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55. 남북암행 (8)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3:36

855. 남북암행 (8)

 

 

(2287) 남북암행-15 

 

 

김대성은 교화소에서 빼낸 남매한테 거금을 쥐어준 후에 호위군관까지 붙여

탈북시켜 주는 성품이다.

그것만 보면 안하무인이며 독선, 독재의 자질이 보인다고도 하겠지만 옆에서 겪어 본

조철봉의 생각은 달랐다.

자상했고 남을 배려했으며 의견을 잘 들었다.

정반대의 기질을 다 품고 있었지만 모두 꾸민 것 같지가 않다.

조철봉은 시간이 지날수록 김대성의 성품에 대한 호감이 짙어졌다.

하긴 보통 사람인 조철봉에게 그것은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인간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상대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적의를 품지 않는다.

목숨이 걸렸거나 큰 이해가 따른다면 제대로 정신이 돌아오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놔두는 경향이 있다.

조철봉의 김대성에 대한 애착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정권의 후계자가 아닌가?

조철봉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기대도 큰 상황이다.

조철봉을 이용하여 경색된 남북관계를 해결해 왔지 않은가?

암행시찰단이 함흥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이다.

오늘 저녁은 시내 식당에서 먹기로 했으므로 일행 모두의 표정이 밝다.

식당 앞에 차를 세워놓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김대성이 조철봉에게 말했다.

“이곳이 함흥에서 제일 크고 맛있는 식당이라는데 어디 봅시다.”

김대성은 들뜬 표정이다.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겠습니다.”

강영만의 지시로 시찰단은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이름은 함흥식당이었는데 홀이 어지간한 체육관만 했다.

30여명 가까운 일행이 들어섰는데도 좌석의 5분의 1도 채우지 못한 것 같다.

마침 무슨 행사가 있는지 식당 안에는 인민복 차림의 손님들이 70∼80명 모여 있었는데

이미 술기운이 번져서 떠들썩했다.

원탁에 앉은 강영만의 옆으로 군관 하나가 다가와 귓속말을 하고 돌아갔다.

시찰단은 모두 사복 차림인 데다 오랜 벽지 여행길이어서 후줄근했다.

김대성도 마찬가지였으니 군관들은 오죽 했겠는가?

꼭 시찰 중에 만난 장터 사람들 행색이다.

그래서 일행이 몰려 들어왔을 때부터 번지르르한 인민복 차림의 손님들은 눈치를 주고 있었다.

모두 간부 당원이 분명했고 안쪽에는 보위부 군관들이 10여명이나 모여 앉았다.

강영만이 목소리를 낮추고 김대성에게 말한다.

“함흥시 당서기의 생일 잔치를 하고 있다는군요.”

주위를 둘러본 강영만이 말을 잇는다.

“저기 안쪽 테이블에 앉은 뚱뚱한 놈이 당서기 오봉철이라고 합니다.”

조철봉이 먼저 머리를 돌려 그쪽을 보았다.

인민복 차림의 사내가 술잔을 들면서 커다랗게 웃는다.

주위에는 중장 계급장을 붙인 장군도 앉았고 말끔한 양복쟁이도 셋이나 둘러앉았다.

강영만이 눈짓을 하자 추레한 차림의 군관이 다가왔다.

둘이 잠깐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더니 다시 군관이 물러갔다.

그러자 강영만이 말을 잇는다.

“오봉철 옆에 앉은 중장은 동해함대사령부 참모장 백철 중장입니다.

양복쟁이들은 조총련에서 온 간부들이라는군요.”

그러자 시킨 음식이 나왔으므로 주의가 돌려졌고 분위기도 바뀌었다.

김대성이 앉은 원탁은 커서 김대성과 조철봉, 강영만 외에 간부급 군관 넷까지

일곱이 앉았는데 곧 단고기 수육이니 냉면, 한정식 찬에다 오늘의 특별 요리라는

상어 고기가 두 접시나 날라져 왔다.

미리 군관을 보내 중국 돈으로 결제를 했기 때문에 지배인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때 그들의 원탁으로 보위부 군관 둘이 다가왔다. 

 

 

 

(2288) 남북암행-16 

 

 

“동무들, 어디서 왔어?”

대위 계급장을 붙인 군관이 눈을 치켜뜨고 묻는다.

 

국가안전보위부는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반당, 반국가 사범의 색출에서부터 방첩, 국경경비까지 맡으며 인민군 내부의 감시도 한다.

 

보위부 구성원은 군인이며 지도자의 직접 지시를 받는 기관이니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보위부 대위의 험악한 표정을 보고도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 중

 

아무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테이블을 둘러본 대위가 어깨를 부풀렸다가 내리면서 숨을 내품었다.

 

그러고는 먼저 옆에 선 상위를 보았다.

 

상위 계급장을 붙인 군관은 제가 오히려 민망한지 외면했다.

 

그때 대위가 악문 잇사이로 묻는다.

“이봐, 내 말 안 들려?”

안쪽 테이블에는 대좌 계급장을 붙인 보위부 장령급이 앉아 있었는데

 

함흥지역 보위부대장쯤은 될 것이다.

 

그 대좌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그때 원탁 끝쪽에 앉은 호위대 군관이 말했다.

 

물론 그는 다 구겨진 점퍼 차림이다.

“동무는 어디 보위부에 있나?”

불쑥 군관이 묻자 대위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게졌다.

“뭐이?”

대위가 호위군관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손을 허리에 찬 권총에 얹는다.

“이 간나 새끼들 좀 보게. 나, 이거 참, 기가 막혀서.”

그때 강영만이 머리를 들고 대위에게 말한다.

“야, 이 개새끼야. 너, 이리 좀 와봐.”

그러자 강영만에게 머리를 돌린 대위의 얼굴이 이번에는 하얗게 굳어졌다.

 

눈을 부릅뜨고는 있었지만 입도 벌리지 않는다.

 

대신 입술 끝이 벌벌벌 떨리고 있다. 머리가 복잡해진 때문이다.

 

그것을 본 강영만이 옆에 놓인 냉면 그릇을 들어 대위의 얼굴을 향해 뿌렸다.

“어엇!”

옆쪽 테이블에서 외침 소리가 일어나더니 인민복 차림의 사내들이 일어났다.

 

대위의 얼굴과 상의에 냉면 가닥이 잔뜩 걸렸고 옷은 다 젖었다.

 

그때 강영만이 말했다.

“식당 문 닫아라!”

그러자 호위군관들이 뛰쳐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선 강영만이 안쪽에 앉아있는 보위대 대좌를 손을 까닥여 부른다.

“너, 이리 좀 오라우.”

동무도 아니고 너다.

 

그것을 본 대좌가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3초쯤 망설였다.

 

대위가 냉면을 뒤집어쓴 것부터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안쪽의 극빈 테이블도 조용해졌고 함흥시당 서기도 이쪽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거대한 식당 안의 소음이 뚝 끊겼다.

 

문도 안쪽에서 닫혔고 호위대원 여섯이 세 개의 문을 양쪽에서 막아섰다.

 

그때 강영만의 목소리가 식당을 울렸다.

“시당 비서, 보위대장, 그리고 거기 해군 중장, 모두 이쪽으로 오라우.”

강영만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본인은 호위총국 감찰단장 강영만 중장이다.

 

반항하는 놈은 현장에서 사살할 권한이 있다. 날래 오지 못하겠나?”

와락 끝말을 높이자 시당 서기가 뒤뚱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보위대장 대좌도 뛴다.

 

해군 중장도 마지막에 따라 뛰었다. 곧 셋이 강영만 앞에 나란히 섰는데

 

시당 서기와 보위대장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러자 한걸음 다가선 강영만이 손을 휘둘러 보위대장의 귀뺨을 쳤다.

 

뺨을 치는 소리가 식당을 울렸고 모두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때 여전히 테이블에 앉아 단고기 수육을 씹던 김대성이 조철봉을 향해 쓴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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