리는 새로운 통치자,

 

그 통치자가 바로 눈앞에 서있다.

“뭘 해?”

하고 김복산의 정신이 들도록 꾸짖은 사람은 강영만이다.

 

그 순간 김복산은 벼락 맞고 깨어난 사람처럼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뒤쪽에 선 부하들에게 허청대며 달려가더니 시끄럽게 묻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다시 비틀거리며 다가와 섰다.

“예, 이쪽으로. 제가 안내를….”

김복산이 앞장을 섰고 일행은 뒤를 따른다.

 

짙은 어둠 속이다.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데다 이곳은 밤에 아예 불을 켜지 않는 것 같다.

 

그때 김대성이 김복산의 뒤에 대고 말한다.

“꾸미지 말고 그대로 보여주시오.”

“에엣.”

앞에다 대고 대답한 김복산이 옆으로 비켜서더니 손짓으로 부하 하나를 부른다.

 

물론 앞장서 걸으면서다. 부하에게 재빠르게 지시를 내리자 또 달려나간다.

 

이윽고 그들 일행이 도착한 곳은 골짜기 안쪽의 가파른 비탈 앞이다.

 

그동안 막사 20여 개를 지났고 그 옆쪽으로 돌로 뼈대를 세운 위에 거적만 덮은 거처

 

수백개를 지났는데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의 흔적은 풍기는 냄새로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모두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밤에 수십명이 교화소를 휘젓고 다니는 터라

 

겁에 질려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곳입니다.”

이윽고 김복산이 걸음을 멈추고 말한 곳은 가파른 벼랑 앞이었다.

 

병사 두 명이 서 있었는데 그 앞쪽의 땅이 조금 봉긋했다.

 

그러자 강영만이 벼랑을 노려보며 묻는다.

“어디 있다는 거야?”

그러자 김복산이 앞쪽 병사에게 말했다.

“데리고 나와.”

그러자 병사 하나가 갑자기 땅속으로 몸이 쑥 빠진 것처럼 보였다.

 

강영만이 플래시로 그쪽을 비추자 이유가 드러났다.

 

땅을 파고 거처를 만든 것이다.

 

땅바닥과 평평하게 나무판자와 비닐 조각을 덮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구별하지 못했다.

 

곧 병사와 함께 사람 하나가 땅에서 솟아나왔다.

 

플래시 불빛에 비친 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넝마를 걸친 짐승이었다.

 

원숭이도 이보다는 깔끔할 것이다. 

 

 

 

(2284) 남북암행-12 

 

 

플래시 불빛을 세 곳에서 받은 그 짐승은 여자였다.

눈이 부신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지만 긴 머리를 뒤로 묶어 올렸고

앙상한 목은 울대가 없이 미끈했으며 헐렁한 넝마가 늘어져서 몸이 더 가늘게 보였다.

그때 조철봉의 뒤쪽에서 짧은 흐느낌 소리가 일어났다.

그러더니 외마디 외침이 들린다.

“미순아!”

막사에서 데리고 나온 사내다.

그러자 여자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뼈와 가죽만 남은 얼굴이어서 크게 뜬 눈이 주먹만 했다.

여자의 벌린 입에서도 외침이 터졌다.

“오빠?”

“그래, 나다. 미순아.”

모두 가만히 서 있다.

김대성도 플래시 빛에 드러난 여자를 응시한 채 입을 꾹 다물었고 강영만도, 김복산도,

따라온 호위군관들, 경비병들, 조철봉까지 숨을 죽이고 있다.

그때 사내가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 여자에게 달려간다.

“미순아!”

사내가 여자를 감싸 안았을 때 둘 다 기운이 없는 상태여서 부둥켜안은 채 넘어졌다.

“우지직!”

그때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둘의 몸이 땅 위에서 사라졌다.

덮인 비닐과 판자 지붕을 부수고 밑으로 추락한 것이다.

경비병들이 달려들어 두 남매를 꺼낸 것은 잠시 후였다.

두 남매는 다치지는 않았지만 기력이 없어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그때 김대성이 강영만에게 말한다.

“둘을 데리고 나갑시다.”

“예, 김 선생님.”

대번에 대답한 강영만이 머리를 돌려 김복산을 본다.

“얼른 둘 씻기고 갈아입혀.”

“예, 중장 동지.”

김복산이 어깨를 펴고 열성적으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시킬 것이 또 있느냐는 표정으로 김대성을 보았다.

이미 그때는 김대성이 몸을 돌린 후여서 실망한 김복산은 저절로 어깨를 늘어뜨린다.

다시 차를 세워 놓은 본관 건물을 향해 걷던 김대성이 옆을 잠자코 따르는 조철봉에게 묻는다.

“남조선에도 이런 교화소가 있습니까?”

“교도소가 있지요.”

앞쪽을 향한 채 조철봉이 대답했다. 교도소는 많다.

그러나 이렇지는 않다. 조철봉이 옆쪽 볼에 김대성의 시선을 느꼈지만 어금니를 문 채로

입을 열지 않는다.

김대성은 지금 뭔가 위로가 되는 말을 듣고 싶을 것이다.

남조선 교도소도 지독하다는 말 정도가 딱 어울린다.

그러나 그렇게는 못하겠다.

마침내 김대성이 다시 묻는다.

“남조선에서도 아비가 간첩이면 가족도 불이익을 당하겠지요?”

그러더니 덧붙였다.

“물론 심하거나 가벼운 차이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렇겠지요.”

갑자기 안쓰러운 심정이 된 조철봉이 동의했다.

막사에 들어갔을 때부터 무럭무럭 화가 솟아오르고 있었지만

김대성의 반응을 보고 나서 조금씩 가라앉는 중이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불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부모가 간첩으로 잡혔는데 사관학교에 입학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 그런 맥락 아닌가?

이해해 주기로 하자. 김대성이 한 짓도 아니지 않은가?

그때 강영만이 옆으로 다가와 묻는다.

“저녁 식사도 아직 안 하셨는데, 여기서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김대성이 머리를 저었다. 밥맛이 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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