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 갈등 (6)
(2236)갈등-11
“한국에서 오셨지요?”
여자가 되물었으므로 대답은 최갑중이 했다.
“그래요. 근데 왜 그러시오?”
“저는 탈북자입니다.”
엉거주춤 일어선 여자가 주위를 살피면서 다가와 섰다.
차림은 깨끗한 편이다. 여자의 바지를 꽉 움켜쥔 채 따라온 아이의 입성도 깔끔했다.
가깝게 다가온 여자의 얼굴도 단정했다.
단발머리여서 20대 후반쯤으로 보인다.
조철봉 앞에 선 여자가 다시 주위를 살피더니 말을 잇는다.
“아이하고 둘이 탈북했는데 안내원한테 사기를 당해 여기에 숨어 있었습니다.”
또박또박 말한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철봉은 시선만 주었고 최갑중이 다시 묻는다.
“언제 탈북하셨는데?”
“오늘로 사흘째가 됩니다. 선생님.”
그러자 최갑중이 머리를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그때 조철봉이 여자에게 물었다.
“아이 아버지는?”
“병으로 죽었습니다.”
여자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안내원이 일할 곳도 찾아주고 아이하고 살 집도 구해준다고 해서 넘어왔더니
중국 남자한테 절 팔아넘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하고 도망쳐서 이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아줌마도 참.”
듣던 최갑중이 혀를 찼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 마음 좋은 놈이 어디 있어?
아줌마가 거짓말을 하거나 바보거나 둘 중 하난데 바보 같지는 않네.”
“그 안내원이 아는 언니 친척이었습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닦은 여자가 시선을 내렸다.
“제가 바보였지요. 친한 언니 친척이라고 믿었거든요.”
“아가, 네 이름이 뭐냐?”
하고 최갑중이 불쑥 아이에게 묻자 여자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인옥입니다.”
그러나 아이가 또렷하게 말했으므로 조철봉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최갑중이 다시 아이에게 묻는다.
“엄마가 어떤 아저씨 따라왔니?”
“나쁜 아저씨요.”
눈을 크게 뜬 아이가 말을 잇는다.
“그 아저씨가 담배 사러 나갔을 때 엄마하고 도망쳤어요.”
머리를 끄덕인 최갑중이 여자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표정이 부드러워져 있다.
“그놈, 조선족이오?”
“네. 장사를 한다고 자주 우리 동네에도 왔었습니다.”
그러자 입맛을 다신 최갑중이 다시 조철봉에게 시선을 주고 나서 묻는다.
“우리한테 뭘 도와달라는 겁니까?”
“돌아가겠어요.”
다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은 여자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디로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돈도 한 푼도 없고, 무작정하고 이곳으로 숨어들었거든요.”
그러자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처음에 중국으로 넘어와서 뭘 하려고 했지요?”
“여기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요?”
“내 딸자식 잘 먹이고 잘 입히고 잘 가르치려고….”
“한국으로 갈 생각은 안 하셨고?”
“네.”
바로 대답한 여자가 조철봉의 눈치를 살폈다.
“거긴 가기도 힘들고 좋지 않다고 해서.”
(2237)갈등-12
여자 이름은 정옥희. 함경북도 회령 근처에서 인민학교 교사로 있다가
3년 전 발전소 기술자였던 남편이 폐병으로 죽은 후에 자신도 폐병으로 1년을 앓았다고 했다.
몸이 회복은 되었지만 복직이 안 되었고 배급도 끊겨 회령의 친정집 도움으로 겨우 연명했는데
연초에 친정어머니까지 죽었다는 것이다.
그 후부터 화물트럭의 운전사로 복무하는 친정 오빠의 도움도 끊기자 정옥희는
탈북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했다.
정옥희 모녀는 지금 최갑중의 방에 들어와 있다.
딸 인옥은 방에 있던 과자를 다 먹고 중국 라면까지 끓여 먹였더니 금방 잠이 들었다.
소파에 누워 자는 인옥의 얼굴에는 어떤 근심 걱정도 끼어 있지 않았다.
정옥희의 이야기가 끝났을 때 조철봉이 물었다.
“돌아가면 뭘 하고 살 겁니까?”
“그냥.”
했다가 정옥희가 똑바로 조철봉을 보았다.
“선생님은 여기 자주 오십니까?”
“뭐, 그런 편이지요.”
조철봉이 건성으로 대답했지만 정옥희는 시선을 떼지 않는다.
“저, 어디 일할 곳이 없을까요?”
그렇게 묻는 정옥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최갑중을 보았다.
그러자 최갑중이 보라는 듯이 입맛을 다신다.
정옥희가 말을 이었다.
“돌아가도 막막합니다.
이미 도망친 것이 발견되었을 테니 돌아가면 변명을 해야 되겠지만 아무래도….”
“여기서 살기도 쉽지 않을 텐데. 공안한테 잡히면 바로 북송되던데.”
“그럼요.”
대답은 최갑중이 했다. 외면한 최갑중이 말을 잇는다.
“조선족 정보원이 밀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던데요.”
“우리 아이를 위해서라면 중국인하고 결혼해서 살 수도 있습니다.”
정옥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각오도 하고 넘어왔습니다.”
“결혼해도 공안한테 잡히면 북송된다고 합디다. 신문에서 봤어요.”
최갑중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조철봉은 헛기침을 하면서 일어섰다.
“어쨌든 정옥희씨는 오늘 밤 여기서 주무시고.”
조철봉의 시선이 최갑중에게로 옮겨졌다.
“내일 아침에 다시 상의하기로 하지.”
“감사합니다.”
따라 일어선 정옥희가 허리를 꺾어 절을 했다.
“오늘 밤 재워 주신 것만 해도 너무 고맙습니다.
내일 아침에 바로 나가겠습니다.”
방을 나온 조철봉의 뒤를 최갑중이 따라 나왔다.
복도에서 마주 보고 섰을 때 최갑중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한다.
“형님, 내일 아침에 국경으로 가는 차편 알아봐주고 돈 좀 줘서 내보내지요.”
최갑중의 표정이 단호해졌다.
“저런 여자가 어디 하나둘입니까?
더구나 우린 지금 내일 양 부장하고 큰일을 상의해야 되지 않습니까? 만일.”
“만일 뭐 말이냐?”
말꼬리를 잡은 조철봉에게 놀란 듯이 최갑중은 눈만 크게 떴다.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인마, 내가 왜 눈치 봐야 돼?
저런 꼴로 만든 사람들이 우리 눈치를 봐야지. 안 그러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조철봉의 반응이 의외였는지 최갑중이 우물쭈물했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넌 내일 시내 백화점에 가서 저 모녀 옷이나 사 입혀.
넌 별로 할 일 없으니까 내일은 저 모녀하고 놀아. 손은 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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