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38. 버려야 먹는다 (3)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3:06

838. 버려야 먹는다 (3)

 

(2252) 버려야 먹는다-5 

 

 

김대성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저기, 개성공단에서 한국 관리자 한명이 지금 두달째 억류되어 있습니다.”

“압니다.”

바로 대답하는 김대성이 웃음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그 부탁입니까?”

“예, 한국에서는 대통령부터 일반 시민까지 그분 걱정 때문에….”

“그래서 이번에 평양 오실 때 누가 부탁을 하라고 하던가요?”

툭툭 던지는 김대성의 질문은 마치 과녁 한복판에 꽂히는 화살처럼 정확했다.

 

조철봉이 어금니를 문다.

 

통일부 차관의 부탁을 받았지만 왕창 계단을 끌어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께서 부탁을 하시더군요.

 

위원장님 만나뵙고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라고요.”

조철봉이 말하자 김대성이 힐끗 양성택을 보았다.

“양 동무, 그사람 보내주시라우요.”

“예, 지도자 동지.”

대번에 대답한 양성택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바로 석방할까요?”

“조철봉 동무가 귀국해서 보고한 후에 보내줍시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슴이 벌렁거리는 바람에 심호흡을 두번이나 하고 나서 조철봉이 김대성에게 묻는다.

“제가 내일 돌아갈 예정입니다. 그럼 모레 석방시켜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머리를 끄덕인 김대성이 다시 얼굴을 펴고 웃는다.

“청와대에다 보고하셔도 됩니다.”

“그, 그럼 지도자 동지가 석방시켜주셨다고 해도 됩니까?”

“아니, 그건….”

머리를 가볍게 저은 김대성이 말을 잇는다.

“난 밝히지 마시라우요.”

“알겠습니다. 지도자 동지, 감사합니다.”

조철봉이 이마가 테이블에 닿도록 머리를 숙였을 때 방문이 열리더니

 

술과 안주를 든 종업원들이 들어선다.

 

그 뒤를 아가씨들이 따른다. 본인은 밝히지 말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언론에 발표되지는 않겠지만 조철봉이 오늘밤 일어난 일을 낱낱이 보고하리라는 것을

 

김대성도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으로 김대성은 막강한 영향력을 한국측에 처음으로 보여준 셈이 되었다.

 

조철봉으로서도 운좋게 공을 세운 것이 되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형국이다.

“자, 듭시다.”

김대성이 위스키 잔을 들고 조철봉과 양성택을 번갈아 보았다.

“조선의 미래를 위하여.”

그러자 조철봉과 양성택이 위하여를 외치곤 단숨에 술을 삼킨다.

 

아가씨들을 훑어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입안의 더운 기운을 뱉은 조철봉이

 

먼저 옆에 앉은 파트너를 본다.

미인이다. 해맑은 피부, 날씬한 몸매, 전혀 인공배합물이 섞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미인.

 

조철봉의 가슴이 다시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김대성이 불쑥 묻는다.

“서울에 노숙자가 많다면서요?

 

서울역 앞에 밤이면 거지들이 떼로 모여 잔다던데, 평양에는 그런 일 없습니다.”

눈만 껌벅이는 조철봉을 향해 김대성이 또 물었다.

“TV를 보면 경찰이 데모대한테 밀리던데,

 

그러다가 남조선 정권 곧 넘어가는 것 아닙니까?” 

 

 

(2253) 버려야 먹는다-6

 

 

조철봉은 소리 죽여 숨을 뱉는다.

 

앞쪽에 앉은 양성택은 손에 술잔을 쥔 채 외면하고 있다.

 

나서기가 민망한 것 같다.

 

그러나 김대성의 정색한 표정을 보면 대답을 안 할 수가 없다.

“뭐, 괜찮습니다. 그런 일은 흔하거든요.”

“그래요?”

하고 김대성이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시늉이다.

“TV에서 보면 경찰들이 완전히 사기가 떨어져 있던데.

 

반정부 데모대가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남조선은 해방되겠던데 말입니다.”

“그것이.”

헛기침을 한 조철봉이 마침내 굳어진 얼굴로 김대성을 본다.

“경찰이 무력 진압을 하지 않도록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것은.”

“나도 알고 있단 말입니다.”

김대성이 웃음띤 얼굴로 말을 자른다.

“무서워서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거죠.

 

만일 하나라도 다치면 전 인민이 들고일어날 테니까 말입니다.”

가슴이 답답해진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양성택을 보았다.

 

그러자 그때까지 딴전만 피우던 양성택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이번 개성공단의 오아무개씨 석방은

 

우리의 통 큰 지도자님께서 용단을 내려주신 덕분입니다.

 

조 사장은 잊으시면 안 됩니다.”

“예, 꼭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해놓고 조철봉이 얼른 덧붙였다.

“물론 청와대에만 전하겠습니다.”

그러자 술잔을 든 김대성이 말한다.

“장군님의 지시로 핵은 폐기가 될 것이지만 핵에 대한 기술은 다 보관되어 있습니다.

 

우리 조선 민족을 위해선 언제든지 핵을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양성택이 맞장구를 쳤고 조철봉도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조선 민족을 위한다는데 누가 이의를 달 것인가?

 

김대성이 옆에 앉은 파트너에게로 머리를 돌렸으므로 조철봉은 다시 소리죽여 숨을 뱉는다.

 

핵 팔아서 서울역 앞 노숙자를 도와주겠다는 말이 나올까 봐서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것이다.

“이름이 뭐라고?”

하고 김대성이 파트너에게 큰소리로 묻는 바람에 방안의 시선이 모여졌다.

 

김대성의 파트너는 세 여자 중 가장 뛰어났다.

 

긴 생머리, 조금 서구적인 용모, 날씬한 몸매는 기본인데다 분위기가 압권이다.

 

다소곳한 자세면서도 눈동자가 또렷했고 전혀 주눅든 모습이 아니다.

 

태도로 말할라치면 조철봉보다 당당하다.

“네, 윤나미라고 합니다.”

“흐음, 윤나미.”

이름을 불러본 김대성이 지그시 여자를 보았다. 조철봉은 숨을 들이켰다.

 

여자를 보는 남자의 시선만 보면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머릿속은 다 읽지 못해도 여자에 대한 관심의 유무,

 

나아가 색정의 정도까지는 짐작할 수 있는 조철봉이다.

그런데 김대성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강한 눈빛을 주고 있었지만 색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담백했다.

 

그때 김대성이 머리를 돌려 이쪽을 보았으므로 조철봉은 찔끔했다.

 

김대성이 묻는다.

“조 선생, 이 아가씨 어떻습니까?”

“예? 무슨 말씀이신지.”

당황한 조철봉이 어물거리며 물었을 때 김대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여자에 대한 식견이 높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여기 윤나미는 어떤 여자 같습니까?”

조철봉은 숨을 들이켜고는 한동안 뱉지 않았다.

 

과거의 행실이 북한 정권의 실세들한테까지 퍼져 있다는 것을 짐작은 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개망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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