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8. 남북암행 (1)
(2273) 남북암행-1
집 안에는 여자가 남았다.
자세하게 말하면 남자 둘은 경호대원에게 끌려 나갔고 집 안에는 여자와 김대성
그리고 조철봉과 강영만 넷이 둘러서 있다.
여자의 정면에 서 있는 사람은 김대성이다. 주위는 어둡다.
그러나 하늘엔 반달이 환하게 비치고 있고 별도 또렷하게 대롱거리고 있다.
여자의 얼굴 윤곽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5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남루한 옷차림에 머리도 뒤로 묶은 용모였지만 김대성을 바라보는 눈빛이 강하다.
여자는 이쪽을 호위총국 사람들로 안다.
보위대원 둘을 끌고 나갈 적에 경호대원들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김대성이 먼저 입을 연다.
“동무, 우리가 우연히 말 듣고 들어온 것인데 보위대가 더 이상 동무를 괴롭히지 않을 거요.
그 대신 나한테 솔직하게 말을 해주시오.”
김대성이 차분하고 성의 있는 표정을 짓고 말을 잇는다.
“우리가 잘못한 점이 있으면 뜯어고치려고 합니다.
인민을 잘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동무의 말도 참고가 될 것이니 솔직하게 말을 해주시라우요.”
그러고는 덧붙인다.
“무슨 말을 하건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인민들의 말을 들으려고 왔으니까요.”
그러자 여자가 머리를 돌려 주위에 선 조철봉과 강영만까지를 보았다.
그러더니 어깨를 부풀리고 말한다.
“중국을 맘대로 오갈 수 있게만 해주어도 굶지는 않을 겁니다.
장사를 해도 우리가 중국 사람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자신이 있거든요.”
그러더니 땅바닥이 내려앉을 만큼 세고 길게 숨을 뱉는다.
“중국 공장에서 일할 수도 있고 하다못해 농가 일을 거들어주고
돈 대신 양곡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우리도 돈 모아서 공장 세우고 물건을 중국에 파는 겁니다.
당에서 왜 그렇게 못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고는 여자가 원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김대성을 본다.
“우리도 인민들이 돈 모아서 공장 만들게 해줘야 합네다.
내가 아는 조선족은 남한에 가서 4년 동안 식당 일을 하고 모은 돈으로 가게를 차렸는데
지난번에 가 보니까 자가용 차를 샀습데다.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합네까? 배급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말입네다.”
김대성이 눈만 껌벅였고 여자의 말에 열기가 띠어졌다.
“무조건 잡아 가두기만 하고 불평하는 인민들을 누르기만 하니 이렇게 된 겁니다.
인민들이 장사를 하도록 해줘야 됩니다.
이러다가 북한 인민 다 죽습니다.”
“곧 남조선하고 통일이 되면 잘 살게 될 텐데요.”
하고 김대성이 겨우 말했을 때 여자는 머리부터 젓는다.
“저도 중국 몇번 다닌 덕분에 세상물정을 좀 압니다.
남조선이 금방 망할 것 같다고들 하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이라고 하더라구요.
내가 만난 조선족들이 모두 다 그렇게 말합니다.
남조선에 갔다온 사람들이 그러는데 데모하는 사람들은 만명에 한명꼴이랍니다.
남조선은 정부 반대 데모를 하고 대통령한테 대놓고 개새끼, 소새끼라고 해도 놔두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금방 망할 것 같이 보인다고 그럽니다.
하지만 바탕이 든든해서 끄떡없다고 합디다.”
“잘 아시네요.”
한숨처럼 말한 김대성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힐끗 조철봉에게 시선을 주고 나서 말한다.
“어쨌든 지금 보위부에 잡혀 있다는 언니 딸 가족부터 풀어놓아 드리지요.”
(2274) 남북암행-2
여자의 집을 나온 김대성은 발길을 돌려 숙영지로 향한다.
입을 꾹 다문 채 김대성이 발만 떼었으므로 조철봉과 강영만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윽고 산모퉁이를 돌아 숙영지에 켜 놓은 차량 실내등이 보였을 때 김대성이 말했다.
“내일은 국경으로 갑시다.”
그러자 강영만이 옆으로 다가선다.
“국경으로 말씀입니까?”
“그래요. 국경지역 실상을 보고 싶어요.”
“지도자 동지, 그것은.”
셋뿐이었기도 했지만 당황한 강영만이 김대성에게 지도자 동지라고 부른다.
“위험합니다. 국경 경비대가 오인할 수도 있고, 또….”
“기회는 이번밖에 없어요.”
자르듯 말한 김대성의 표정이 강해졌다.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이번 기회밖에 없다고.”
그러자 강영만은 반쯤 벌려졌던 입을 다물었다.
그날 밤, 저녁 식사를 마친 조철봉이 김대성의 텐트로 불려 들어간다.
김대성 전용 텐트 안에는 침대 하나와 접이식 의자 서너 개가 놓여 있을 뿐이었는데
오늘은 강영만까지 셋이 둘러앉았다.
오후 9시반이 되어 가고 있다. 텐트 기둥에 전등을 매달아 놓았지만 흐렸다.
탁자 위에 위스키 병과 마른 안주가 놓여 있는데 아직 술병 마개도 뜯지 않았다.
김대성이 입을 열었다.
“내가 들은 것보다 훨씬 심각해요. 위원장께선 이 실상을 알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김대성이 머리를 돌려 강영만을 본다.
그러자 강영만이 대답했다.
“보고는 되었을 것입니다. 보고를 안 했다면 처벌 감이지요.”
“하지만 실제로 본 것하고는 다르겠지요.”
“그렇습니다.”
시선을 내린 강영만이 말을 잇는다.
“보고 방법과 내용으로 상황이 얼마든지 다르게 전달될 수 있을 테니까요.”
다시 텐트 안에는 무거운 정적이 덮여졌다.
암행 5일째, 조철봉이 보기에도 그동안 북한 사회의 어두운 면만 스치고 지난 것 같다.
그때 김대성이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우리가 중국처럼 개방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강영만은 물론이고 조철봉도 김대성의 시선을 피한다.
조철봉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개방을 반대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체제가 전복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북한을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낙원으로
선전했던 당은 개방과 동시에 거짓임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인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지 않겠는가?
다시 김대성의 말이 이어졌다.
“난 괜찮아요. 난 인민들이 잘살게 된다면 목숨을 바칠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앞장선다면 당과 군이 따라 줄까요?”
“지도자 동지.”
강영만이 굳어진 표정으로 김대성을 응시하고 말한다.
“중국식이 아닌 우리만의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꼭 개방만이 살길도 아닙니다.
물론 저는 지도자 동지를 따르겠습니다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요.”
머리를 끄덕인 김대성이 길게 숨을 뱉는다.
그러고는 그때서야 위스키 병 마개를 뜯으면서 말을 잇는다.
“그 아줌마, 이옥순 동무라고 했던가?
그 동무의 말이 가슴을 쳤습니다.
부끄럽기도 했고, 그 어떤 책이나 지식있는 동무들의 강의보다 나았습니다.”
김대성이 조철봉과 강영만의 잔에 위스키를 따르면서 어금니를 꽉 물었다가 풀었다.
눈빛이 강해져 있다.
“자, 국경에서 탈북자 현장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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