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52. 남북암행 (5)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3:32

852. 남북암행 (5)

 

(2281) 남북암행-9 

 

 

제68 교화소장 겸 경비부대장 김복산 대좌는 강영만을 알아보았다.

전조등 빛에 비친 강영만의 얼굴을 보더니 그야말로 대경실색을 했다.

호위총국은 편제상 인민무력부 산하기관이지만 실제는 독립기관이며

지도자의 경호부대 역할을 한다.

호위총국 장군은 지도자의 최측근들로 구성되며 군의 핵심 세력인 것이다.

김복산이 호위총국 실세 장군을 모른다면 인민군 고급 장교가 아니다.

“중장동지, 웬일이십니까?”

부동자세로 경례를 한 김복산의 목소리가 떨렸다.

김복산은 강영만 옆쪽에 선 김대성에게 시선도 주지 않는다.

어깨를 편 강영만이 먼저 물었다.

“아까, 그, 상위놈은 오데 갔나? 나한테 배를 차였는데.”

“예, 그놈은 지금.”

말을 그친 김복산이 잠깐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하더니 턱을 들고 결연한 표정을 짓는다.

분위기를 짐작한 것이다.

“잡아 엄벌에 처하겠습니다. 중장 동지.”

“아냐, 그놈을 호위총국으로 보내라우.”

놀란 듯 눈을 크게 뜬 김복산에게 강영만이 말을 잇는다.

“내가 홧김에 발길질을 했지만 직무에 충실한 동무다. 호위총국의 군관감이다.”

“영광입니다. 중장동지.”

제가 칭찬을 받은 것처럼 김복산이 어깨를 펴고 기운차게 대답한다.

그때 강영만이 말했다.

“지금 교화소를 시찰할 테니 안내하라.”

“예, 중장동지.”

누구 말이라고 거부하겠는가?

그 즉시로 차량 대열은 교화소를 향해 어둠속을 전진했다.

앞장선 교화소장 김복산 대좌의 안내를 받으며 골짜기의 요새같은

교화소 정문을 통과할 때 김대성이 옆에 앉은 조철봉에게 말한다.

“북조선에 이런 곳도 있었군요. 저도 말만 들었습니다.”

긴장한 조철봉은 대답도 하지 못한다.

이곳이 탈북자들이 증언한 정치범수용소인 것이다.

수용소 안은 어둡다.

차량 대열이 멈춘 2층 건물도 아래층에 희미하게 불이 켜져 있을 뿐이다.

차에서 내린 그들 앞으로 김복산이 다가와 섰다.

 

“사무실로 들어가시지요.”

“아니, 우린 수용소를 둘러보겠어.”

이미 김대성과 말을 맞춘 강영만이 말을 자르더니 턱으로 어둠에 덮인 앞쪽을 가리켰다.

“안내하라우. 수용자 상태를 보자.”

김복산이 잠자코 앞장을 선다.

주위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었지만 이제는 조철봉의 눈에도 사물의 윤곽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비스듬히 경사진 골짜기 안에 10여개의 단층 막사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는데

불빛 한점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소리도 없다. 너무 조용해서 귀울림 소리만 들릴 뿐이다.

강영만이 멈춰선 곳도 첫번째 막사 앞이다.

문 앞에 서있던 경비병에게 김복산이 말했다.

 

“문을 열라우.”

그러자 경비병이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문에서 5m쯤이나 떨어져 서있던 조철봉은 코를 후벼 파는 듯한 악취를 맡는다.

온갖 냄새가 뒤섞인 데다 습기까지 얹혀서 구역질이 나려고 했으므로 조철봉은 이를 악물었다.

그때 옆에 서있던 김대성이 앞으로 나섰으므로 강영만이 서둘러 앞장을 섰다.

김대성은 강영만의 수행원처럼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막사 안으로 들어섰을 때 경비병들이 플래시를 비췄다.

그러자 불빛을 받은 수용자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모두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모두 말랐고 허름한 옷을 걸쳤다.

코를 찌르는 악취는 조금 가셨지만 분위기가 숨이 막힐 것 같다. 

 

 

 

(2282) 남북암행-10 

 

 

그때 김대성이 병사가 쥔 플래시를 빼앗아 들더니 옆쪽을 비췄다.

그러자 가죽만 남은 얼굴이 드러났는데 조철봉이 보기에는 노인 같았다.

빛에 눈이 부신 사내가 손으로 눈을 가리자 뼈가 돌출된 팔이 보였다.

“동무는 여기에 왜 들어온 거요?”

김대성이 묻자 조철봉의 옆쪽에 선 교화소장 김복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사내가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제 아비가 반당행위를 했습니다.”

“언제?”

김대성이 다그치듯 묻자 사내의 눈이 더 커졌다.

그러나 대답은 한다.

“10년 되었습니다.”

“동무 나이가 몇인데?”

“예, 스물일곱입니다.”

놀란 조철봉이 숨을 삼켰다.

사내는 그보다 30년은 더 나이 먹어 보였던 것이다.

그때 김복산이 김대성에게 말했다.

“동무는 가만 계시오.”

김복산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말해 놓고 강영만에게 머리를 돌리더니 말을 잇는 것이 그 증거였다.

“이 동무는 누굽니까? 중장 동지가 계신데, 감히.”

“동무는 닥치고 있어.”

강영만이 짧게 한마디 하자 김복산은 즉시 입을 딱 다물었다.

그때 김대성이 사내에게 다시 묻는다.

“그럼 동무 혼자 여기로 잡혀 온 거야?”

“아닙니다. 오마니하고 여동생 둘까지 다 잡혀 왔습니다.”

사내가 이제는 꾸물거리고 침상에서 일어나더니 부동자세로 섰다.

막사 내부는 통로 좌우에 마룻바닥이 깔린 구조였지만 가구는 없다.

다시 더운 악취가 덮쳐 왔으므로 조철봉은 숨을 참았다.

이제 플래시 불빛이 아니더라도 좌우 마룻바닥에 앉은 사내들의 모습이 다 드러났다.

막사 안에 어림잡아 100명도 더 넘게 수용된 것 같다.

막사 안은 아직도 조용했고 기침 소리도 나지 않는다.

김대성이 사내를 똑바로 보았다.

“그럼, 이곳에 어머니하고 두 여동생이 같이 있나?”

그 순간 조철봉은 사내의 눈이 갑자기 번들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닙니다.”

사내가 억양 없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시선을 내렸다.

김대성이 또 물었다.

“그럼 석방되었나?”

“여동생 하나만 남았습니다.”

막사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덮여졌고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오마니는 6년 전에, 둘째 여동생은 작년에 죽었습니다.”

“……”

“지금 막내 여동생하고 저만 남았습니다.”

“왜 죽었는데?”

그때 사내가 번쩍 머리를 든다.

조철봉은 사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를 기대했지만 멀쩡하다.

눈물이 없어진 것 같다.

“예, 굶어 죽었습니다.”

그때 김복산이 낮게 헛기침을 했다가 옆에 선 강영만이

조금 크게 헛기침을 하자 놀라 몸을 굳힌다.

그때 김대성이 다시 묻는다.

“동무는 뭐하다가 끌려왔어?”

“예, 청진 고등학교 다니다가 왔습니다.”

“지금 살아 있다는 막내 여동생은?”

“예, 인민학교 2학년이었습네다. 지금은 열여덟살이 되었을 것입네다.”

그때 김대성이 휙 몸을 돌렸으므로 조금 뒤쪽에 서 있던 조철봉과 어깨가 부딪쳤다.

그 순간 조철봉은 김대성의 눈이 번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앞장서 막사 밖으로 나가는 김대성의 뒤를 강영만이 서둘러 따랐고 모두 뒤를 잇는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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