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3. 갈등 (9)
(2242)갈등-17
강하성과 헤어졌을 때는 밤 10시 반이 되어갈 무렵이다.
아가씨를 나중에 불렀지만 강하성은 말할 것도 없고 조철봉도
흥을 낼 기분이 아니어서 남은 술만 마시고 나서 일어난 것이다.
사업 이야기 등으로 먼저 진을 빼고 났을 때 이런 경우를 종종 겪어본 조철봉이다.
강하성을 먼저 보낸 조철봉 앞으로 차가 멈춰섰다.
뒷좌석에서 내린 최갑중이 문을 열고 조철봉을 맞는다.
최갑중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찍 끝나셨네요?”
나란히 앉은 최갑중이 힐끗 운전사의 뒤통수에 시선을 주고 나서 묻는다.
조철봉이 머리만 끄덕이자 최갑중이 다시 묻는다.
“저기, 식당에 가 보시겠습니까?”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최갑중이 쓴웃음을 짓는다.
“이 사장이 오늘 늦더라도 들르시라고 했거든요.
정옥희씨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씀입니다.”
“얀마.”
심호흡부터 하고 난 조철봉이 최갑중을 쏘아보았다.
“내가 뭘 바라고 그렇게 해준 것 같으냐?”
“아니죠.”
정색한 최갑중이 머리를 젓는다.
“그건 저도 알고 이 사장도 압니다.”
지금 최갑중은 이수동의 식당 안채로 옮겨간 정옥희한테 가보자고 하는 것이다.
최갑중이 말을 잇는다.
“하지만 말입니다. 정옥희씨 입장이 되면 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뭐가 달라져?”
했지만 더이상 조철봉도 추궁하지 않았으며 최갑중도 말을 잇지 않는다.
그러자 최갑중이 운전사에게 말한다.
“저기, 대동강 식당으로 가지.”
“예, 사장님.”
옌지에도 대한자동차 사무실이 있다.
대한자동차에서 파견된 사원이 조철봉의 차량 서비스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차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 미리 연락을 받은 이수동이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이수동의 안내를 받고 안채로 들어선다.
“안에 술상을 차려 놓았습니다.”
이수동의 방으로 다가가며 말했을 때 최갑중이 마당에서 주춤 멈춰섰다.
“왜?”
조철봉이 묻자 최갑중이 이수동을 힐끗거리면서 대답했다.
“먼저 들어가 계시지요. 전 이 사장하고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잔소리 말고 따라와.”
눈을 치켜뜬 조철봉이 말하고는 다시 발을 떼었다. 뻔한 수작이다.
아까 룸살롱에서 양성택이 배가 아프다면서 나간 것하고 비슷한 작태인 것이다.
방으로 들어선 조철봉은 술상을 정돈하고 있는 정옥희를 본다.
방 안은 깔끔했고 넓었다.
아랫목의 깨끗한 이부자리에는 인옥이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럼 술 드시지요. 저는 조금 있다가.”
하면서 주인 이수동이 방을 나가버렸으므로 조철봉과 최갑중은 술상 앞에 앉는다.
정옥희는 둘에게 머리만 숙여 인사를 했는데 얼굴이 상기되었다.
반팔 셔츠에 밝은색 면바지를 입었고 흰 양말을 신었다.
“어때요? 사실만 해요?”
하고 먼저 물은 건 최갑중이다.
그러자 상머리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정옥희가
흠칫 놀라더니 머리를 숙인 채로 대답했다.
“네, 행복합니다.”
그 순간 조철봉의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사람은 가끔 평범한 단어 한마디에 감동을 받는 때가 있다.
조철봉에게는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인 것 같다.
(2243)갈등-18
“이제 계획을 세우고 사셔야지.” 조철봉도 겪어봐서 안다. 사람 욕심이란 끝이 없다. 굶지만 않기를 바랐다가 배가 불러지자 초심을 잃고 온갖 욕심을 다 부리더니 인생을 마친 인간을 여럿 보았다. 적당한 욕심은 인간에게 활력과 발전의 동기를 주지만 탐욕은 망치는 지름길이다. 머리를 든 정옥희가 처음으로 조철봉과 시선을 마주친다. 밤 11시가 넘어 있어서 주위는 조용하다. 그때 방안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최갑중이 조철봉에게 묻는다. 조철봉도 사업을 해봐서 알지만 거래 관계에 있어서 요즘 잘 쓰는 윈윈(win-win)이 바람직하다고들 한다. 하나 그건 장사를 안해본 사람들의 그럴듯한 립서비스일 뿐이다. 양쪽 다 잘되는 거래란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부분을 거의 비슷하게 가져간다는 말이나 같다. 그 이득 부분을 저울로 달아 균형을 맞추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양측 모두 양보하는 자세가 있어야 그 망할 윈윈이 성립되는 것이다. 가볍게들 윈윈 해 쌓는데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피가 마른다. 그래서 학자들이 정치나 경제 일선에 나서면 실무자들이 말라죽는다. 조철봉이 가만 있었으므로 최갑중은 말을 이었다. 개성 공단 구역도 화끈하게 대한자동차에 넘겨야 됩니다. 그럼 완전히 만루 홈런을 때린 것이 됩니다.” 그러고는 머리를 돌려 정옥희를 보았다. 재채기를 하면서 삼킨 술을 뱉었다. 그 와중에도 정옥희의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졌다. 시선을 상 위에 내린 정옥희가 꼼짝 않고 앉아있는 반면에 최갑중은 옷에 묻은 술을 닦다가 숟가락까지 떨어뜨렸다.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그래서 부탁 드리는 건데, 싫다면 거절해도 됩니다. 전혀 여기 계시는 것 하고 상관이 없으니까요.” 오래 전에 써먹던 방법을 조철봉이 사용하고 있다. 생각도 없으면서.
술잔을 든 조철봉이 말했다.
“예. 은혜에 보답하려면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뭐, 은혜라고 할 것까지야….”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술잔을 내밀어 최갑중이 따라주는 소주를 받는다.
이곳 안체는 두 동인데 식당 옆 본채에서 이수동 가족이 살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 잘 끝났습니까?”
“이제 시작된 거야.”
짧게 잘랐던 조철봉이 힐끗 정옥희에게 시선을 주고 나서 말을 잇는다.
“서로 맞춰 가야겠지.”
“가능성은 있습니까?”
“이게 마지막 기회야. 개성 공단이 살아날 마지막 기회라고.”
최갑중이 입을 다물었고 조철봉은 한모금에 소주를 삼켰다.
“북한이 개성을 홍콩처럼 내주어야 할 텐데요.”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삶는다고 최갑중이 정색하고 말한다.
“이번에 위원장님이 제주 정상회담에서 한국사람 속을 풀어 준 것처럼
“말처럼 쉬운 게 아냐. 인마.”
가볍게 나무란 조철봉이 최갑중의 잔에 술을 따른다.
“저기, 내가 옌지에 자주 오는데, 올 때 여기서 자고 가도 되겠지요?”
그 순간 최갑중은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다가 숨구멍에 몇방울이 떨어진 것 같다.
“내 와이프가 몸이 부실해서 성관계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자 정옥희가 번쩍 머리를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할게요. 진심으로 말씀 드립니다. 저도 의지할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때서야 진정한 최갑중이 길게 숨을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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