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39. 버려야 먹는다 (4)

오늘의 쉼터 2014. 10. 10. 13:07

839. 버려야 먹는다 (4)

 

(2254) 버려야 먹는다-7

 

 

이번에도 차로 돌아온 조철봉을 개성공단 입구에서 맞은 것은 국정원 정보실장 이강준이다.

 

조철봉은 이강준의 차에 옮아 타고는 서울을 향해 달린다.

“위원장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은 조철봉이 이강준에게 말했다.

“하지만 후계자로 알려진 김대성을 만났지요.”

놀라 몸을 굳힌 이강준에게 조철봉이 어젯밤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강준이 길게 숨을 뱉었다.

“그럼 내일 오대석씨가 풀려나겠군요.”

“소득은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도 김대성을 알려줄 기회를 만든 것이지요.”

그러더니 이강준이 쓴웃음을 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김대성이 서울역 노숙자 걱정을 하다니,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데모대가 조금만 더 경찰을 밀어붙이면 남조선이 해방되겠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요.”

해놓고 이강준도 길게 숨을 뱉는다.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 만합니다.”

차 안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가 다시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하지만 성품은 순수해 보였습니다.

 

양성택씨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이해력도 빠른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다 그렇죠.”

혼잣소리처럼 말한 이강준이 길게 숨을 뱉는다.

“위원장 중별설이 사실인 모양인데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김대성이 저한테 여자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눈만 크게 뜬 이강준에게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여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도록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제 조철봉의 말에 끌려든 듯 이강준이 눈동자에 초점을 잡는다.

 

조철봉이 똑바로 이강준을 보았다.

“가장 행복한 섹스는 몸과 마음이 같이 원했을 때 이뤄진다고 말했지요.

 

여자는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고도 말해 주었습니다.”

“아하.”

감탄한 듯 입도 반쯤 벌렸다가 닫은 이강준이 묻는다.

“그랬더니 뭐라고 하던가요?”

“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머리를 끄덕인 이강준이 불쑥 묻는다.

“조 사장님은 지금까지 그렇게 해 오셨단 말씀이죠?”

“아닙니다.”

조철봉이 정색하고 말하자 이강준은 우두커니 보았다.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다 거짓말입니다. 뻥이죠.”

“…….”

“전 치마만 둘렀다 하면 덮어놓고 달려들었지요.

 

그래서 여자가 절정에 오르면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딴 데서 얻지 못했던 성취감을 그때 느낀 거죠.”

그러고는 조철봉이 빙그레 웃는다.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따라 웃은 이강준이 등받이에 상반신을 붙였다.

“하긴 김대성한테 그렇게 말씀하실 수는 없겠지요. 어쨌든 잘하셨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란 완벽하지만은 않다.

 

김대성도 곧 알게 될 것이다. 

 

 

 

(2255) 버려야 먹는다-8 

 

 

조철봉의 사무실 안에는 넷이 둘러앉았다.

 

조철봉과 최갑중, 김경준에다 민유미까지 측근은 다 모인 것이다.

 

평양에서 출발한 조철봉은 청와대에 들어가 보고를 마치고 돌아온 참이다.

 

여기서도 조철봉은 어젯밤의 극적 상봉 이야기를 했는데

 

세 번이나 되풀이하는 바람에 스스로 들어도 매끄럽다.

 

거짓말도 되풀이하면 참말처럼 들린다는 말이 실감난다.

 

군더더기는 빼고 요점만 집어내면서 강약까지 조절하게 되니

 

청중이 혹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윽고 이야기를 마쳤을 때 최갑중이 먼저 한마디 했다.

 

같이 평양에 갔던 터라 사연은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 말은 가슴 속에 묻어 놓았던 것 같다.

“무슨 나라가 그렇습니까? 계속 아들이 대통령, 아니 지도자가 되다니요?”

그러자 모두 가만 있었으므로 조철봉이 나섰다.

“아니, 그게 어때서 그래?

 

한국 대통령도 자기 뜻을 이어줄 사람한테 대통령을 넘겨주려고 해왔지 않어?

 

아들이 잘할 것 같으면 넘겨 주는 거지 뭐.”

“하지만 한국은 선거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난번은 정권이 바뀌었고요.”

“북한도 선거를 한다고, 무식한 사람아.”

그때 민유미가 정색하고 나섰다.

“지금 저까지 부르셔서 김대성 이야기 하신 건 저쪽에 전하라는 말씀이죠?”

그러자 최갑중이 아직까지 벌리고 있던 입을 다문다.

 

저쪽이란 미국이다. 민유미는 CIA 정보원인 제 신분을 이제 대놓고 말한다.

 

조철봉이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을 때 민유미가 말을 잇는다.

“미국 측에 보내는 메시지는 받지 못하셨어요?”

“우리가 이렇게 앉아 이야기하고 있으리라는 건 예상했겠지.

 

그게 메시지 아니겠어?”

북한 측도 민유미가 CIA 정보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좌우간에.”

한숨을 뱉은 최갑중이 다시 입을 연다.

“이건 왕국도 아니고 도대체가 말야.”

“이 사람아.”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최갑중을 노려보았다.

 

둘이 있었다면 얀마라고 했을 것이다.

“영국도 왕이 있잖아? 엘리자베스.

 

그리고 다음에는 찰스 왕세자가 왕이 될 것이고,

 

그 사람들은 수십대 이어갔을 걸?”

“아니, 그 왕하고 어디 같습니까?”

“영국 왕은 왕관까지 쓰고 다니더라. 위원장이 왕관 쓴 것 봤어?”

“아니, 그것보다…….”

“마차까지 타고 다녀. 위원장이 마차 타더냐?”

최갑중은 입만 딱 벌리고 대답하지 않는다.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힐끗 민유미와 김경준을 보았다.

 

자신이 억지소리를 했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현실인 것이다. 최갑중처럼 비판만 하면 아무것도 안된다.

 

그때 잠자코 앉아만 있던 김경준이 입을 열었다.

“북한이 후계자로 소문만 무성했던 김대성을 처음으로

 

사장님 앞에 등장시킨 것이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아마 사장님 보고를 받고 한국 정부는 지금 난리가 났을 겁니다.”

“잠깐만요.”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선 민유미가 쓴웃음을 짓고 말한다.

“저도 보고를 하고 오겠습니다.”

따라 웃은 조철봉이 머리만 끄덕이자 민유미는 서둘러 방을 나간다.

 

다시 김경준의 말이 이어졌다.

“김대성의 가장 큰 약점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것이죠.

 

서울역 앞 노숙자들을 걱정하는 것이 그 예가 되겠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알고 있는 북한 측도 이에 대한 대비책을 세울 것이 분명합니다.”

과연 특급 보좌관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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