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51. 남북암행 (4)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3:31

851. 남북암행 (4)

 

(2279) 남북암행-7

 

 

다음 날 일행은 양강도의 갑산 근처까지 하행한 후에 길가에 차를 세우고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고 난 김대성이 한숨 자고 떠나자면서 차 안에 눕는 바람에 일행은

꽤 긴 휴식시간을 갖게 되었다.

산비탈의 돌무더기 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조철봉에게 강영만이 다가왔다.

“담배 한 대 주시오.”

강영만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조철봉은 오해하지 않을 만큼은 익숙해졌다.

조철봉이 내민 한국산 담배를 힐끗 바라본 강영만이 한 개비를 빼내어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일회용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인다.

“그 에미나이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요.”

깊게 빨아들인 연기를 분무기처럼 내뿜으면서 강영만이 말했다.

“북남 화해가 되고 평화 공존이 되면 우리 같은 군인은 쓸모가 없어지지 않갔소?

우린 남조선 괴뢰를 때려잡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거든.”

외면한 채 강영만이 말을 잇는다.

“우린 군 복무를 10년 가깝게 합네다.

남조선처럼 2년 놀고 나가는 게 아니라요.

우리는 싸우는 일 외에는 배운 것이 없습네다.”

쓴웃음을 지은 강영만이 다시 담배연기를 산소를 빨아들이는 환자처럼 폐에 가득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연기와 함께 말을 뱉는다.

“정규 인민군이 1백만, 전투 동원 대상인 교도대가 1백50만, 노동적위대 4백만,

인민경비대 10만, 그리고 고등학교 군사조직인 붉은청년근위대가 90만,

이 중에서 군대밥 먹는 숫자가 2백50만이 넘는단 말이오.”

강영만의 말끝이 떨린다. 과연 군사 대국이다.

2천5백만을 인구로 잡고 14세에서 60세까지 인구의 약 30%인 6백50만을

동원 대상으로 삼는다는 이야기를 조철봉도 들은 적이 있다.

조철봉이 머리를 들고 강영만을 보았다.

“외람되지만 내가 보기에는 숫자가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도자가 결심만 한다면 모두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내 일은 아니다. 어떻게 줄이고,

군대의 불만을 해소시킬지는 일을 벌인 주역들이 처리해야 할 것이다.

세상에, 인구의 30%를 군대로 만들어 놓다니.

도대체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자위 수단이라고도 하는데 한국이 북침한단 말인가?

 군대 갔다 온 한국사람 1만명을 잡고 물어보면 99퍼센트가 미쳤다고 할 것이다.

지금 남북한 평화 공존에 애물단지가 되어있는 북한의 거대군 집단에 대해서는

북한 정권이 해결해야 한다.

그때 강영만이 말했다.

“이번에 지도자 동지가 큰 교훈을 얻으셨을 것 같습니다.”

힐끗 뒤쪽의 승합차에 시선을 주었던 강영만이 길게 숨을 뱉는다.

“어젯밤 그 에미나이들이 한 말이 바로 민심이지요.

지도자는 민심을 알고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조철봉이 잠자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나 남북한 문제에 깊게 파고들수록 점점 더 자신감이 사라져간다.

뒤엉킨 이해관계는 물론이고 기득권 세력의 반발도 걸림돌이 되어 있는데다

양측 정권의 위상 또한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기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난세에 영웅이 태어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분명히 난세 맞지요?”

강영만이 대답하지 않았지만 조철봉은 말을 잇는다.

“영웅이 나타나겠지요.” 

 

 

 

(2280) 남북암행-8 

 

 

산길을 달리던 차량 대열이 멈춰 섰을 때는 저녁 7시쯤이었다.

산악지대여서 주위는 이미 어둡다.

일차선 도로 주변의 공터를 찾다가 선두차는 국도를 벗어나 10여킬로쯤 샛길로 달려온것 같다.

이곳은 김형권군 남쪽 지역으로 부전고원을 향해 달리던 중이었다.

“뭬야?”

얼른 야영지를 잡고 김대성을 쉬게 할 생각뿐인 강영만이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을 때

조철봉은 앞쪽 길가에서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았다.

군인이다. 군인들이 선두 차량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뒤쪽 트럭에서 뛰어내린 호위군관들이 앞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때 김대성이 엉덩이를 들면서 조철봉에게 말한다.

“내려서 맑은 공기 좀 마시자구요.”

북한은 공기가 맑다. 첫째 차량 매연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영토는 남한보다 큰 데도 인구는 절반이다.

벌거숭이 산이 남한처럼 울창한 숲으로 변해진다면 전국이 천하 명승지가 될 것이었다.

밖으로 나온 김대성이 심호흡을 서너번 하면서 앞쪽으로 다가간다.

뒤를 강영만과 조철봉이 따랐는데 앞쪽에서는 다투고 있다.

이런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긴장한 강영만이 서둘러 앞으로 나아갔고 호위군관들은 다 나왔다.

“호위총국 군관이라고 해도 안됩니다.”

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어둠 속이어서 누가 그랬는지 보이지 않는다.

김대성이 둘러선 대원들을 헤치고 나와 앞을 보았다.

선두차의 전조등 빛에 대여섯명의 인민군복 차림의 병사가 보였다.

그중 지휘자는 상위 계급장을 붙인 군관이다.

그 상위가 다시 소리쳤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습니다. 돌아가시오.”

“야, 이새끼야.”

하고 강영만이 다가갔으므로 군관의 시선이 이쪽으로 돌려졌다.

그러나 치켜뜬 눈이 매섭다.

군관이 어깨를 펴고 묻는다.

“동무는 누구시오?”

“네 부대장이 누구냐?”

강영만이 소리치듯 묻자 군관이 눈도 깜박이지 않고 대답했다.

“김복산 대좌 동지시오.”

“난 호위총국 소속의 강영만 중장이다. 당장 네 부대장을 데려와.”

그러더니 강영만이 발길로 군관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이 개새끼, 교화소에 있는 놈들은 군기가 빠졌어.”

그때 김대성이 강영만에게 묻는다.

“이곳에 교화소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허리를 편 강영만이 대답했다.

“우리가 샛길로 잘못 들어온 것 같습니다.”

“잘되었군.”

배를 차여 겨우 일어나는 군관을 내려다보면서 김대성이 말했다.

“오늘은 교화소 시찰을 합시다.”

허리를 굽힌 군관을 양쪽에서 호위대원들이 끌고 앞쪽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기가 질린 병사들을 양떼 몰듯이 하면서 호위대원들이 뒤를 따른다.

“김 선생님, 교화소 시찰은 보류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김대성 앞으로 바짝 다가선 강영만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지만 옆에 선 조철봉은 다 들었다.

 

강영만이 말을 잇는다.

“이곳은 반당 반혁명 분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럼 정치범 수용소군.”

태연하게 말한 김대성이 묻는다.

“몇명이나 수용되어 있습니까?”

“이곳에는 1만명 정도됩니다.”

“시찰하겠습니다.”

자르듯 말한 김대성이 팔짱을 끼었을 때 앞쪽에서 차량 엔진음이 울렸다.

 

교화소 경비부대장이 나타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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