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41. 버려야 먹는다 (6)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3:09

841. 버려야 먹는다 (6)

 

(2258) 버려야 먹는다-11 

 

 

하도 자주 육로로 평양을 오가다 보니 검문소의 북한군 군관이 조철봉을 보면

 

제 직속 상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운차게 경례를 한다.

 

조철봉도 이제 북한땅에 들어서면 서먹하지가 않다.

 

마치 처갓집이 있는 도시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고려호텔 로비에서는 통전부장 양성택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조철봉을 보더니 싱글벙글 웃었다.

“조 사장, 자주 오십니다.”

조철봉의 손을 쥔 양성택이 목소리를 낮추고 묻는다.

“이곳에 색시 하나를 둬야겠소.”

“그럴 작정입니다.”

정색한 조철봉이 말하고는 최갑중을 먼저 방으로 올려 보내 놓고

 

양성택과 로비 구석쪽 자리에 마주앉았다.

“김대성 지도자를 만나게 해주시지요.”

대뜸 조철봉이 말하자 양성택의 표정이 천천히 굳어진다.

“또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조철봉이 머리를 저었다.

“제가 당분간 측근에서 모시게 해주시면 양국 관계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양성택은 시선만 주었고 조철봉은 한마디씩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지도자님께 남한에 대한 정보를 알려드리려는 겁니다.

 

아마 위원장님께서도 찬성하실 것 같은데요.”

“남한에 대한 정보라….”

이맛살을 찌푸린 양성택이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설마 우리 지도자 동지를 자본주의 사상으로 세뇌시키려는 공작은 아니겠지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질색을 한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가장 중요한 북남관계에 대한 지도자 동지의 이해를 도와드리게 될 겁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난 조철봉이 똑바로 양성택을 보았다.

“후계자에 대해서 불안하게 느끼고 있을 한국 정부나 미국, 일본 등을

 안심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도대체 누가 만들어낸 작전이오?”

“제가 생각해냈지요. 하지만 오기 전에 정부 관계자를 만나 동의를 받았습니다.”

“정부 관계자 누구 말입니까?”

“청와대와 국정원.”

그러자 한동안 조철봉을 바라보며 숨도 쉬는 것 같지 않던 양성택이 마침내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한다.

“위원장 동지께 보고 드리지요.”

“저를 이용물로 삼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양성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조 사장, 지도자 동지께 나쁜 버릇을 들이시면 안 됩니다.

 

설령 위원장 동지께서 허락하신다고 해도 말입니다.”

“물, 물론입니다.”

당황한 조철봉이 말까지 더듬었을 때 양성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후 4시반이다.

 

현관까지 배웅나간 조철봉에게 양성택이 말했다.

“오후 6시쯤 연락을 드리지요.”

그러면서 손바닥으로 조철봉의 어깨를 툭 쳤다.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라 있다.

“지도자 동지의 남측 측근이 되시겠다. 이 말씀이지? 과연 수단이 좋으시오.”

그리고 오후 6시 정각이 되었을 때 조철봉은 방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좋습니다. 위원장 동지께서 허락하셨습니다.”

 

밝은 목소리로 양성택이 말을 잇는다.

“오늘 저녁에 셋이 같이 식사나 하십시다. 내가 곧 차를 보내지요.”

셋이라면 지난번처럼 김대성을 포함한 셋이다.

 

조철봉은 가슴을 부풀렸다. 됐다. 

 

 

 

(2259) 버려야 먹는다-12 

 

 

오늘은 대동강변에 위치한 초대소의 베란다에 셋이 둘러앉아 있다.

 

대동강이 내려다보이는 2층 베란다에는 그들 셋뿐이다.

 

오후 9시, 강 건너편에 드문드문 보이는 불빛에 드러난 풍경이 마치 그림 같다.

 

술잔을 든 김대성의 표정은 차분했다.

 

조철봉과 낯이 익었기 때문인지 스치는 시선도 자연스럽다.

 

저녁상이 치워지고 그 자리에 술상이 차려져 셋은 인삼주를 서너잔씩 마셨다.

인삼주는 독했다. 40도는 훨씬 넘을 것이다.

 

다시 술잔을 든 김대성이 머리를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조사장은 성공한 사업가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성공하신 겁니까?”

“그것이.”

난데없는 질문이었지만 각오는 했다.

 

곧 마음을 가라앉힌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남한은 기회가 많은 곳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저처럼 수단을 부려서 한몫 쥔 놈들도 있지요.”

“수단이라뇨?”

정색한 김대성이 묻자 조철봉이 헛기침부터 한다.

“예, 뇌물도 주고 사기도 좀 쳤습니다.

 

거짓말도 많이 했지요.

 

요즘은 그런 게 많이 없어졌지만 전에는….”

“도둑놈, 사기꾼 천지였단 말이죠?”

“좀 많았습니다.”

대답해놓고 조철봉은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이번에도 양성택은 외면한 채 듣기만 한다.

 

그때 김대성이 또 묻는다.

“서울에 거지가 많다던데, 노숙자가 넘치고…. 그걸 왜 치우지 않는 겁니까?”

“강제로 치우지 못합니다. 노숙자도 잘못 건드렸다가는 혼이 나거든요.”

“하긴 경찰 사기가 땅바닥으로 떨어져서 데모대에 맞기만 한다니까.”

이건 동문서답이 아니라 근본이 어긋나 있다.

 

조철봉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숨을 들이켰다.

 

그러다 양성택과 시선이 마주쳤다.

 

양성택은 얼른 외면했지만 얼굴에 배어난 쓴웃음을 감추지는 못했다.

 

길게 숨을 뱉은 조철봉이 김대성을 보았다.

“지도자 동지, 남한에서는 길거리에서 마이크로 대통령 욕을 해도 안잡혀 갑니다.”

“그거야 남조선 내부의 우리 동지들이 무서워서 그런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정색한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한시간도 안되어서 다 잡아넣을 수가 있지요.”

“그런데 왜 놔둡니까?”

그러고는 김대성이 쓴웃음을 짓는다.

“이해가 안되는 이야긴 그만둡시다.”

“경찰은 법대로 시행하기 때문이죠.”

조철봉이 기를 쓰고 말했지만 김대성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해도 못 믿는다는 표정이다.

 

TV화면을 보면 데모대에 밀리는 경찰, 불타는 경찰차, 도로를 가득 메운 데모대가 비친다.

 

조철봉의 말대로라면 바로 그 장면들이 법이며 현실인 것이다.

 

그때 김대성이 다시 말한다.

“조사장이 내 옆에서 도와주시는 것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남조선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단 말입니다.”

그러고는 조철봉을 향해 웃어 보였다.

“어떻습니까? 남조선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는 우위에 있지만

 

체제 면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 건 분명하지요?”

긴장한 조철봉의 눈을 바라본 채 김대성이 말을 잇는다.

“매일 데모나 하고 경찰과 밀고 밀리는 꼴을 보면 곧 망할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 북조선을 보세요.”

김대성이 손을 들어 어두운 대동강을 가리켰다.

“어디 한사람이라도 그런 반동이 길거리에 나옵니까? 얼마나 안정되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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