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9. 남북암행 (2)
(2275) 남북암행-3
두만강 변에 선 김대성이 머리를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오후 8시 반, 어젯밤 텐트에서 이야기 한 대로 오늘은 조중 국경인 두만강 변에 서 있게 된 것이다.
“조 선생은 중국 자주 가 보셨지요?”
“그럼요.”
대답한 조철봉이 말을 이으려다가 대신 침을 삼켰다.
강 건너편은 중국 땅이다.
여러 번 중국 측 국경 마을에서 놀아본 경험이 있는 것이다.
그때 어둠 속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곧 강영만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시지요.”
다가선 강영만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한다.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강을 건너가라는 말이다.
탈북자를 만나려면 중국 땅에 가야만 하는 것이다.
강영만은 미리 부하 몇 명을 강 건너편으로 보내 준비를 시켰고 이쪽에도 손을 썼다.
괜히 국경을 넘다가 아군의 총격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경호군관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강영만, 조철봉, 김대성의 순으로 발을 떼었는데
뒤에도 경호군관 둘이 붙었다.
강은 수심이 무릎까지 밖에 차지 않은데다 폭은 20미터 정도였다.
10분도 안 되어서 중국 영토에 닿은 김대성이 조철봉과 시선이 마주치자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탈북자 심정이 조금 이해가 되는군요.”
경호군관이 건네준 수건으로 발을 닦으면서 김대성이 말했다.
중국령 언덕 위에 오른 그들은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새 점퍼와 바지, 구두를 신어 의도했던 대로 돈 좀 번 조선족 차림이 되었다.
“저쪽입니다.”
강영만이 손으로 불빛이 환한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는데 국경의 중국 마을이다.
500미터쯤 떨어져 있었지만 요란하게 장식한 붉은색 상가의 간판도 드러났다.
중국 측 국경 초소는 반대쪽에 있었고 감시병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마을을 향해 걷는다.
“국경초소 경비가 느슨하군요.”
김대성이 말하자 강영만이 걸음을 늦추고 옆으로 다가왔다.
“예, 밤에 두 번 순찰을 돌 뿐입니다.”
“저 마을 이름이 뭡니까?”
“예, 지단 마을입니다. 50호 정도지만 식당, 주점, 여관이 10여 곳이나 됩니다.”
조심스럽게 대답한 강영만의 시선이 조철봉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을로 들어선 조철봉은 우선 번화함에 놀랐다.
하나뿐인 사거리 주위로 식당과 주점, 가라오케, 여관이 늘어섰고
거리에는 행인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사거리 끝쪽에 10여 대의 관광버스가 주차되어 있었던 것이다.
외지의 관광객이다.
주춤거리는 김대성에게 강영만이 말했다.
“근처에 온천과 고구려 유적지가 있어서 남조선 관광객이 많이 옵니다.
그리고 돈 좀 번 조선족들도 놀러 오지요.”
그때 그들 옆으로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40대쯤으로 비대한 체격이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한국어로 물었으므로 강영만이 대답했다.
“우린 옌지에서 단체로 놀러왔시다.”
강영만이 한국 관광객으로 소개할까 봐서 은근히 가슴을 졸였던 조철봉은
저절로 길게 숨을 뱉는다.
새 옷과 신발로 차림을 바꿨지만 한국 관광객으로는 안보였기 때문이다.
옷차림은 물론 말투도 그렇다.
그러나 사내가 웃음 띤 얼굴로 바짝 다가섰다.
“그럼 소문 들으셨을 테니 놀다 가시지요. 싸고 물건도 좋습니다.”
이번에는 김대성이 묻자 사내가 눈을 번들거리며 말한다.
“다 아시면서, 북조선 여자들이 있습니다.”
(2276) 남북암행-4
사내가 안내한 곳은 사거리 뒷골목에 위치한 여관이었으므로 앞장서 갔던 강영만이 눈을 치켜떴다.
그러자 사내가 웃음띤 얼굴로 여관 안쪽을 가리킨다.
“가라오케는 저쪽입니다.”
과연 마당 왼쪽에 가라오케 간판을 붙인 단층집이 보였다.
사내가 앞장서 걸으면서 이제는 오른쪽을 가리킨다.
“저곳은 여관이구요. 가라오케에서 노시다가 여관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농가는 건물이 두 채여서 마당 양쪽 건물을 가라오케와 여관으로 개조한 것이다.
가라오케 안으로 들어서자 조잡하게 만든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있었지만 조용했다.
그들이 첫 손님인 것이다.
“어서 오세요.”
하고 40대 여자가 반색을 하면서 맞았는데 사내의 부인 같았다.
가라오케 방엔 둘뿐이었고 안에는 테이블에다 싸구려 소파
그리고 가라오케 기계가 놓여졌을 뿐이다.
“아가씨 셋 데려오겠습니다. 지금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사내가 서두르며 말한다.
불빛에 비친 얼굴이 개기름에 덮여 번들거린다.
“다른 사람들이 가로채 가기 전에 세 명 추려오지요.”
“잠깐.”
김대성이 손을 들어 사내의 말을 막더니 묻는다.
“아가씨를 어디서 데려온다는 겁니까?”
“지금 여관방 안에 있습니다.”
사내가 손으로 뒤쪽을 가리키더니 은근하게 웃는다.
“오늘은 물이 좋습니다. 강을 처음 건너온 애도 둘이나 있어요.”
“강을 건너다니?”
다시 김대성이 묻자 사내는 눈을 흘기는 시늉을 한다.
“두만강 말입니다.”
김대성이 입을 다물자 사내는 서둘러 방을 나간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자가 나섰다.
“술은 뭘로 드릴까요? 진짜 한국산 위스키에 소주까지 다 있습니다.”
그때야 조철봉이 묻는다.
“그거, 진짜요?”
“그럼요.”
여자가 자신있는 표정으로 말하더니 조철봉을 바라보았다.
“한국산 위스키를 드릴까요?”
“얼만데?”
“한 병에 천원입니다. 진짜 한국산입니다.”
“천원이면 한국돈 16만원인데 너무 비싸. 다섯 배를 받아먹는군.”
투덜거린 조철봉이 힐끗 김대성의 눈치를 본다.
김대성이 머리를 끄덕여 알아서 하라는 신호를 보냈으므로 조철봉이 정색하고 말했다.
“소주는 얼마요?”
“진짜 한국산으로 백원 받습니다.”
“그건 열 배로군.”
했다가 조철봉이 소주와 안주를 시키고 나서 생각난 듯 묻는다.
“여자 팁값은?”
“데리고 노시는 데는 200원, 주무시는 데는 노시는 값 안 받고 800원 받습니다.
그런데 강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새벽 3시에는 내보내 주셔야 합니다.”
그러자 조철봉이 머리만 끄덕이고는 의자에 등을 붙인다.
여자가 밖으로 나가자 방안은 조용해졌다.
강영만은 딴전을 보았으며 김대성은 묵묵히 앞쪽의 벽에 시선을 준 채로 입을 열지 않는다.
그때 조철봉이 헛기침을 하고 말한다.
“아십니까? 언젠가 남조선에서 누가 통계를 냈는데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20대 여자가 100만이라는 겁니다.
그 숫자는 남조선 전체 20대 여성 인구의 10퍼센트라는 것입니다.”
신문에서 예전에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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