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809. 대타협 (11)

오늘의 쉼터 2014. 10. 10. 00:14

809. 대타협 (11)

 

(2195)대타협-21

 

 

그날 밤 조철봉은 역삼동 그린호텔의 바에서 최갑중과 둘이 술을 마신다.

우창건설 회장 안우창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헤어져 이곳으로 온 것이다.

전(前) 정권의 실세였던 최문식은 먹은 것을 130억원 가깝게 토해낸 후에 중국에서 풀려나

황망히 미국으로 도망쳤는데 욕심이 화를 부른 셈이었다.

경제도 어려운 판에 전(前) 정권 때 약속받은 돈까지 받아 내려다가 껍질이 홀랑 벗겨진 꼴이다.

물론 남북 공동작업이었으므로 130억원 중 65억원은 북한이 먹었고 65억원은 조철봉의 몫이다.

우창건설측은 돈을 더 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상황이라 안우창은 고맙다는 인사로

저녁을 산 것이다.

“가장 성공적인 남북한 협력사업입니다.”

술잔을 든 최갑중이 웃음 띤 얼굴로 말한다.

 

“앞으로 이런 사업을 더 찾아야 될 것 같습니다.”

안우창의 인사에 고무된 최갑중이 떠들었지만 조철봉의 주의는

아까부터 안쪽 테이블로 옮겨져 있었다.

여자 셋이 앉아 술을 마시는 중이다.

바 안의 조명은 어두운 편이었지만 셋 모두 보통 이상의 용모에 세련된 차림이다.

나이는 30대 후반쯤 되었는가? 테이블 위에는 양주병이 놓여 있고 거침없이 잔을 비우고 있다.

이른바 상류층이었으며 나가는 여자들이 아니다.

조철봉의 시선을 셋이 다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무시하는 태도도 돋보인다.

이런 시선에 익숙하다는 증거였다.

그때서야 조철봉의 분위기를 눈치챈 최갑중이 그쪽을 보더니 묻는다.

“형님, 제가 해 볼까요?”

이런 때는 형님이다.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가서 귀싸대기를 맞건 술벼락을 맞건 간에 손해 볼 것이 없다.

벌떡 일어선 최갑중이 거침없이 그쪽 테이블로 다가가더니

몇마디 수군거리다가 허리를 펴고는 곧장 돌아온다.

시치미를 딱 뗀 표정이어서 따로 앉은 와이프한테 다녀온 것 같다.

그러나 자리에 앉더니 입맛을 다시고는 말한다.

“쓸 데 없는 소리 말고 가라는데요.”

“허, 네가 뭐라고 했는데?”

역시 정색한 조철봉이 묻자 최갑중이 술잔을 들었다.

“합석하자고 했거든요.”

“자식아, 대뜸 그러면 돼?”

“요즘 애들은 그럽니다. 속전속결이죠.”

“니가 애냐?”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다시 시선을 돌려 여자들을 보았다.

거리는 5미터쯤 되었지만 중간에 테이블이 있다.

여자들이 이제는 가끔 이쪽에다 시선을 주었는데 호의적인 표정들은 아니었다.

조철봉이 오른쪽에 앉은 여자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크림색 셔츠, 저 여자가 셋 중 제일 나은 것 같지 않니?”

“그렇습니다.”

유심히 그쪽을 본 최갑중도 이윽고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가깝게 가 봤습니다. 그런데 저 여자가 쓸 데 없는 소리 말라고 하더군요.”

그러자 조철봉이 손을 들어 지나가던 지배인을 불렀다.

지배인은 조철봉과 구면이다.

조철봉이 누군지를 아는 것이다.

다가선 지배인에게 조철봉이 묻는다.

“지배인, 저 여자 분들은 누구요?”

지배인이 힐끗 저쪽을 보더니 조철봉 옆에 바짝 다가섰다.

“예, 여기 자주 오시는 분들이죠.”

그러더니 굳은 표정으로 덧붙인다.

“점잖은 사모님들이십니다.”

집적댈 상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조철봉이 얼굴을 펴고 웃는다.

“지배인이 할 일이 생겼어.” 

 

 

 

(2196)대타협-22

 

지배인이 긴장한 표정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요즘 경제가 불황이어서 돈이 안 풀려. 아니, 돈이 안 풀려서 경제가 불황인지도 몰라.”

영문을 모르는 지배인이 눈만 껌벅였고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각자 제 일의 특성을 개발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도록 노력해야 될 거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갑니까?”

“예. 그, 그건.”

“내가 남북한 협력 사업으로 돈을 좀 벌었는데 지배인하고도 협력 사업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말요.”

그러더니 조철봉의 표정이 은근해졌다.

조철봉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잇는다.

“저기 저 여자들. 셋이 다 안 되면 크림색 셔츠를 입은 여자,

그 여자하고 합석시켜 준다면 내가 100만원을 내지.”

지배인은 눈도 껌벅이지 않았고,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아이디어는 지배인이 나보다 월등할 것 같아서.

나하고 저쪽을 잘 아는 건 지배인뿐이거든.”

조철봉이 이제는 빙그레 웃었다.

“하나만 더 부탁할 것이 있는데 내가 누군지는 밝히지 말아 주시오.

그냥 돈 좀 있는 사업가라고만.”

그때 지배인이 허리를 폈다. 조철봉 또래이니

이 계통에서 적어도 10년 이상의 세파는 겪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지배인이 어깨까지 폈다.

그러나 시선은 한번도 여자쪽으로 돌리지 않았다.

지배인이 굳은 표정으로 말한다.

“해 보겠습니다.”

그로부터 20분쯤이 지났을 때 조철봉과 최갑중은 여자들의 테이블로 와 있었는데

둘 다 시치미를 뚝 뗀 얼굴로 앉아 있다.

그때 긴 머리에 눈매가 서글서글한 여자가 최갑중에게 말한다.

“아까는 좀 황당했어요. 갑자기 다가와 합석하자고 해서요.”

“미안합니다.”

쓴웃음을 지은 최갑중이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방법밖에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분이.”

하고 크림색 셔츠의 여자가 조철봉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주 적절한 방법을 쓰셨네요.”

조철봉과 시선이 마주친 여자가 빙그레 웃었다.

그 순간 조철봉은 목이 메는 느낌을 받는다.

 여자의 목소리는 약간 콧소리가 섞인 데다 가늘다.

자신만만한 표정. 가까이서 보니까 나이는 좀 더 들어 보인다.

40대 초반쯤 되었을까? 여자가 조철봉에게 시선을 준 채로 말을 잇는다.

“이제 지배인한테 100만원 주셔야죠?”

그러자 두 여자가 소리내어 웃었고, 카운터 옆에 서있던 지배인이 이쪽을 보았다.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인다.

“그럼요. 어쨌든 지배인 수단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50 받기로 했거든요.”

다시 두 여자가 웃었고 이번에는 최갑중도 따라 웃는다.

조철봉이 크림색 셔츠를 입은 여자의 잔에 술을 채우며 묻는다.

“아직 10시도 안 되었는데 아래층 클럽으로 내려가실까요?”

“어머. 클럽도 잘 아세요?”

여자가 눈을 둥그렇게 떠 보이는 시늉을 하더니 다시 묻는다.

“클럽 가는데 저한테 얼마 내신다고 하세요. 쟤들 둘 데려갈 테니까요.”

“그럼 50 내지요.”

그러고는 조철봉이 심호흡을 한다.

돈을 풀면 경제와 함께 분위기도 살아난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811. 대타협 (13)  (0) 2014.10.10
810. 대타협 (12)  (0) 2014.10.10
808. 대타협 (10)  (0) 2014.10.10
807. 대타협 (9)  (0) 2014.10.09
806. 대타협 (8)  (0) 201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