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15. 공존 (4)

오늘의 쉼터 2014. 10. 10. 08:00

815. 공존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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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승용차 편으로 개성을 통해 돌아온 조철봉은 바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 실장 유세진에게 보고를 했다.

위원장의 말을 그대로 전했을 때 유세진이 차분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해합니다. 우리측 입장을 위원장께 전달해주신 것만으로도 큰 성과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철봉은 위원장과 나중에 나눴던 대담은 말하지 않았다.

오해를 일으킬 만한 내용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서로에게 득인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에서 나온 조철봉은 5분도 되지 않아서 국정원 정보실장

이강준의 연락을 받는다.

“조 사장님, 피곤하시겠습니다만.”

이강준이 그렇게 말문을 열었으므로 조철봉은 쓴웃음을 짓는다.

물론 평양으로 떠나기 전에 최갑중을 시켜 이강준에게 연락은 했다.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받지도 않았지만 그것이 도리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은 회사에도 조직이 있고 맡은 업무가 있다.

인사과에서 영업을 하고 경리부 놈이 직원 인사를 한다면 회사는 개판이 될 것이다.

그러니 법을 지키는 것처럼 국가 조직도 지키고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조철봉의 사고이며 일반적인 국민의 의식일 것이다.

예전에는 국보법을 국가 보물을 지키는 법으로 알만큼 무지한 조철봉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국보법 내용이 무언지 하나도 모른 채로 대다수 국민처럼 잘 먹고 잘 살았다.

조철봉은 10분쯤 후에 이강준을 만나 보고 들은 이야기를 다 해준다.

비밀을 지킬 것도 없었기 때문에 이정자 이야기까지 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조철봉이 말을 그쳤을 때 이강준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조 사장님 역할이 가장 큰 것 같습니다.”

“이거 재미가 있어야지요.”

혼잣소리처럼 조철봉이 말하자 이강준은 머리를 끄덕였다.

얼굴 표정이 진지하게 변해졌다.

“민유미씨 일에 성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조철봉이 심호흡을 한다.

하긴 그렇다.

민유미가 베이징의 북한 무역사무소에서 오더를 꽤 받았다.

거기서 나오는 떡고물이 좀 된다.

이강준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는다.

하긴 욕심이 과했을 때는 꼭 후유증이 일어났다.

퇴근시간이 다 되었을 때 회사에 들어갔더니

민유미가 보고할 것이 있다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베이징의 대동강무역에서 연락이 왔는데요.”

그러면서 민유미가 탁자 위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갸름한 손가락에 살색 손톱도 잘 다듬어져 있다.

민유미가 말을 잇는다.

“평양 유경호텔에 필요한 가전제품 목록입니다.

아직 가격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원가가 4천만불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조철봉의 표정도 엄숙해졌다.

눈을 가늘게 뜬 조철봉이 민유미와 오퍼시트를 번갈아 보았다.

“통전부장은 나한테 맡겨.”

“알겠습니다.”

“가격에서 마진을 얼마 붙일 작정이지?”

“원가에서 1천만불쯤.”

“그렇다면 5천만불이 되나?”

그러더니 조철봉이 머리를 젓는다.

“가격을 5천5백으로 만들어. 5백은 뇌물로 쓸 테니까.”

소파에 등을 붙인 조철봉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야 피로가 좀 풀리는구먼. 그런데.”

조철봉이 다시 엄숙한 표정을 짓고 민유미를 보았다.

“오늘 저녁 식사나 같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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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봉이 민유미를 데려간 곳은 성남시 변두리의 한정식 식당이다.

미리 예약을 해놓아서 둘은 연못가에 만들어진 별채로 안내되었는데

외따로 떨어져서 밀담을 나누기에 딱 맞는 방이었다.

별채라고 했지만 방 한 칸짜리 오두막이다.

문을 닫으면 그야말로 밀실이 되어버린다.

거기에다 한정식의 좋은 점 중 하나가 한꺼번에 음식을 내온다는 것이다.

일식이나 중식처럼 하나씩 차례로 음식이 나오면 집중이 안 되고 시간 소모가 많아진다.

물론 이것은 흑심을 품고 여자를 데려왔을 경우를 말한 것이다.

종업원들이 한정식상을 내려놓고 돌아갔을 때 민유미가 눈을 크게 뜨고 감탄을 한다.

“한식상을 보면 아주 특별해요.

세계 어느 나라 음식도 이렇게 다양한 메뉴를 한꺼번에 내놓는 경우가 없어요.”

한국말을 또박또박 이만큼 구사하는 외국 여자도 드물 것이다.

더구나 한국 남자하고 살아보지도 않고 말이다.

조철봉이 웃음띤 얼굴로 지그시 민유미를 본다.

민유미는 처음에 민씨 성을 가진 한국 남자하고 살면서 한국말을 배웠다고 거짓말을 했다.

“내가 지금까지 겪은 여자가 500명은 될 거야.”

젓가락으로 전을 집어든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하지만 여자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적은 한 번도 없어.”

그순간 민유미가 긴장한 듯 얼굴이 굳어졌다.

 

젓가락을 내려놓은 민유미가 조철봉을 보았다.

“지금 저 이야기하시는 거죠?”

“물론.”

“제가 함정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당연하지.”

그러고는 조철봉이 입술만 구부려 웃는다.

“난 참을성이 강해. CIA에서는 날 잘못 판단했어. 그렇지 않아?”

민유미가 시선을 내렸지만 당황한 것 같지는 않다.

 

처음과는 다르게 긴장이 풀린 얼굴로 대답했다.

“저한테 섹스를 이용하라는 지시 따위는 없었죠.

 

그건 제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니까요.”

“내가 쉬운 남자라고는 알려주었겠지.”

“아녜요.”

머리를 저은 민유미가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사장님은 철저하게 구분한다고 들었습니다.

 

즐길 때는 맘껏 즐기지만 업무상으로는 여자관계가 깨끗하다고 하더군요.”

“과연 CIA로군.”

“거짓말을 했던 것을 사과드립니다.”

하면서 민유미가 앉은 채로 머리를 숙였으므로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는다.

“내가 손해본 것 없으니까 괜찮아.”

“이젠 정상적인 동업자 관계인가요?”

“그런 셈이지.”

“앞으로 둘 사이에 섹스는 필요없겠지요?”

머리를 든 조철봉이 민유미의 얼굴을 보았다.

 

민유미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다가 고정되었다.

 

눈에 웃음기가 띠어져 있다.

 

그 시선을 받은 채로 조철봉이 입을 열었다.

“섹스에 대한 가능성을 서로 열어놓는 것이 생활에 활력을 준다고.”

민유미가 진지한 얼굴로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 마치 강의 내용을 열심히 듣는 여학생같다.

 

그래서 조철봉이 한마디씩 천천히 힘주어 말을 잇는다.

“난 섹스에 대한 가능성이 남녀 사이의 긴장감과 기대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거든.

 

그러니까 일부러 버릴 필요는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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