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46. 버려야 먹는다 (11)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3:14

846. 버려야 먹는다 (11)

 

(2268) 버려야 먹는다-21 

 

 

이윽고 김대성이 말했다.

“다 압류해서 여기 모인 인민들에게 나눠줘도 될 것 같군요.”

조철봉은 눈만 껌벅였고 김대성의 말이 이어진다.

“불법으로 들여온 물품인 데다 북조선 관리와 짜고 불법 거래를 해왔으니까 말입니다.”

“….”

“하지만 이번은 그냥 놔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자 조철봉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묻는다.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왜요?”

“불법이라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팔짱을 낀 김대성의 말이 이어졌다.

“근본적인 처방을 해야지 지엽적인 문제에 달려들면 혼란만 가중시키게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겪은 경험담이 아니다.

 

읽었거나 누구한테서 배운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조철봉의 가슴은 세차게 뛰었다.

 

 20대 후반의 처신으로 이만하면 대단하다.

 

만일 조철봉이 지금 이 입장에 있다면 트럭에 실린 물품을 다 나눠주고 끝냈을 것이었다.

 

그때 김대성이 발을 떼며 말한다.

“약자 편에 서서 생각하라고 배웠습니다.

 

내가 조선족 상인과 보위대원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니까 그

 

들 둘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그렇지요.”

나란히 걸으면서 조철봉이 마침내 맞장구를 쳤다.

 

둘의 뒤를 강영만이 묵묵히 따르고 있다.

 

머리를 돌린 김대성이 다시 조철봉을 보았다.

“그렇지만 인민들의 생활이 너무 곤궁한 것 같습니다.

 

남조선은 잘 산다고 들었는데 미국 원조를 많이 받았기 때문일까요?”

“그것은.”

입안의 침을 삼킨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는다.

 

말문이 막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다리는 김대성의 맑은 눈을 보고 나서 가만 있을 수가 없다.

 

조철봉이 기를 쓰듯 말한다.

“아닙니다. 기업인, 노동자 그리고 정부가 삼위일체가 되어서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스스로 이룩한 경제 성장에 대해서 긍지를 갖고 있지요.”

“독재에 항의하는 인민이 많다던데.”

“그런 사람도 있지요.”

눈을 치켜뜬 조철봉이 뱉듯이 말을 잇는다.

“만날 데모만 하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놈들은 자신이 옛날에는 라면도 못먹고 데모하는 신세였다가

 

지금은 배불리 먹으면서 자가용 타고 데모 출장을 가는 신세가 된 것이

 

누구 덕분인지를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누구 덕분인데요?”

“그들이 데모하는 동안 나머지 국민들이 열심히 일해준 덕분이지요.”

어느덧 공터 귀퉁이에 멈춰선 김대성이 굳어진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그럼 남조선 인민 대부분은 남조선 체제에 긍지를 갖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조철봉이 어깨를 펴고는 똑바로 김대성을 보았다.

“저도 마찬가지올시다.

 

저도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국민 중의 한 사람이올시다. 그리고.”

입안의 침을 삼킨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위원장님께서도 그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한테 있는 그대로를 말해 주라고 지도자님과 동행하도록 허락해주셨을 것입니다.” 

 

 

 

(2269) 버려야 먹는다-22 

 

 

오후 4시반, 김대성이 여자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운동화 한 짝을 집어 들었다.

“이거 얼마요?”

“200원.”

30대 중반쯤의 여자가 불쑥 말을 뱉더니 잊었다는 듯이 덧붙인다.

“중국 돈으로.”

“우리 돈으로는?”

“안 받아.”

내쏘듯 말한 여자가 또 덧붙인다.

“강냉이 8킬로, 쌀은 2킬로하고 바꿀 수 있어. 송이라면 200그램.”

“그것 참.”

입맛을 다신 김대성이 머리를 돌려 뒤에 선 조철봉을 올려다본다.

“조 선생, 비싸지 않소?”

그러자 조철봉이 대답도 하기 전에 여자가 선심 쓰듯이 말한다.

“달러로는 30불로 해 줄게.”

“동무, 내가 물정 모르는 줄 아시오? 너무 비싸.”

“이 젊은 동무는 정말 물정을 모르는구먼. 이 운동화는 평양에서 300원에 팔리고 있다고.”

여자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옆에 앉은 여자가 역성을 든다.

“그럼. 여긴 국경이 가까워서 평양보다 싸다고요.

 

그래서 평양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니까.”

“내 동무는 이런 운동화를 중국 돈 150원을 주고 샀다던데.”

제법 분위기에 맞춰 김대성이 흥정을 붙였으므로 조철봉은 잠자코 듣는다.

 

그때 운동화 파는 여자가 말했다.

“아이고, 그럼 150원 내고 가져가. 흥정 길게 하지 말고.”

“동무는 돈 많이 벌겠소.”

“그래야 자식 둘 먹여 살리지.”

그러고는 여자가 눈을 반짝이며 김대성을 본다.

“내가 봐주는 거야.”

이곳은 자강도 전천을 지나 30분쯤을 달린 후에 멈춘 도로가의 작은 마을이다.

 

도로 안쪽 공터에 사람들이 많아서 들어가 보았더니 작은 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좌판에 상품을 잔뜩 쌓아 놓고 있었는데 한국산 라면도 보인다.

 

그때 김대성이 운동화 대신 옆에 놓인 남자용 셔츠를 집어 들었다.

 

중국산으로 중국어가 폴리백에 프린트되어 있다.

“이건 얼마입니까?”

“100원, 미화로는 15불.”

내쏘듯 말한 여자의 얼굴에 짜증기가 배어났다.

 

그때 사내 하나가 다가와 김대성이 집었다 놓은 운동화를 들더니 여자에게 묻는다.

“이거 140원에 팔아. 동무.”

“그러시오.”

힐끗 김대성을 쏘아본 여자가 운동화를 비닐봉지에 담으면서 말한다.

“흥정만 하다가 놓쳤잖아? 260호는 이것뿐인데.”

“이 셔츠는 80원에 주시오.”

하고 김대성이 말하자 여자가 입을 쩍 벌리고 웃는다.

“아이고. 그래, 줄게. 몇 호 입어?”

“100호가 맞는데.”

“여기 있어.”

여자가 셔츠를 찾아 내밀었고 김대성은 100위안 지폐를 꺼내 주었다.

 

지폐를 받은 여자가 한참이나 앞뒤를 살펴보고 나서야 거스름돈을 내주면서 말한다.

“위폐가 많아서 그래.”

허리를 펴고 일어선 김대성이 조철봉을 향해 웃어 보였다.

“내가 인민경제에 조금 도움을 준 것인가요?”

낮게 말한 김대성이 발을 떼면서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열심히 사는 인민들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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