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797. 중개자 (11)

오늘의 쉼터 2014. 10. 9. 13:20

797. 중개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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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바로 인천공항으로 갔습니다.”

최갑중이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잇는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안영범한테는 퀵으로 뭘 보내겠다고 했는데 아마 우창건설에서 써준 각서일 것이라고 합니다.”

오전 11시반,

사무실 안에는 조철봉과 최갑중, 그리고 민유미까지 셋이 둘러앉았다.

지금 최갑중은 최문식의 행적을 보고하는 중이다.

최문식이 ‘그린’ 오피스텔 1212호실에 살고 있다는 것은 진즉에 파악됐다.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말했다.

“그럼 이춘수한테 연락해.”

옌지에서 이춘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최문식은 오후 12시10분발 옌지행 동방항공을 타고 떠난다.

최갑중이 방을 나갔을 때 조철봉은 머리를 들고 민유미를 보았다.

정색한 표정이다.

이틀 전, 클럽 ‘오리온’에서는 술만 마시고 끝났다.

각오를 하고 있었던 민유미는 클럽 앞에서 조철봉과 헤어지고 나서 저도 모르게 긴 숨을 뱉었다.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철봉은 방에서 술을 마실 때도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으며 분위기도 멀쩡했다.

시치미를 떼고 있어도 속으로 흑심을 품고 있으면 표시가 나는 법이다.

그러나 조철봉은 겉도 속도 다 반듯했다.

각오까지 했던 민유미가 나중에는 무색해질 정도였다.

그러나 민유미가 아직 조철봉에 대해서 긴장을 푼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사내의 속성을 겪어 파악하고 있는 민유미였다.

여자 싫어하는 남자는 없다. 특히 자신처럼 미모에다 잘 빠진 젊은 여자는

일단 프리미엄을 안고 있는 셈이다.

살아오면서 자신의 성적 매력을 가끔 이용한 적도 있는 민유미였다.

더구나 CIA의 정보요원 나오코 입장이 되면 그 매력은 더 필요하다.

그때 조철봉이 입을 열었으므로 민유미의 생각이 멈춰졌다.

“이 일은 최 부사장한테 맡기고 난 베이징으로 가야겠어.”

긴장한 민유미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정상회담 관계로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해서 말야.”

“정상회담이라뇨?”

제 귀로 들은 제 목소리가 건조하게 느껴졌으므로 민유미는 침을 삼켰다.

그러자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렇군. 민유미씨는 잘 모르겠군. 남북한 정상회담 말이야.”

“그것을 사장님이 어떻게….”

“내가 수수료를 받고 추진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

“…….”

“그런데 북한측에서 갑자기 날 보자는 연락이 왔어.”

“누가 말입니까?”

“통전부장.”

민유미는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킨다.

빅뉴스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이 형편없는 친구 옆으로 보내졌지 않은가?

그때 조철봉이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날 만나자고 하는 걸 보면 뭔가 제의할 것이 있는 모양인데.”

“…….”

“난 분명히 중개료를 먹는다고 했거든? 한국측에도 이야기를 했고 말야.”

“…….”

“내일 오전에 출발인데. 어때? 같이 가겠어?”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민유미가 숨을 멈췄다.

당장에 그러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런다면 속 보인다.

민유미는 숨을 두 번 쉬고 나서 대답했다.

“네. 가겠어요.”

제임스가 놀라 펄쩍 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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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베이징 출장에는 김경준까지 동행했으므로 일행은 셋이다.

오후 4시, 베이징 호텔안 조철봉의 방에 모인 셋은 오늘 저녁에 만날

북한 통전부장 양성택과의 회담 준비를 한다.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만으로도 긍정적인 반응이긴 하지만

잘 나가다가 뒤집힌 적이 어디 한두번인가? 조철봉은 차분하다.

출발하기 전에 청와대 한영기 비서관에게 연락은 해놓았다.

그쪽도 조철봉의 반응을 느꼈는지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만 하고는 별말하지 않았다.

“지난번 정상회담 때처럼 한국이 뭘 내놓는다면 이야기가 쉽겠는데.”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말을 잇는다.

“이번에는 아주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니까 말이야. 나한테 떡고물이 떨어지는 것도 없고.”

민유미가 절레절레는 어떤 표현인지 대충 알아들었지만 떡고물이 떨어진다는 말은

무슨 말인지 답답했다.

조철봉의 시선이 민유미에게로 옮아갔다.

“이봐 보좌관, 난 중개자야. 이젠 공무원도 아니라고.

그럼 중개비를 받아야 될 것 아니겠어?”

“네, 그렇죠.”

대답은 했지만 민유미가 시선을 준 채로 다음말을 기다렸다.

정상회담의 중개비는 처음 듣는다.

그때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아니면 이권 사업을 주든지 말이야.

한국 정부가 북한보다 융통성이 더 없는 것 같다니까?”

“정상회담 이야기를 꺼내는 건 그쪽이 좀 급하기 때문입니다.”

김경준이 말했다. 둘의 시선을 받은 김경준이 말을 잇는다.

“이번 정권에서는 전처럼 무조건 퍼주지 않았으니까요.

어쨌든 양국 관계가 험악해지긴 했지만 힘들게 원칙 하나는 세운 것 같습니다.”

“원칙이고 뭐고….”

투덜거린 조철봉이 민유미를 보았다.

“보좌관, 남북한 정상회담의 가치가 얼마나 될까?”

“그것은.”

입맛을 다신 민유미가 속으로 욕을 했다.

이놈이 날 시험하려는 건가? 아니면 놀리는 건가?

정상회담의 가치라니? 그러나 정색하고 대답한다.

“양국의 평화 분위기 조성 가치만 하더라도 몇억불은 충분히 됩니다.

외국 투자자들을 안정시키는 효과라든지 증시에 반영되는 가치,

그것을 다 현금으로 계산하기는 어렵죠.”

“만일 핵 폐기를 한다면 얼마를 받아낼 수 있을까?”

불쑥 조철봉이 물었으므로 민유미는 숨을 멈췄다.

조철봉의 표정은 차분했다.

민유미를 향한 눈동자도 흔들리지 않는다.

민유미가 대답했다.

“글쎄요, 지난번 경수로 건설 문제도 있었지만 엄청난 대가를 바라겠죠.”

민유미의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만일 오늘 저녁에 통전부장과의 회의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야말로 대특종을 하는 셈이다.

그때 조철봉이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난 북한과의 유일한 창구야. 유일한 비공식 창구인 셈이지.”

그러더니 조철봉이 쓴웃음을 짓는다.

“따라서 돈이 나를 통해야만 해.

이번에 핵 폐기 문제가 정상회담때 합의된다면 내가 돈 좀 만질 수 있겠는데.”

그때 민유미는 조철봉의 왼손 손가락 세개가 돈 세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의식 중에 그러는 것 같았다.

조철봉의 말이 이어졌다.

“핵 폐기를 한다면 미국하고 일본에서도 돈을 걷어주지 않을까?”

마치 제 주머니에 들어올 돈처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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