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4. 공존 (13)
(2224)공존-25
그날 저녁, 고려호텔 지하 1층의 가라오케 겸 룸살롱 특실에 네 사내가 둘러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술과 안주가 가득 놓여졌고 넷은 서로 인사를 마친 상태.
조철봉과 양성택이 나란히 앉은 앞쪽에 양복 차림의 두 사내가 앉았다.
둘 다 60대 초반쯤으로 왼쪽 둥근 얼굴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인민무력부 총참모장인
이정만 대장, 오른쪽의 미남형 사내가 인민군 총정치국장 강하성 대장이다.
양성택의 말로는 둘 다 인민군의 실세이며 위원장의 측근이라는 것이다.
“우리, 지난번에 한번 만났지요?”
하고 먼저 이정만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이 굳었던 얼굴을 펴고 웃는다.
본 기억은 난다. 위원장의 초대를 받았을 때인 것 같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예, 뵌 기억은 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강하성이 입을 열었다.
“북남 사업에 애쓰고 계십니다.
이번에 대한자동차 사장급 자문을 맡으셨더군요.”
“예, 부족합니다만….”
“가능성이 있을까요?”
하고 강하성이 불쑥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긴장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묻는다.
“뭐가 말씀입니까?”
“공장 설립 말씀입니다.”
그때 양성택이 나섰다.
“자, 여자가 없어서 분위기가 딱딱한데, 한잔씩 마시고 이야기합시다.”
술병을 든 양성택이 먼저 조철봉의 잔에 술을 채우고 이정만, 강하성의 순서로 따랐다.
술잔을 쥔 조철봉은 감을 잡았다.
군 서열은 이정만이 높으며, 강성(强性)으로 따지면 강하성이 높다.
군 내부의 강온 양 세력의 대표가 와있다.
조철봉이 한모금에 위스키를 삼키고는 입안에 남은 더운 기운을 길게 뱉었다.
그때 이번에는 이정만이 말했다.
“이번에 대한자동차 공장이 북한 땅에 설립되면 북남관계에 큰 진전이 올 것입니다.
우리도 기대가 큽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철봉이 화답했을 때 다시 강하성이 입을 열었다.
“남측 언론보도를 보니까 공장부지를 남조선 영토처럼 표현했던데
그건 우리 위대하신 장군님의 선의를 역이용한 반동들의 공작적 행위라고 보는데.
조 사장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입을 열었던 조철봉이 옆쪽 볼에 양성택의 시선을 느끼고는 심호흡을 한다.
그러나 양성택은 입을 열지 않는다.
앞쪽 두 장성도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그런 것 없습니다.”
해놓고 조철봉이 똑바로 강하성을 보았다.
그 순간 조철봉은 강하성의 얼굴에서 위원장의 모습을 보았다.
위원장의 또다른 모습이 이곳에 있는 것이다.
“대장님은 먼저 이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대한자동차는 아쉬울 것이 없는 입장입니다.
북한이 아니더라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대한자동차 공장을 받아들이려고
로비까지 해오는 상황이거든요.”
강하성의 이맛살이 조금 찌푸려졌고 이정만은 술잔을 들었다가 놓았다.
옆쪽의 양성택은 기척도 내지 않는다.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이 작업은 위원장님께서 직접 부탁하신 것입니다.
약속도 하셨구요.
그런 약속이 없었다면 대한자동차는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개성공단처럼 운영된다면 안 된다는 것을 위원장님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위원장 약발이면 만병통치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지 않은가?
조철봉의 표정은 단호했다.
(2225)공존-26
그때 강하성이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눈빛이 강하다.
“민족을 위해서 꼭 그런 조건을 따져야만 합니까?
우린 같은 민족입니다.
아마 많은 남조선 인민들도 우리 생각과 같을 것입니다.
평화 공존을 위해서는 서로 양보하고 희생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너무 제 이득만 따지는 것은 도리에도 어긋나고 양국 관계에 이롭지 않습니다.”
그러자 조철봉이 길게 숨을 뱉는다.
배운 것이 짧은 터라 본래 토론에는 관심도 경험도 없었던 조철봉이다.
위원장이나 양성택이 이 군인들을 설득시키라고 이 자리를 만들었다면 잘못된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순간 조철봉은 잠자코 자신의 잔에 술을 채워주는 양성택의 모습을 보고는 머리를 든다.
위원장이 자신을 자주 부른 것은 많이 배워서, 사업에 크게 성공한 사업가여서가 아닌 것이다.
남조선의 가장 표본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어금니를 물었다가 푼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속에 있는 말을 그대로 뱉자,
그것이 위원장의 계산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저도 민족 따지지 않습니다. 요즘 들어서야 아, 민족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민족을 위해서 뭘 하라면 내가 집안 식구 챙기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민족이야? 했지요.”
강하성의 눈빛이 더 강해졌지만 입을 열지는 않는다.
방안은 조용했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민족, 민족, 해쌓는 사람들은 정치인이거나 저기, 거시기,
북한편에 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저도 생각했지만 북한식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경찰한테 돌멩이 던지면서 반정부 투쟁하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일 걸요?
북한에서 그랬다가는 당장 총 맞지 않겠습니까?
다 그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 조 사장께서는.”
강하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한민족 통일을 위해 이 일을 하시는 게 아닙니까?”
“전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눈을 치켜뜬 조철봉이 똑바로 강하성을 보았다.
이제는 겁 따위는 나지 않는다.
뒤에 위원장이 있기도 했지만 이 잘난 대장놈한테
자극을 주고 싶은 충동으로 온몸에 열이 오른다.
“전 위원장님을 존경합니다.
왜냐? 위원장님이 절 선택해주셨고 잘해주셨기 때문이죠,
그 덕분에 유명인사가 되면서 떡고물도 꽤 챙겼습니다.
그래서 한국 대통령보다 위원장님을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고 있지요,
전 이런 인간입니다.”
앞에 놓인 술잔을 들어 한 모금에 삼킨 조철봉이 입을 딱 벌리고 나서
안주도 먹지 않고 말을 잇는다.
“하지만 조국을 배신하지는 못하지요, 내 조국은 한국입니다.
그것을 위원장님도 알고 계실 겁니다.“
“자, 술 한잔.”
하고 양성택이 웃음 띤 얼굴로 다시 술을 권했으므로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는다.
시선을 내린 강하성도 술잔을 들었다.
그때 이 장관이 말했다.
“조 사장님, 대단하십니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이정만이 술잔을 들고 웃는다.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납시다.”
“저도 그런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때 강하성이 여전히 굳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우린 조국을 위하여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오.
조 사장께선 그런 각오는 부족하신 것 같습니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인다. 맞다. 넌, 군인이니까.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826. 갈등 (2) (0) | 2014.10.10 |
---|---|
825. 갈등 (1) (0) | 2014.10.10 |
823. 공존 (12) (0) | 2014.10.10 |
822. 공존 (11) (0) | 2014.10.10 |
821. 공존 (10) (0) | 2014.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