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 갈등 (1)
(2226)갈등-1
“어디,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소?”
두 대장과 헤어져 1층 로비에 섰을 때 양성택이 말했다.
밤 10시반이 되어가고 있다. 오늘 밤은 아가씨를 부르지 않았기 때문에
술은 많이 마셨지만 빨리 끝난 셈이었다.
그러나 할 이야기는 다 했다
“앞으로 저 두 대장이 합작사업을 책임지게 될 테니까 자주 만날 겁니다.”
목소리를 낮춘 양성택이 말을 잇는다.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이 대장은 온건하고 강 대장은 강성이오,
둘 다 충성심이 강한 데다 위원장 동지의 신임을 받고 있지요.”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을 때 로비 안으로 여자 하나가 들어섰다.
숏커트한 머리에 단정한 투피스 정장 차림이었는데 눈이 번쩍 떠질 만큼 미인이다.
여자는 로비 기둥 옆에 서 있는 그들을 향해 곧장 다가온다.
긴장한 조철봉이 여자한테서 시선을 떼고 양성택을 보았다.
그러자 양성택이 벙긋 웃었다.
“적적하실 것 같아서.”
순간 깜짝 놀란 조철봉이 다급하게 말했다.
“부장님, 안 됩니다. 저는.”
“사양하지 마시오.”
그때 다가선 여자가 양성택을 향해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긴장한 듯 얼굴이 굳어졌고 볼이 상기되었지만 입을 열지는 않는다.
“응, 조 사장님 잘 모셔.”
양성택이 그렇게 말하더니 조철봉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미인계 쓰는 것 아니니까 걱정 마시고, 내일 점심 같이하십시다.
그동안 저 동무하고 구경이나 다니시든지.”
하더니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참, 조 사장님은 그런 거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걸 잊었구먼.”
그러고는 양성택이 몸을 돌렸으므로 조철봉은 한 걸음 뒤를 따르다가 멈춰섰다.
양성택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여자를 보았다.
그때 여자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김미옥입니다.”
“응, 나, 조철봉이야.”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여자가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으므로 조철봉이 한 걸음 다가섰다.
여자한테서 옅은 향내가 맡아졌다.
“무슨 말을 들었는데?”
“예, 통일을 위해 애쓰시는 남조선 동지라고 들었습니다.”
“나 같은 사람 많이 만났어?”
“아닙니다. 처음 뵙습니다.”
조철봉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로비는 어느새 텅 비었다.
이쪽에서 프런트는 보이지도 않는다.
발을 뗀 조철봉의 옆으로 김미옥이 따라 걷는다.
“지금 뭘 하고 있지?”
엘리베이터 앞에 선 조철봉이 묻자 김미옥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한다.
“영어 통역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으음.”
대번에 기가 죽은 조철봉이 헛기침을 하고는 마침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그러나 심보가 꼬이지는 않아서 저보다 많이 배우고 유식한 상대한테
반감부터 일어나지는 않는다.
엘리베이터에 탄 김미옥이 9층 버튼을 눌렀으므로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김미옥은 이미 방 번호까지 알고 있을 것이었다.
돌려보낼 마음이 사라진 대신 가슴이 답답해졌다.
방으로 들어섰을 때도 그렇다.
뒤를 따라온 김미옥이 방의 자물쇠를 채우고 체인까지 걸어 문단속을 해준 것이다.
그래서 저고리를 벗은 조철봉이 김미옥에게 건네주면서 물었다.
“진짜 손님 접대는 처음 하는 거야?”
처음이라면 내가 부담이 되어서 그런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해봐.“
(2227)갈등-2
그러자 김미옥이 굳어진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예, 처음입니다.”
김미옥의 얼굴이 상기되었고 목소리도 떨렸다.
조철봉이 넥타이를 풀어내고 셔츠를 벗어 소파 위로 던졌다.
처음이면 어떻고 열 번이면 무슨 상관인가?
로비에서 양성택의 위로를 받긴 했지만 강하성을 상대하느라고
긴장했던 신경이 늘어지면서 온몸이 무거워졌다.
김미옥에 대해서는 전혀 불만이 없다.
저만한 미모에 체격이면 최고급 수준이다.
다만 갑자기 나타나 놀랐을 뿐이다.
그때 김미옥이 셔츠와 넥타이를 집으면서 말을 잇는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가겠습니다.”
“아냐, 그건 아니라고.”
털썩 소파에 앉은 조철봉이 김미옥을 보았다.
지친 얼굴이다.
“넌 마음에 들어. 나한테 과분할 정도의 여자야.”
“감사합니다.”
옷장에 옷을 건 김미옥이 가운을 들어 조철봉에게 내밀었다.
“바지 벗으시고 가운으로 갈아입으시지요. 사장님.”
“김미옥씨는 애인 있어?”
조철봉이 다시 묻는다.
이것도 곤란한 질문이겠지만 김미옥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때 김미옥이 대답한다.
“예, 있습니다.”
“뭐하는 사람이야?”
“러시아에 유학가 있습니다.”
“음, 그래?”
러시아에 유학갈 정도면 성분이 좋은 사내다.
귀국하면 출세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술기운이 오른 데다 피곤했으므로 조철봉은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가볍게 샤워만 하고 나왔다.
그때까지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김미옥이 일어서더니 조철봉과 엇갈려 욕실로 들어간다.
조철봉은 가운을 벗어 던지고는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저절로 긴 숨이 뱉어졌다.
여자하고 같이 호텔방에 들어오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가슴이 뛴다.
여자가 씻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인 것이다.
어떤 여자는 5분도 안 되어서 나오는가 하면 30분이 넘었던 경우도 있었다.
가슴이 뛰고 입안이 마르는 순간이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 기다림의 감동이 많이 식어지긴 한다.
한동안 천장을 보며 누워 있는 조철봉의 귀에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곧 방안의 불이 꺼지면서 구석쪽 스탠드의 불빛만 남았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침대 시트가 젖혀졌다.
침대가 출렁대면서 옆으로 다가온 김미옥이 몸을 눕혔다.
상큼한 비누 냄새가 맡아졌고 몸에 닿는 김미옥의 피부는 차다.
조철봉은 머리를 돌려 김미옥을 보았다.
김미옥은 가운 차림으로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다.
그것이 마치 집도의의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 같았다.
몸만 마취된 상태의 환자, 조철봉이 상반신의 절반만 비스듬히 일으켜 김미옥을 내려다본다.
스탠드의 불빛이 이리저리 반사되어 김미옥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까지 드러났다.
시선이 마주쳤을 때 김미옥의 얼굴은 더 굳어졌다. 그때 조철봉이 말했다.
“난 잡놈이다. 잡놈이 무슨 뜻인지 김미옥씨는 잘 알 거야.”
김미옥은 뱀에게 잡힌 쥐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진다.
“잡식성이지. 여자에 대해서는 미추를 가리지 않고 다 상관했어, 하지만.”
조철봉이 김미옥의 이마 위에 흩어진 머리칼을 손끝으로 쓸어 올렸다.
“돼지 접붙이는 것처럼 섹스하는 건 싫어. 내가 내킬 때 하고 싶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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