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3. 공존 (12)
(2222)공존-23
대한자동차가 북한에 공장을 설립할지 모른다는 추측기사가 보도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쯤 후였다.
이것을 대한자동차와 정부, 그리고 조철봉이 계획하고 터트린 것이다.
국내외 여론이나 각국의 반응 등을 체크하는데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 측의 반응도 포함이 된다.
그러자 여론이 난리가 났다.
그 정보를 흘린 당사자가 조철봉으로 밝혀진 후에는 회사에 나가지도 못할 정도가 되었다.
회사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의상 집까지 찾아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식구들이 시달리지는 않았다.
“여론은 일단 지지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조철봉의 사무실에 모여 앉은 김경준이 먼저 보고서를 읽는다.
정보를 언론사 측에 흘린 것은 한국 측이 적극 수용의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론 동향도 예측을 해놓았는데 조철봉 측에서는 김경준이 이번 작업을 지휘했다.
“3개 여론조사 기관의 통계를 평균해보면 북한에 대한자동차 공장을 세운다에
찬성 여론이 54%, 반대가 38%, 무응답이 8%입니다.”
김경준이 말을 이었을 때 옆쪽에 앉은 민유미가 거들었다.
“하지만 북한이 공장용 부지를 임차지로 내주고 대한자동차에 모든 권한을 일임한다는
조건 하에서 그만큼의 찬성비율이 나온 거죠.”
그러고는 민유미가 말을 잇는다.
“개성공단식의 운영이라면 98%가 대한자동차의 공장 설립에 반대했습니다.”
조철봉은 위원장이 내세운 조건까지 언론에 다 말한 것이다.
그래놓고 그런 조건이라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그러자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반대 여론이 38%나 돼. 북한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지.”
“그동안 어디 믿을 만한 짓이나 했습니까? 맨날 깽판만 쳤으니까 그렇죠.”
하고 최갑중이 투덜거렸다. 최갑중은 단순하다.
그리고 이 방에 둘러앉은 넷 중 가장 대한민국 국민 여론에 가까운 사고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조철봉은 위원장과 너무 가깝고 김경준은 정치적인 득실을 너무 따지는 성품이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세금 따지기 좋아하는 최갑중이 말을 잇는다.
“그동안 위원장 쫄다구들이 개판을 쳤다고 믿고 이젠 위원장이 직접 나섰으니까
마지막으로 믿어 보자는 거죠.”
그러더니 최갑중이 조철봉을 바라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사장님이 언젠가 저한테 말씀하셨죠.”
“뭘 말야?”
“아, 회사가 망하려면 부처님 부장에 호랑이 사장이 있는 조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던가?”
“부장이 생색내고 다 해 처먹으면 사장이 으르렁대면서 챙긴다구요. 그럼 꼭 망한다고 하셨죠.”
“그래서?”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묻자 최갑중이 헛기침을 한다.
“북한은 그 반대였어요. 잘 굴러가는 회사 조직이었죠.
호랑이 부장에 부처님 사장이었으니까요.”
“위원장이 부처님이냐?”
“아, 마지막에 생색 짠 하고 냈지 않습니까? 그런 부처님이 없죠.”
모두 입을 다물었고 최갑중의 말이 이었졌다.
“밑에 쫄다구들은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고 말입니다. 하지만.”
심호흡을 한 최갑중이 정색했다. 최갑중이 이렇게 말 길게 하는 건 드물다.
“이게 마지막 기회죠. 이번에 실수하면 끝장납니다.”
(2223)공존-24
대한자동차의 북한 공장 설립에 대한 기사가 나온 다음날 오전,
조철봉은 다시 개성을 통해 육로로 평양을 방문한다.
통전부장 양성택이 만나자고 했기 때문이다. 평양에 도착한 조철봉은
고려호텔 특실에 딸린 회의실에서 양성택과 마주앉았다.
이곳은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어도 기자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조철봉은 새장에서 풀려난 새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말을 누가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사람마다 입장이 다 다른 법이다.
양성택이 입을 열었다.
“조 사장께서 대한자동차의 사장급 고문이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것도 공식 발표는 안되었지만 언론에 추측기사로 보도가 되었다.
물론 다 짜고 흘린 것이다. 양성택이 말을 잇는다.
“그런데 조 사장께선 아직 우리 군에 계신 동지들을 잘 모르시지요?”
“예, 그건.”
긴장한 조철봉이 양성택을 보았다.
난데없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외우고 있는 북한군 실세가 한 사람도 없다.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한 조철봉으로서는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붙인
북한군 장군들을 보면 괜히 가슴만 답답했었다.
그때 양성택이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 저녁에 군에 있는 동지 둘을 초대했으니까 넷이 같이 저녁을 드십시다.”
오늘 만나자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을 때 양성택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떠올랐다.
“위원장님께서 지시한 겁니다.”
“아아, 예.”
“조 사장님이 군에 있는 동지들과 친교를 쌓아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아, 예.”
“임차지 문제로 군에서 반발이 큽니다.
오늘 저녁에 만나실 두 분 중 한 분이 그 반대파 중 핵심 인물이란 말입니다.”
“아아.”
“그 동지도 조 사장님께 여러 가지 묻고 싶은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눈만 껌벅이는 조철봉을 향해 양성택이 웃음띤 얼굴로 말했다.
“허심탄회하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그 동지도 조 사장같은 분을 만나는 것이 처음이란 말입니다.”
“허심탄회하게 뭘 말씀입니까?”
“조 사장님이 생각하고 계신 것 말씀입니다.
우리 위원장님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시면 됩니다.”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한국에서도 북한은 군의 강경책에 밀려서 대남 정책이 번번이 바뀌어졌다고 들어온 조철봉이다.
그것을 오늘 밤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확인할 일이 있다. 머리를 든 조철봉이 묻는다.
“저한테 군의 실세를 설득시키라는 말씀은 아니시죠?
제가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으셨다면 큰 실수를 하신 건데….”
“아니, 그것보다.”
쓴웃음을 지은 양성택이 손을 젓는다.
“앞으로 그 두 분은 자주 뵙게 될 테니까
조 사장께서 미리 인사를 하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러더니 양성택도 심호흡을 하고 나서 덧붙였다.
“잘 아시겠지만 이곳에서도 강경 일변도로 나가는 것이 충성이고 애국이며
위대하신 위원장 동지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단 말입니다.”
양성택이 혼잣소리처럼 말을 잇는다.
“그분들께 현실을 조금씩 알려 드리려는 목적도 있단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마침내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만나뵙지요.”
뒤가 든든한데 그쯤이야 못할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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