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5. 갈등 (11)
(2246)갈등-21
김인경이 말해준 카페는 찾기 쉬웠다.
좌석마다 칸막이가 되어 있는데다 조용했고 분위기도 아늑했다.
장소를 선택한 김인경의 안목까지 돋보이게 만들어 준다.
팔목시계는 6시40분을 가리키고 있다.
설레어서 서둘다 보니 20분이나 먼저 온 것이다.
그때 칸막이 문이 젖혀졌으므로 조철봉이 머리를 들었다.
“아니.”
그순간 조철봉이 놀라 눈을 둥그렇게 떴다.
소공동에서 헤어졌던 국정원 정보실장 이강준이 안으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조철봉의 표정을 본 이강준이 쓴웃음을 짓는다.
“죄송합니다.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요.”
앞자리에 앉은 이강준이 팔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면서 말을 잇는다.
“잠깐이면 됩니다.”
이강준이 누구를 미행시키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피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놀랍지는 않다. 기분이 상했을 뿐이다.
그리고 곧 김인경을 만나야 된다.
그때 이강준이 입을 열었다.
“위원장의 중병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내부에 갈등이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소공동에서는 이 말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영기야 상관없겠지만 대한자동차의 이윤덕까지 모인 자리인 것이다.
이강준이 말을 이었다.
“내부 갈등이 어떤 양상으로 번질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우선 군부의 강온세력, 온건파인 양성택과 당의 강경세력,
또 후계자 문제까지 엉켜있는 것 같은데 핵 폐기나 대한자동차 임차지 선정 건이
뒤로 밀려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얼굴을 굳힌 이강준이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군의 강경파가 역공으로 핵 실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
“조 사장님이 다시 모른 척하고 북한에 가시든지
아니면 양성택을 만나자고 해보시지요.
그럼 뭔가 잡힐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침내 조철봉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한다.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위원장의 안위가 더 궁금했다.
그게 인정이고 인간이다.
“제가 다시 나가보지요.”
그러자 이강준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머리를 숙여 절까지 했다.
“감사합니다. 조 사장님께 신세를 많이 지고 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천만에요.”
이강준이 서둘러 칸막이 밖으로 나갔으므로 조철봉은 팔목시계를 보았다.
7시 5분 전이다.
이강준은 알맞게 나가주었다.
혹시 이강준이 김인경과의 약속도 알고 있는지 잠깐 궁금해졌지만 곧 잊었다.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디 여자 관계가 하나둘인가?
그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더니 김인경이 들어섰다.
“오오.”
조철봉의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터져나온다.
승무원 제복을 입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
머리도 길게 늘어뜨렸고 캐주얼 셔츠에 미니스커트.
입을 떡 벌린 조철봉의 시선이 김인경의 위아래를 여러 번 훑는다.
“아이, 참.”
눈을 흘기는 시늉을 한 김인경이 앞쪽에 앉더니 웃음띤 얼굴로 묻는다.
“왜요? 다른 사람 같아서요?”
“내가 지금까지 미인을 수백 명 만나보았지만.”
조철봉이 혀로 입술을 핥고 나서 침까지 삼켰다.
“이렇게 섹시한 미인은 처음이야.”
입에 침을 바르고 말했다.
사실이다.
(2247)갈등-22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의외로 많아서 신문을 펼치면 사회면이나 문화면만 보고 덮는다. 가끔 TV를 잘못 켠 바람에 정치인을 우연히 보는 경우가 있다. 그때가 정치인들에게는 얼굴을 알릴 절호의 기회다. TV 카메라가 오면 졸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카메라는 왔는데 발언 기회를 안 주니까 말하는 것처럼 입을 달싹거리는 인간도 있다. 카메라맨이야 기가 막히겠지만 지역구 유권자만 봐 주면 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김인경도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우리나라 대통령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국무총리는 누군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하긴 지금까지 일년에 한두 번씩 총리가 바뀐 터라 보통 서민들은 외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또 총리나 장관 같은 임명직은 선출직 공무원하고는 달라서 기어코 국민들에게 이름과 얼굴을 알릴 필요도 없을 테니 노력도 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성상사는 이름난 대기업도 아니다. 김인경이 모를수록 조철봉은 기운이 난다. 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었어도 지난번 제주도 남북정상회담 때 조철봉 이름 석자가 한동안 떠들썩하게 나돈 것을 알았을 텐데. 김인경이 알고 있었다면 조철봉은 당연히 위축되었을 것이고. 조철봉이 웃음 띤 얼굴로 대답한다. 그러고는 김인경에게 물었다. 오늘 오전에 비행기 안에서 만난 여승무원이 아니다. 개성이 뚜렷했고 전혀 다른 분위기, 다른 매력이 솟구친다. 조철봉이 심호흡을 하고 나서 묻는다. 양탄자가 깔린 계단을 내려가자 유리문이 열리더니 이미 연락을 받고 기다리던 마담이 그들을 맞았다. 30대 중반의 농염한 자태, 눈웃음을 치는 얼굴은 마치 다 익어서 터질 것 같은 복숭아 같다. 마담이 힐끗 조철봉을 보더니 흰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 그러더니 오히려 몸을 딱 붙이고는 방으로 안내했다. 놀라지 않는다.
“옌지는 자주 가세요?”
김인경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건성이다.
“그럼. 사업 때문에.”
“무슨 사업을 하시는데요?”
명함에는 오성상사 사장으로만 되어 있었으니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한중 합작사업이야. 한국에서 자본을 대고 중국은 인력을 대는 사업이지.”
대충 그렇게 말했더니 김인경이 아는 척을 한다.
“그런 일로 옌지에 가시는 분이 많더군요. 그럼 공장은 옌지에 있겠네요?”
“그렇지.”
“공장이 커요?”
“그럼. 직원이 3천명인데.”
“무슨 공장인데요?”
“자동차 부품.”
설렁설렁 대답하면서 조철봉이 손목시계를 보았다.
“7시반인데 밥 먹어야지?”
“배고프시지 않으면 우리 술 마셔요.”
조철봉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김인경이 말했다.
“좋은 데 알고 있으면 가자.”
“그럼 가요.”
밝은 표정이 된 김인경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제 선배 언니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어요. 룸도 있고 분위기도 좋아요.”
김인경이 안내한 곳은 그곳에서 백미터도 안 되는 거리의 지하 카페였다.
“어서 오세요.”
정장 차림의 마담이 인사를 했을 때 조철봉은 다시 감동한다.
“으음.”
저절로 감탄사를 뱉은 조철봉이 한 팔로 마담의 허리를 감아 안았다.
“어머.”
그것을 본 김인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역시 눈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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