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2. 갈등 (8)
(2240)갈등-15
조철봉이 룸살롱 ‘천지’에 들어섰을 때는 오후 9시5분 전이다.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게 사장은 여자였는데 반색을 하고 조철봉을 맞는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밀실로 안내하면서 사장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이 깜짝 놀란다.
“아니, 벌써.”
“30분 전에 오셨습니다.”
방문을 열자 이야기를 하고 있던 양성택과 강하성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탁자 위에는 이미 술과 안주가 놓였고 둘의 얼굴은 술기운이 덮여져 있다.
“어서 오시오.”
하고 강하성이 손을 내밀었는데 웃음 띤 얼굴이다.
노타이 셔츠 차림으로 손에 찬 금장 시계가 불빛에 번쩍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오. 우리가 너무 일찍 왔지요.”
양성택과는 오전에 만난 터여서 눈인사만 하고 조철봉은 자리에 앉았다.
사장이 주춤거리다가 그냥 나간 것은 아가씨를 어떻게 할 건가 지시를 받으려고 했던 것 같다.
조철봉은 늦게 온 벌로 둘이 연거푸 주는 위스키를 받아 마신다.
“저기, 내가 강 대장한테 대충 이야기를 했는데.”
하고 술잔을 쥔 채 양성택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긴장했다.
개성공단의 임차지 이야기일 것이다.
양성택이 말을 잇는다.
“군단장 서너 명이 아주 강골이라는 거요.
임차지를 내주는 것이 곧 영토를 떼어 주는 것으로 안다는구먼.”
그러더니 양성택이 제 말에 제가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맞는 말이지. 굶어 죽더라도 영토는 내놓지 못하겠다는 거요.”
“그 동무들은 아예 땅크를 밀고 남조선으로 내려가자는 겁니다.”
강하성이 말을 받는다.
“그것이 조국과 장군님께 충성하는 길이라는 것이오.”
“그게 말이나 되는….”
했다가 조철봉이 심호흡을 했다.
여러 번 북쪽 사람들과 만나면서 조철봉이 깨우친 사실이 있다.
조철봉이 남쪽의 사고와 습관에 젖어 있듯이 북쪽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북쪽에서 보면 남쪽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장군님에 대한 충성심도 남쪽에서 보면 기가 막히지만 북쪽은 전혀 그렇지 않다.
진심인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따지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그러니 서로 인정하고 부닥치는 수밖에 없다.
그때 양성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난 저녁 먹은 것이 탈이 난 것 같아서.
그럼 두 분이 아가씨들 불러 놀고 나오시라우요.”
그러고는 조철봉이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바람을 일으키며 방을 나가 버렸다.
“앉으시오.”
강하성이 조철봉에게 말하며 웃는다.
“배탈은 무슨 놈의 배탈. 나하고 조 사장님하고 둘만 남겨 두려는 작전이지.”
놀란 조철봉이 얼굴을 굳혔을 때 강하성은 말을 잇는다.
“조 사장 동무, 난 군인이오.”
“압니다.”
강하성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도 벙긋 웃는다.
더구나 대장이다. 무력부 총정치국장이면 군 서열로 다섯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그때 강하성이 말을 잇는다.
“그래, 날 설득해 보시오.
개성공단지구를 남조선 대한자동차에 임차지로 넘겨줘야 한다는 것을 말이오.”
강하성이 이제는 눈을 치켜뜨고 조철봉을 보았다.
눈빛이 강했으므로 조철봉은 시선을 내리면서 길게 숨을 뱉는다.
기싸움이면 내가 졌다. 그러나,
(2241)갈등-16
옛말에 말 많은 놈 믿을 게 못된다고 했지만 요즘 세상에는 안 통한다. 말만 잘해서 성공한 인간이 수두룩한 것이다. 조철봉 또한 거짓말을 진심처럼 보이려고 온갖 술수를 다 부렸지 않은가? 그러나 막상 날 설득해 보라면서 딱 버티고 앉은 강하성을 보고 나니 저절로 어깨가 늘어졌다. 본인의 이익, 나아가 생활, 더 나아가 가족의 운명까지 걸린 사안이 되면 진실 따위는 뭉개버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보라, 강하성은 북한 인민군 대장이며 최고 권력자 중 하나이다. 뭐가 아쉽겠는가? 지금 강하성에게 양보, 화합, 민족, 통일 따위를 늘어놓아야 쇠귀에 경 읽기. 조철봉은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반면교사로 강하성의 자세를 추측한다. 강하성의 시선을 받으면서 조철봉도 한모금 술을 삼켰다. 지금 강하성이 제일 두려워 하는 것은 위원장의 신임을 잃는 상황일 것이다. 오직 그것뿐이다. 그래서 강골임을 내세우면서도 양성택의 초대를 받아 사복 차림으로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닌가? 인간은 다 하나둘씩 약점이 있다. 이것 또한 조철봉이 살아오면서 배운 진리다.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강하성이 눈을 둥그렇게 뜬다. 실망한 표정이다. 대장님,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위원장님이 제시하신 조건이 아니어도 투자를 못할 겁니다. 주주들이 들고 일어날 테니까요.” 내 능력으로는 턱도 없다는 걸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어려울 때 연결이 될 수 있는 북한군 실세를 알아두라는 정도로 말씀입니다.” 저도 한국 정부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는 잘 모릅니다. 저도 연결자 또는 이용물일 뿐이지요.” 제가 동의 안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제 자신의 분수를 잘 아는 인간이 출세한다. 강하성이 이만큼의 위치에 오른 것도 제 분수를 알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충성은 그 다음이다.
세상에 진정이 통하지 않는 경우 또한 얼마나 많은가?
나 또한 아쉬울 것이 없는 것이다.
“개성 공단에 대해서 각각 나름대로 입장이 있을 테니까 그 이야기는 안할랍니다.”
“허어, 그래요? 그렇다면.”
“아마 저하고 대장님이 이곳에서 둘이서 만나는 게 위원장님께 보고가 되겠지요?”
그러자 한동안 조철봉을 쏘아보다 강하성이 입술 끝을 올리며 웃는 시늉을 한다.
“그래서요?”
시인도 부인도 아니다. 신중하다. 조철봉이 강하성처럼 웃어 보였다.
“아마 위원장님의 허락을 받고 우리 둘의 만남이 이뤄졌다고 봐도 될 겁니다.
이제는 강하성이 눈만 껌벅였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대한자동차는 개성 공단지구를 임차지로 주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을 겁니다.
강하성의 이맛살이 찌푸려졌지만 조철봉은 상관하지 않는다.
“위원장님은 내가 대장님을 설득시키기를 기대하실까요? 아니죠,
“아니, 조 사장님. 그렇다면….”
그러자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내가 대장님께 설득당할 리도 없구요. 그럼 뭐겠습니까?”
강하성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빙그레 웃는다.
“저는 둘이 그냥 친해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으음.”
눈을 가늘게 뜬 강하성이 신음 같은 헛기침을 뱉었을 때 조철봉이 빙긋 웃는다.
“이미 큰 그림은 위원장님이 그려놓으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 그렇지요.“
마침내 강하성이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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