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34. 갈등 (10)

오늘의 쉼터 2014. 10. 10. 08:29

834. 갈등 (10)

 

(2244)갈등-19 

 

 

인천행 비행기의 좌석에 앉은 순간 조철봉은 가슴이 내려앉는 것 같은 감동을 받는다.

 

다가선 승무원 때문이다.

“마실 것 드릴까요?”

잔잔한 웃음이 떠오른 얼굴, 맑은 목소리, 콧등에 작은 점 하나가 박혀 있고

 

옅게 루주를 바른 입술은 요염하다.

 

조철봉이 홀린 듯한 시선을 보내면서 대답한다.

“오렌지주스.”

제 목소리도 꿈결에서처럼 들린다.

“난 토마토주스로.”

갑자기 옆에서 최갑중의 작대기로 땅을 긁는 것 같은 목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정신이 조금 들었지만 조철봉의 가슴은 아직도 뛴다.

 

아름다운 여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신이 주신 선물이며 축복이기도 하다. 물론 내면의 아름다움이 더 값지다는 말에

 

조철봉은 동감한다.

 

그러나 어디 만나자마자 여자 내면을 후비고 들어갈 수 있는가?

 

이렇게 스쳐 지나는 여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승무원이 몸을 돌렸을 때 조철봉이 최갑중에게 눈을 부라렸다.

“너, 나서지 마, 인마.”

“예?”

놀란 최갑중이 눈과 입을 딱 벌렸을 때 조철봉이 잇사이로 말한다.

“옆에서 끼어들지 말란 말이다. 내가 이야기할 시간을 가로채지 마.”

승무원은 여러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제서야 이해를 한 최갑중이 심호흡을 했다.

“또 감동을 받으셨군요.”

“나는 내일 죽는다고 해도 예쁜 여자를 보면 가슴이 뛸 것이다.”

“아이고.”

그때 쟁반에 주스잔을 놓고 승무원이 다가왔다.

 

승무원이 허리를 굽혀 옆쪽에 잔을 놓는 순간 조철봉의 시선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을 본 승무원이 허리를 펴면서 손으로 가슴 위쪽을 가렸다가 뗀다.

 

몸을 세운 승무원과 조철봉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때 조철봉은 승무원의 얼굴에 떠오른 희미한 웃음기를 보았다.

 

조철봉의 시선이 그다지 불쾌하지는 않다는 표시,

 

또는 정직한 관심 표현이 오히려 기쁘다는 의미 같기도 했다.

 

그때 조철봉이 묻는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습니까? 식사나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그 순간 옆에 앉은 최갑중이 앞에 꽂힌 책을 빼들었는데 거꾸로 들었다.

 

그런데 그대로 든 채 책을 펼치고 있다.

 

주춤했던 승무원이 고르고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저녁에 약속이 있는데요. 죄송해서 어쩌죠?”

“아니, 난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조철봉이 차분한 표정으로 승무원을 본 채 말을 잇는다.

“속으로만 끙끙 앓고 헤어졌다간 오래 후회할 테니까요.”

그러다가 마침내 최갑중을 흘겨보며 말한다.

“인마, 책 거꾸로 들었다.”

깜짝 놀란 최갑중이 눈의 초점을 잡았지만 책을 뒤집지는 않는다.

 

그 대신 잇사이로 말했다.

“압니다. 그림 보는 겁니다.”

그러자 승무원이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돌아섰다.

 

조철봉은 돌아서 걷는 승무원의 다리와 엉덩이를 노려보았다.

 

그것을 의식했는지 승무원의 걸음이 조금 어색해졌다.

 

앞쪽 모퉁이를 지나면서 승무원이 힐끗 이쪽을 보았는데 눈빛이 반짝였다.

 

그때 조철봉이 한숨과 함께 말한다.

“저렇게 섹시한 여자는 열심히 봐줘야 한다. 그게 예의야. 그냥 지나면 실례다.”

최갑중은 그제서야 책을 뒤집었다. 

 

 

(2245)갈등-20

 

 

인천공항에서 바로 소공동 안가로 직행한 조철봉은 모여 기다리고 있던

 

국정원 정보실장 이강준, 대한자동차 이윤덕 기조실 실장,

 

청와대 한영기 비서관에게 출장 보고를 한다.

 

조철봉은 북한 실세와 연결된 한국측의 유일한 인사인 것이다.

 

조철봉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이강준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한다.

“위원장 근황에 대해서 들으신 말씀은 없으셨죠?”

“예? 전혀.”

해놓고 조철봉이 긴장한 표정으로 묻는다.

“무슨 일 있습니까?”

“위원장이 입원했다는데 확인은 못했습니다.”

“무슨 병으로 말입니까?”

“글쎄, 자세히 모릅니다.”

머리를 기울였던 이강준이 말을 잇는다.

“위원장이 아파 누우면 지금까지 쌓아 놓은 일이 허사가 됩니다. 그게 걱정이 됩니다.”

그러고는 이강준이 지그시 조철봉을 보았다.

 

조 사장님이 한번 확인해 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이런 일을 해주실 분은 조 사장님뿐입니다.”

“제가 무슨.”

이맛살을 찌푸렸던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는다.

 

그러고 보면 이강준의 말이 맞다.

 

위원장이 없으면 모든 일은 헛것이 된다.

 

누가 대신 하겠는가?

 

회의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오후 5시 반이다.

 

모두 바쁘다 보니 제각기 밥도 안먹고 헤어졌으므로 조철봉은

 

최갑중이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올라 말했다.

“한잔 마시러 가자.”

“어디로 말씀입니까?”

그렇게 물었던 최갑중이 조철봉의 눈치를 보더니

 

곧 휴대전화를 꺼내 룸살롱에 예약을 했다.

 

그러고는 다시 묻는다.

“어디서 저녁은 먹고 들어가셔야죠?”

“설렁탕이나 먹지.”

대답했던 조철봉이 주머니에 든 휴대전화의 진동을 느끼고는 꺼내 보았다.

 

모르는 번호였으므로 머리를 기울인 조철봉이 휴대전화를 귀에 붙인다.

“여보세요.”

“조 사장님이시죠?”

맑은 여자 목소리. 정신이 맑아진 조철봉의 목소리도 달라졌다.

“예. 그런데요. 누구십니까?”

“저, 오늘 비행기에서.”

“아이구.”

앞자리 최갑중이 머리를 돌리고 볼 만큼 놀란 외침을 뱉고 나서

 

조철봉이 온 얼굴을 펴고 웃는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오늘 저녁에 시간이 나는 모양이지?”

조철봉이 대번에 말을 놓는다.

 

비행기에서 내릴 적에 명함을 주었던 것이다.

 

회사용 명함이다.

 

여승무원 이름은 김인경.

 

물어볼 것도 없이 가슴에 붙인 이름표를 보았다.

 

김인경과 약속을 하고 난 조철봉이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말한다.

“넌 이제 돌아가.”

“예. 형님.”

“하나가 틀어지면 다른 곳에서 일이 풀리는 법이지.”

“뭐가 틀어졌습니까?”

오늘은 갑중이 직접 차를 몰고 있었으므로 조철봉은 입맛을 다신 후에 대답한다.

“위원장이 어디 아픈 모양이야. 병원에 있다는데 나한테 알아보라고 하는구먼.”

“어, 그럼 큰일인데.”

놀란 최갑중이 백미러로 조철봉을 본다.

“그럼 누가 개성공단 일이나 핵 폐기를 합니까?”

“그게 문제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의자에 등을 붙인다.

 

위원장 혼자서 다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다.

 

독재정권은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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