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0. 남북암행 (3)
(2277) 남북암행-5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그렇다면 20대로 얼굴이 반반한 여자 중에서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여자 비율이 더 높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이지만 둘중 하나쯤 될 겁니다. 50퍼센트죠.”
이제 김대성은 조철봉의 이야기에 끌려든 듯 눈동자의 초점이 모아졌고
강영만의 표정도 편해졌다.
조철봉의 목소리가 방안을 울린다.
“그 후부터는 20대의 예쁜 아가씨만 보면 가게에 나가는 아가씨같이 보였다니까요.”
물론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김대성의 상심을 달래주려는 것이었다.
유흥업에 종사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기도 했다.
그때 문밖에서 사내 소리가 들리더니 곧 방문이 열리면서 여자들부터 들어왔다.
세 명. 뒤따라 들어선 사내가 떠들썩한 목소리로 말한다.
“찾는 손님이 많아서 서둘러 빼왔습니다.”
조철봉은 앞에 서있는 세 여자를 보았다.
싸구려 양장에 어설픈 화장을 해서 꼭 서커스단 배우처럼 보였지만
잔뜩 긴장하고 서있었으므로 감히 웃지도 못하겠다.
셋 모두 30대 중반의 아줌마들이다.
소리 죽여 숨을 뱉은 조철봉이 힐끗 김대성의 눈치를 보고 나서 사내에게 말했다.
“자리에 앉으라고 하세요.”
그러자 살았다는 표정이 된 사내가 여자들을 자리에 앉힌다.
예상했던 대로 그중 가장 나은 여자가 김대성의 옆으로 배정되었다.
사내는 조철봉을 제일 하수로 보았는지 파트너가 된 여자는 가장 못생겼다.
한국에서 이런 여자가 옆에 앉는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었다.
그러나 조철봉은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김대성도 옆에 앉은 여자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여전히 굳은 표정이다.
사내가 물러갔을 때 조철봉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서야 할 강영만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자, 인사들 하라고.”
떠들썩한 목소리로 조철봉이 말하자 먼저 옆에 앉은 파트너가 일어서서 인사를 한다.
안금심, 양명자, 한숙희. 여자들의 이름이다.
그때 김대성이 제 파트너인 한숙희에게 묻는다.
“거긴 몇살이야?”
그러자 한숙희가 환하게 웃는다.
조철봉의 짐작으로는 최소한 서른다섯이다.
그때 한숙희가 말했다
“스물아홉입니다.”
“집이 어딘데?”
“강 건너 보천군에 삽니다.”
“으음.”
헛기침을 한 김대성이 생각난 듯 묻는다.
“돈 벌어서 뭐 할 거야?”
“중국으로 건너와 장사나 하지요.”
마침 주인여자가 소주 여섯병에다 과자 안주를 들고 들어왔다.
서비스라면서 중국산 캔 맥주도 열개 가져왔다.
술잔에 술을 따르면서 한숙희가 말을 잇는다.
“돈 모아서 국경 근처에서 가라오케 사업이나 하면
매일 이 밥에 고깃국 먹는 건 물론이고 자가용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김대성을 향해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참 우습지도 않죠.
제가 강을 건너기 전만 해도 제 꿈은 이 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는 것이었다고요.”
김대성은 물론이고 남자들은 입을 다물었고 한숙희의 말이 이어졌다.
“이렇게 중국땅에 와보면 돈 버는 방법이 생각난다고요.
우리 조선인들은 중국놈들보다 돈 버는 수단이 나은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한숙희는 남자들이 조선족 동포인 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맞장구를 기다린다.
(2278) 남북암행-6
소주 여섯병을 다 비우고 다시 여섯병을 시켰을 때는 술좌석의 분위기가 제법 떠들썩해졌다.
주로 여자들이 떠들었지만 조철봉이 분위기를 이끈 덕분에 김대성도 가끔 웃는다.
여자들은 이제 그들이 옌지에서 사업을 하는 조선족으로 김대성이 젊은 사장이고
강영만과 조철봉은 중역쯤으로 안다.
그때 김대성이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여자들에게 묻는다.
“북조선이 못살게 된 건 무엇 때문이야? 미제 때문인가? 아니면 지도자 때문이야?”
순간 강영만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지만 여자들은 눈치 채지 못한다.
조철봉도 숨을 죽였다.
그때 가장 말이 많은 한숙희가 나섰다.
“미제 때문에 북조선이 못살게 되었다는 건 중국 오가는 인민들은 다 안 믿습니다.
아마 선생님들도 그러실 걸요?”
방안이 조용해졌고 한숙희의 말이 이어졌다.
“장군님 때문에 이렇게 된 것도 아닙니다.
다 밑에 있는 놈들이 제 권력을 놓치기 싫어서 개방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요.”
그러자 강영만의 파트너가 굵은 목소리로 거들었다.
“특히 인민군 놈들이 개방을 반대한단 말입니다.
그놈들은 북남간 평화롭게 지내는 것도 반대하는 놈들이야요.”
“맞아.”
하고 조철봉의 파트너까지 가세를 하는 바람에 방안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강영만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오장이 뒤틀리고 있을 것이었다.
그때 김대성이 다시 묻는다.
“장군이 권력을 놓치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내 생각에는 그럴 것 같은데 말야.”
“아닙니다.”
정색한 강영만의 파트너 양명자가 말했다.
머리까지 저은 양명자가 말을 잇는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장군님은 오직 인민 걱정뿐입니다.”
“하지만 소문으로는 아들한테 지도자 자리를 넘겨 주었다던데.”
김대성이 끈질기게 말을 이었으므로 강영만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
눈을 치켜뜬 강영만은 숨도 쉬는 것 같지가 않다.
그때 조철봉의 파트너 안금심이 말했다.
“그것은 할 수 없시요.
그럼 누구한테 넘겨줍니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북조선은 금방 뒤집힙니다.
2대에 걸쳐 이룬 기반이 넘어가 버린단 말입니다.”
조철봉은 소리죽여 숨을 뱉는다.
가장 간단한 이유인 것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이유였다.
가장 밑바닥의 북한 인민들이 금방 짚어내는 이유가 맞을지도 모른다.
조철봉은 머리를 들고 김대성을 보았다.
소주잔을 든 김대성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물론 인민들의 생각이 다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세 여자를 만난 것은 다행이었다.
아직까지 장군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은 인민들도 많다는 증거였다.
김대성은 자신감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조철봉은 그것이 남북간 평화공존에 도움이 될 자신감이기를 바랐다.
그때 다시 김대성이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이만 갈까요?”
강영만을 향해 김대성이 말을 잇는다.
“강 선생이 이 동무들한테 1천원씩 주시오.
오늘밤에 시간이 없어서 못놀았지만 말입니다.”
“예, 김 선생.”
정색한 강영만이 대답하고 지갑을 꺼내 들었으므로 방안은 조용해졌다.
그때 조철봉이 분위기를 살리려는 듯 말한다.
“하지만 다음에 만났을 땐 공짜로 줘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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